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그의 꿈
어느 날, 남편이 어떤 자동차가 갖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그 자동차를 갖는 게 그의 평생소원 인지도 몰랐고, 당시 차를 새로 산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여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남편의 지독한 외사랑이 시작되었다. 운전을 하다가 앞에 혹은 옆 차선에 그 차가 나타나면 "저거야 저거!" 하면서 눈이 반짝였다. 심지어 차선을 바꿔가며 그 차 뒤를 졸졸 따라가기도 했다. "저 차가 얼만데 그래?" 내 물음에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1억 3천 정도..."라고 답했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2년이 지났다. 남편은 지난 2년 간 나에게 수도 없이 그 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차가 이번에 프로모션을 한대", "그 차는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전혀 흔들림이 없대" 주로 그런 류의 것들이었고, 나는 "응, 로또 맞으면 사줄게"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결심을 해버린 거다. 나는 설마 그가 1억 3천이 넘는 차를 사겠다고 결심을 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차를 사기 위해 지금까지 모은 돈과 현재 가지고 있는 차를 중고로 팔아서 마련할 돈, 그리고 앞으로의 월급 일부를 더해 6개월 후 구매 계획을 세웠다. 남편은 그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허락을 구했다. 평소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돈에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이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이 자동차를 ‘지금’ 갖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해야만 했다.
나는 일주일 정도 고민하고 그에게 계약금 50만 원을 내주었다. 고민한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우리 부부에게 아직 집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나라고 1억이 더 있으면 앞으로 우리 집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그의 꿈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 앞으로 생겨날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그도 행복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개인으로서의 권리를 어디까지 빼앗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남편과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가 번 돈을 내가 다 소유하기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고, 덕분에 나는 내 월급으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너 너무 착한 거 아니야?" 하지만, 오히려 나는 월급날이나 보너스가 나올 때마다 급여 명세서와 함께 전액을 내 통장으로 입금하는 그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한다. 금수저도 아니고 남다른 빽도 없는 그가 인턴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숱한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자신이 이뤄낸 것들의 일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제야 인생이 정말 짧다는 걸 알았다. 인생을 살아가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도 없는 사람이 1억이 넘는 차를 산다고 하면 남들은 철없다고 웃겠지만, 철든 채로 산다고 해서 언제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버킷리스트이니 죽기 전에만 이루면 되지 않냐고 한다 해도, 60~70이 되어서 그 큰돈을 나의 꿈에 쓸 수 있을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내가 준 50만 원을 가지고 신이 나서 그날 바로 계약을 하고 왔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나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지만, 누군가의 일생일대의 꿈을 내 기준과 다르다고 무시할 수는 없기에 그의 꿈을 응원하기로 했다. 다행히 출고까지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남은 6개월 동안 우리가 정말 잘한 선택인지 맹렬히 고민하려고 한다. 물론 내 손은 떠났고, 결정은 그가 한다. 그리고 또 물론, 아직은 없지만 나에게도 버킷리스트가 생긴다면 반드시 실현할 계획이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