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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Jun 13. 2021

내 남편은 게으른 완벽주의자

빨리빨리 대충 vs 느릿느릿 꼼꼼하게


 결혼을 하기 전에는 연예인 부부들이 이혼할 때마다 등장하는 사유인 '성격차이'가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시시콜콜 본인들의 사생활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 성격차이라고 대충 둘러대는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결혼을 해보니 그 성격차이라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고 그 차이가 실로 컸다.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외향성과 내향성의 문제, 대화방식의 문제, 위생관념의 문제 등은 이 문제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느리고 빠른 성격의 차이는 우리가 생활하는 매 순간 등장해 갈등의 도화선이 된다.


 보통 부부가 함께 외출할 때를 상상해보면 남편은 10분 만에 준비를 마친 후 문 앞에 서있고, 아내는 이제 막 화장을 끝내고 머리손질을 시작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재촉을 하며 신발까지 신어버린다. 그런데 우리 집의 경우는 정 반대다. 남편이 아닌 내가 먼저 준비를 마치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마실 커피를 내리거나, 남편을 재촉하는 것을 포기하고 TV를 켜고 쇼파에 앉는다. 그는 그로부터 15분 정도 후에 외출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는데 그때부터 또 안경을 닦기 시작한다. 이 섬세한 사람은 안경을 닦는데도 5분이 걸린다. 안경에 습기 차는 것을 방지해준다는 알코올 솜 같은 것을 뜯어 1차로 안경을 닦고, 그다음에 물기를 없애기 위해 안경닦이용 수건으로 한번 더 꼼꼼히 닦는다. 성격이 급한 나는 기다리는 게 너무 답답해서 가끔은 외출 직전에 의미 없이 TV를 켜는 대신 남편의 안경을 미리 닦아 놓는다. 그러면 5분은 빨리 나갈 수 있다.


 그는 무엇을 하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연애할 때도 내내 그가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좀 빨라질 수 없냐고 얘기한다고 해서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도 않을 테고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자마자 이탈리아 신혼여행 중에 나는 폭발해 버렸다. 로마의 어느 길 위를 걷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걸어가며 빨리빨리 해도 될 것을 그는 자리를 잡고 서서 가방에 달린 자물쇠를 하나하나 채우고 와이파이 에그를 켜고 연결하고 그것이 완벽한지 확인할 때까지 나를 기다리게 했다. "당신이 얼마나 느린지 알아? 그동안 정말 많이 참아왔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어!" 장시간 비행에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예민했던 나는 꾹꾹 참아왔던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분출해 버렸다. 연애시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우리는 그렇게 결혼하자마자 그것도 신혼여행지에서 첫 다툼을 시작했고, 그날 밤 나는 로마의 어느 호텔방 침대에서 남편은 그 옆의 조그만 쇼파에서 잠을 청했다. 마음이 여린 그는 아마도 지금까지 그날 일을 마음속의 상처로 기억할 것이다. 그 후 서로 여러 번 사과하고 맞춰가려 노력했으나 그것은 사랑의 힘이었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서는 아니었다.


신혼여행 첫날 밤, 나 혼자 잠든 더블침대.
남편이 쪽잠을 잔 쇼파.


 

 그러다가 최근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오은영 박사님의 설명을 듣고 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늘 그가 느리고 게으르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게으른 게 아니라 반대의 성향이 크다는 거다. 무엇이든 빨리 하지 않고 뒤로 미루는 일명 '벼락치기형' 사람들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본인이 달성해야 하는 기준이 아주 높기 때문에 일을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심을 하고 시작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꼼꼼할 수밖에 없다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게으른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손바닥을 탁 쳤다.

 

 그는 무엇을 하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무엇을 하든 완벽하게 끝낸다. 세차를 하는데도 3시간 반이 걸리고, 화장실 청소를  때도 최소 2시간이 걸린다. 화장실 청소는 집에 있는 수세미로 대충 문지르면   같은데, 완벽하게 하고 싶다기에 욕실 청소용 기계까지 사줬다. 물론 나는 3주에 한번 3시간 걸려 손세차를 하는 것보다 매주 기계 세차를 하는   편하고, 화장실도  달에 한번 온갖 장비를 동원해 대청소를 하는 것보다 누군가는 대충이라고 할지라도 그때그때 바로 청소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화가 나고, 그를 이해하기 위한 에너지를 조금  써도 되지만 여전히 어떻게 합의점을 찾아갈 것이냐의 문제는 남아있다. , 그가 조금  나에게 맞춰줬으면 하는 이기심도 여전하다.


대충대충 스피디한 나의 소시지(왼쪽) VS 느릿느릿 정교한 남편의 소시지(오른쪽)


 평일에는 회사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주로 닭가슴살 소시지를 먹는다. 밥은 당번을 정해 번갈아가며 하기 때문에 같은 메뉴일지라도 그가 하는 날이 있고 내가 하는 날이 있는데, 똑같은 닭가슴살 소시지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요리되는지 이 사진 두 장이 우리의 다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충대충 스피디하게 만들어진 나의 소시지와 느릿느릿 정교한 칼집으로 만들어진 남편의 소시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대충 칼집 내서 만들어주면 싫어?" 물었더니 남편은 "아니 각자 자기 스타일이 있는 거지." 한다. 도통 나에게 바라는 게 없는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걸까?


 살면서 누군가와 나의 성격, 성향, 취향의 면면을 이렇게까지 뜯어보고 비교 분석하며 이해하기 위해 애써본 경험은 처음이다. 그러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견고한 가치들절반 정도는 나만 옳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바꾸어 생각하게 됐다. 그럼에도 나에게 좀처럼 딴지를 걸지 않는 그에게 고마운  아니라 때때로 화가 난다. 이유는 그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아니라, 이렇든 저렇든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아서.(물론 나만의 생각일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그를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는 만큼,  역시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줬으면  아내가  이럴까 궁금해해줬으면 하는 마음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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