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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May 09. 2021

말하며 위로 받는 사람과 말하며 스트레스 받는 사람

말하지 않으면 몰라!

 길어지는 재택 근무에 점점 외로워진다. 누군가랑 말이 하고 싶다. 회사에 출퇴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고 시간을 버는 일이지만, 아침마다 친한 동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커피타임이 그립다. 재택근무를 한지 너댓달쯤 됐을 때, 점심을 먹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오랫동안 연락을 못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10여분 남짓 통화를 하고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친구의 안부를 묻고 내 이야기를 하고 수화기너머 목소리에 공감하고 위로 받는다. 결혼을 하고도 문득 외로운 날에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쯤부터 나는 내가 대화를 통해 위로받는 사람이라는걸 깨달았다. 


 그 후, 남편과 함께 TV를 보다가 나와 같이 말을 하며 감정이 해소된다는 사람을 보았다. "여보 저사람 좀 봐 나랑 똑같다!"했더니, 그는 "그래? 나는 힘들 땐 말하는게 더 힘든데..." 한다. 남편은 언젠가부터 자기 얘기 하는걸 힘들어 한다. 그래서 나는 캐묻지 않고 그가 말하고 싶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기다리는 일은 나도 마음이 좋을 때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다투었을 때, 5분만 대화를 해도 해결될 일이 말을 피하기 때문에 2틀, 3일이 된다는 거다. 말하기 좋아하는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다툼 후에도 먼저 가서 속얘기를 털어 놓으면, 그도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본인이 잘못한 부분은 사과를 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한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늘 먼저 대화를 청하는 내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나랑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자.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그는 본질은 피하고 계속 '오늘 저녁은 뭐 먹고 싶냐, 먹고 싶은거 없냐'는 식의 이야기만 했다. 아니, 화가난 사람에게 저녁 뭐 먹고 싶냐니? 처음에는 더 화가났다. 그러다가 화가난 아내에게 저녁 메뉴를 묻기까지 그도 많이 용기를 냈겠구나 싶었다. 용기내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또 다시 내가 대화를 시작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아직 한 번도 다투지 않아서 다음 번에는 누가 먼저 대화를 신청할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평생 싸우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강남역 <일상 비일상의 틈>에서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강남의 한 전시장에 방문했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다들 아이패드를 보고 있기에 무얼하나 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 내가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를 하고 싶어했던걸 아는 그의 권유로 나 역시 그림을 그릴 기회가 생겼다. 이미 있는 도안에 색칠만 하는 것이라 20분이면 충분하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1시간이 다 되어갔다. 직원분이 같이 해보시라고 아이패드를 하나 더 가져다 줬음에도 거절한 그는 나에게 기다려도 괜찮다고 연신 미소를 날렸다. 내 눈에 그의 미소와는 달리 몸은 베베 꼬이는 걸로만 보여, 신중하게 색을 고르지 못하고 1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부랴부랴 색칠을 끝냈다. 그날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는데, 아까 내가 그림 그릴 때 본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멍때릴 수 있어서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는 거다. 나와 같이 그림 그리기에 참여를 한 것도 아니고,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냥 옆에서 기다리는게 좋았다는 남편.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되서...!


 그러다가 어느 날은 문득, 서너잔의 술을 삼켜낸 그의 입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때마다 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일들을 잊지 않고 아주 디테일하게 이야기하는 그. 이 정도면 그의 마음속에 남은 사건들이 얼마나 선명한지 알겠다. 나였다면 이렇게 뱉어내고 해소가 되었겠지만,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더 힘들어졌을까? 아직도 남편을 알아가는 중인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 나는 도대체 당신 속내를 들여다보기가 너무 힘이 든다고 그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나는 네가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생각인지 다 알겠는데, 너는 왜 내마음을 몰라줘?" 펀치를 날린다. 세상에, 이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정말 내 마음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걸까? 답답함에 못 이겨 내가 매번 마음 속의 이야기들을 쏟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을 알고 싶지 않아도 귀가 있다면 알 수 밖에 없다. 나는 늘 대화가 하고 싶고, 당신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만하지 않고 물어보고 귀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합의점을 찾자. 당신은 나한테 늘 궁금증을 가져봐.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물어봐줘." 그랬더니 남편은 "좋아! 그럼 나는 하나 더 물어볼테니까 당신은 하나 덜 물어보면 되겠네!" 하면서 기뻐한다. 그...그래 나는 당신에 대한 관심을 좀 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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