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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Apr 05. 2021

기분 좀 봐가면서 솔직하자

솔직 폭격을 피하고 싶을 때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시가에 가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시가 식구들의 솔직함이었다. 누군가가 혹여 기분이 상할걸 염려해 감추고 넣어두는 말은 절대 없었다. 첫 명절에 어머님이 상을 차리셨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불고기를 먹던 남편이 "엄마, 고기가 질기네"이러는 거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 거들지 않았고, 어머님 혼자서 모든 음식을 하며 얼마나 고생하셨을 텐데 저런 말을! 나는 입 다물고 조용히 먹으라며 남편을 쿡쿡 찔렀다. 밥을 다 먹고 딸기를 먹는데 이번에는 남편의 형이 딸기가 시다는 거다. 물론 시부모님이 딸기 농사를 해서 직접 재배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자식들 먹으라고 내어 준 음식에는 토를 달지 않는게 정석 아닌가?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솔직함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어머님은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다. "응, 이번에 고기가 좀 질기지?", "그래, 딸기가 좀 시더라. 잘못 산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신혼 초에는 아버님께 직접 단팥빵을 만들어서 가져다 드렸는데, 빵이 맛있으셨냐고 여쭤봤더니 "잘 먹었는데, 빵집 것보다는 맛이 없더라."하셨다. 당황해서 이거는 설탕도 안들어가고 천연 발효를 시킨 건강한 빵이라고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은 실제로 빵을 잘 드셨고, 또 실제로 빵집에서 파는 빵 보다는 맛이 없으셨을거다. 반면 친정에서는 사실 그대로 보다는 음식을 한 사람 정성, 사온 사람 정성이 1순위라서 맛있다고 과대포장을 한다. 딸기가 아무리 셔도 절대 시다고 말하는 법이 없고, 누가 빵 한 봉지만 사와도 어제부터 빵이 먹고 싶었는데 역시 너는 탁월하다며 치켜 세운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다름 때문에 시가 식구들에게 적응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은 솔직한 피드백을 받는게 불편해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어도 안해드린 적이 있다. 선물을 해도 항상 장점과 단점을 포함해 말씀 하시니까 뭐하러 힘들게 빵을 만들고 선물을 고르나 싶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 '솔직 패밀리'에게 적응을 하게 된 계기는 그 솔직함에 '악의'도 '뒤끝'도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평생을 솔직하게 살아온 분들이 여느때처럼 솔직하게 반응하시는 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한 번 얘기했던 일이 다시 거론되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뒤끝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전복 삼계탕


 한 달만에 시가에 갔다. 우리 어머님은 내가 시가에 가면 옷 버린다고 설거지도 못하게 하는 분인데, 막내 며느리를 마냥 예뻐하시던 시어머니가 '너도 살 좀 빼야겠다' 솔직 폭격을 날리셨다. 그 순간, '진짜 내가 살이 쪘구나' 진지하게 자극이 됐다. 결혼 할 때 부터 줄곧 '살 좀 쪄라'라는 말씀만 하셨는데, 어느 순간 '살 빼라'로 바뀌어 있었다. 결혼하고 10kg이 늘어 내내 다이어트 해야지 해야지 말로만 하다가 어머님의 '살 빼라' 세글자를 듣고 5kg을 뺐다. 어머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팩트 그 자체일 확률이 아주 높으므로.


 이런 솔직 유전자를 물려 받은 남편은 세상 제일 솔직한 사람이다. 연애 때는 그냥 다 좋다, 마냥 좋다 했는데 이제는 본래의 자아가 조금씩 드러난다. 자라는 내내 키가 큰 편이었던 나는 '귀여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남편에게 문득 "나 귀여워?"라고 물어보면 "너는 예쁜거지 귀여운건 아니야"란다. 그냥 적당히 귀엽다고 하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래도 그의 솔직함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최근에 단편소설을 하나 써서 남편에게 읽어봐달라고 했다. 이럴 땐 솔직한 사람의 피드백이 최고이니. 몇 날 며칠이 걸려서 쓴 소설을 10분도 안걸려 다 읽은 남편의 첫 마디는 "잘 썼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야" 였다. 덧붙여 "최근에 읽은 그 단편소설집에 있는 소설들 같다. 근데 그게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최근에 등단한 신인 작가들의 소설을 모아놓은 그 소설집 얘기하는 거지?"

"응, 맞아."


 그 책에 있는 소설 같다는 말은 나에겐 엄청난 칭찬인데, 남편은 꼭 저런다. 나는 내 맘대로 칭찬으로 알아듣고 그 소설을 투고해보기로 했다. 그의 솔직함을 이해하지 못했을땐 얼마나 고생하며 쓴 글인데, 성의없이 평가하냐고 눈을 흘겼을 거다. 이제는 그의 솔직 유전자를 이해하게 되어,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혹시 요리사를 준비 중이거나, 본인이 만든 뭔가를 평가 받고 싶다면 이 사람에게 실험 해보시라. 세상 솔직한 피드백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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