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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Sep 05. 2021

자신의 생일을 좋아하게 된 남편이 반가운 이유

부부,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는 존재

 

 8월에는 우리 집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가 있다. 바로 남편의 생일. 연애시절은 물론이고 결혼을 한 뒤 첫해 그리고 이듬해에도 나는 그의 생일을 국경일이라도 되는 양 요란스럽게 준비했다. 두해 모두 생일이 평일이었던 탓에 회사 휴가까지 내고 풍선을 불어 벽에 붙였다. 그가 가장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민해 준비하고, 두장 가득 빽빽이 편지를 쓰고, 미역국을 포함한 생일상을 차렸다. 그의 최애 초콜릿 케이크도 빠트릴 수 없었다. 혼자 이 많은 것을 준비하려니 하루가 숨 가쁘게 지나갔다. 그는 작년까지도 자신의 생일날 벽에 붙은 풍선을 보고는 "애들도 아니고 뭐 이런 걸"이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그의 다섯 번째 생일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은 드디어 자신의 생일을 좋아하게 됐다.


결혼 첫해, 그의 생일.


두번째해, 그의 생일.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그의 생일을 맞았을 때, 그는 생일이 싫다고 했다. 누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조차 싫고 아무도 모른 채로 생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살면서 이토록 자신의 생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조금 충격이었다. 내가 태어난 날을 나 자신이 챙기고 당연히 축하받아야 하는 날로 여기지 않으면 누가 대신 챙겨줄까? 1년 중 내 생일을 가장 기쁘게 보내고 싶은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가 자신의 생일을 없는 날로 여기고 싶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 생일에 받았던 상처가 있기 때문인데, 어린 마음에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남편은 해마다 생일날이 되면 꼭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을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의 생일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괴로운 날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날, 나는 스스로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많기에, 앞으로의 생일은 좋은 기억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생일은 슬픈 날이 아니고 기쁘고 행복한 날이라는 것을 그가 체득할 수 있도록.


 남들이 보면 뭐 저렇게 생일을 유난스럽게 보내나 싶을 정도로 유난스레 하지만 오붓하게 그와 보낸 다섯 번의 생일. 그리고 올해 그는 생일이 오기 두 달도 전부터 "올해는 생일 선물 뭐해줄 거야?"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생일을 기다렸다. '됐구나!' 그가 드디어 자신의 생일을 축하받아야 하는 날로 인식하기 시작한 거다. 남편은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일을 반갑게 맞이하게 됐다. 그런 그를 보는 내 마음이 너무 좋아서 스스로도 놀랐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던 그를 알게 된 지 겨우 6년이 지났다. 그리고 한집에 살게 된 3년 새 나는 '마냥 밝았던 5살의 그, 조금 외로웠던 15살의 그, 혼란스러웠던 25살의 그'에게까지 빠짐없이 찾아가 안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결혼이 정말 인기 없는 시대이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꼭 결혼을 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결혼생활을 해보지 않고서는 '부부'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올해, 그의 생일.

 올해 그의 생일에는 프라이빗 일식집에서 스키야키 정식을 먹었다. 그리고 당신이 생일을 좋아하게 돼서 정말 기쁘다는 편지를 썼다. 자신의 생일을 반갑게 맞이하는 소년 같은 미소의 그가 예쁘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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