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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프로듀서 Aug 21. 2019

햄버거 마을의 화려한 부활

음식부터 지역까지 물들이는 새로운 푸드 마케팅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필자가 늘 하는 생각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박도, 볼거리도 아닌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잠이야 덜자면 어떠랴, 볼거리야 없으면 어떠랴,

맛있는 음식이 바로 여행의 가치 아니겠는가.


수많은 관광지들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광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먹거리다

춘천 닭갈비, 속초 함흥냉면, 부산 밀면,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 등등등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보석 같은 지역 먹거리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먹거리가 있다고 한들,

매우 먼 거리의 여행지는 누구나 선뜻 움직이기 힘들 터,

노력에 결실과도 같은 달콤함 보상이라는 촉매제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없다.

"왕에게 진상한 음식"
"원조○○년"

"신선한 지역 특산물"

점점 똑똑해지는 소비자들에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식상한 문구들


이러한 고민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잭팟을 터트린 지역음식들이 있다면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은가?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바로 햄버거 마을 "사세보"다.


누가 거기까지 그걸 먹으러가?

사세보 역에 있는 일본 최서단 팻말

일본의 최서단 사세보시

한국인들은 물론 일본인들조차 가기 힘들어하는 곳.


사세보시는 그렇게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다.

버블경제 시절 네덜란드의 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하우스 텐 보스"라는 테마파크가 있기야 하지만

막상 가본다면 놀이기구 하나 없는 공원일뿐이다.


그렇다면 사세보의 진짜 자랑거리는 무엇일까?


사세보의 대표 햄버거 명소중 하나인 C&B버거

독특하게도, 사세보의 대표 먹거리는 햄버거다.

"미국도 독일도 아닌 일본에서 웬 햄버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름 사세보는 햄버거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군은 일본에 여러 지역에서 주둔했는데, 사세보 또한 그중 하나였다.

미군을 통해 전해진 미국식 햄버거는, 사세보의 식재료와 현지 입맛에 맞게 변화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세보 버거"다.

송탄이나 춘천의 미군부대 햄버거가 생각난 독자라면 훌륭한 미식가이니 자랑하고 다녀도 좋다!


그 외에도 사세보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세보 해군 카레"라던가,

양식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레몬 스테이크"가 있지만...


일본 최서단까지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니.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부터의 거리를 생각하면

마라도 짜장면이 맛있다고 서울에서 바로 달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좋게 말하자면 "열정적인 미식가" 좀 나쁘게 말하자면 "음식에 미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카레 역시 도쿄에서 가까운 곳에 또 다른 명소 "요코스카"의 카레와

자기가 사세보보다 먼저라고 주장하는 히로시마시의 "구레"의 카레가 있고

레몬 스테이크는... 혹시나 호기심에 찾아갈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먹을게 별로 없다.


이렇게 사세보의 3대 명물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기에

"누가 거기까지 그걸 먹으러가?"라는 부제목의 완벽한 음식이지만


도박수와도 같던 마케팅이 버거와 함께 사세보라는 도시 자체를 살렸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무시무시한 키덜트 문화의 파워

칸코레의 총책임자 다나카 켄스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인 "칸코레"

괴생명체에게 점령당한 바다를 과거 군함의 혼이 담긴 소녀들이 싸워서 회복한다는

굉장히 웃기고 황당하기까지 한 정말 일본다운 생각이 담긴 게임이다.


출시 당시 정말 금방 망할 줄 알았던 이 게임은

"의인화"라는 장르의 새로운 개척자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하게 된다.


여기까지 듣자면 그냥 인기 있는 게임의 이야기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게임의 개발자이자 총책임자였던 다나카 켄스케는 사실 광고업계 종사자였다.

광고업계에서 꽤나 오랜 기간 일했던 만큼

엄청나게 성공한 게임이라는 재료를 손에 넣은 그에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일본 인기 게임 칸코레와 백화점의 콜라보

2013년 패밀리마트를 시작으로

피자헛, 로손, 스키야, 나카우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와

백화점(미츠코시, 이세탄), 놀이공원(후지큐, 요미우리랜드) 심지어 항공사(피치항공)까지

게임 하나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만드는 도깨비방망이가 된 것이다.


소위 "오타쿠"라고 부르는 키덜트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대에서

마케팅의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인 타깃 선정을 완벽하게 해낸 아주 훌륭한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훌륭한 도깨비방망이는 어떻게 도시를 살려낸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을까?


최강의 소스를 얻은 햄버거

사세보에서 가장 유명한 햄버거집들의 캐릭터간판


게임은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로 만들었다.

그저 사세보라는 지역의 특징은 "군함"이라는 콘셉트의 게임과 잘 섞인 칵테일처럼 어우러졌는데

그 이유가 바로 사세보가 일본의 4대 군항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항구도시 사세보에게 군함 캐릭터들은 그야말로 금상첨화


또한 접하기 쉽고 회전율이 빠르며 먹 기간 편한 "햄버거"라는 지역의 명물 덕분에

도시 전체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넘치는 키덜트의 천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세보 시장 노리오 도모나가

콜라보 첫날

일본 최서단의 도시 사세보에는

무려 6000명이라는 인파가 한 번에 몰아닥쳤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관광객.


특히. 음식의 관광상품화를 할 때

가장 많은 실수 중 하나인

업체의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가게마다 다른 캐릭터를 배치하고

도장을 찍으며 일명 "성지순례"를 할 수 있도록

가게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 또한 놓치지 않았다.


단기간의 깜작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수십 년 이상의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관광지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키덜트 산업의 밝은 미래를 직접 증명한 것이다.


그럼 과연, 사세보에서는 어떠한 버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듣자면 그저 그런 햄버거 집들이 캐릭터 장사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놀라지 마시라,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세보햄버거의 세계를 독자 여러분들께 공개한다


가게의 크기는 맛에 반비례한다:베이스 스트리트

베이스 스트리트

가게 이름의 뜻은 간단하지만 그 유래는 매우 재미있다.

과거 방공호(베이스)이던 장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장거리로 바뀌었는데,

말 그대로 방공호 거리에 생긴 햄버거 가게이기 때문에 베이스 스트리트(방공호 거리)라는

간단하면서도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패티를 조리하는 사장님의 모습

방공호 내부답게 내부 공간은 매우 비좁다.

의자는 단 4개,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 같은 풍채를 가진 사장님이

1구 가스레인지에서 패티를 굽는 독특한 가게다.

거인이 소인국에서 요리사를 한다면 이런 느낌 일까?


스페셜 사이즈 버거

베이스 스트리트의 간판 메뉴는 사장님의 풍채처럼 거대한 스페셜 버거다.

일반 버거의 2~3배 정도의 사이즈는 대식가인 필자마저 움츠러들게 만든다.

너무 거대하여 두 손으로 잡고 먹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스크램블 에그의 고소함과 달콤한 소스의 향, 거대한 패티의 육즙은

거대한 사냥감을 통째로 삼기는 아나콘다처럼

어느 순간 거대한 버거를 먹어치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맛과 크기 어느 하나 부족할 게 없지만.

마치 소인국 같은 주방환경과 사장님에 어울리지 않는 1구 가스레인지는

보는 사람을 애타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이 가게를 배정받은 꼬마 캐릭터를 보며

거대한 버거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아빠 웃음이 나온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하나의 노림수 아닐까.


베이스 스트리트

5-25 Tonoochō, Sasebo, Nagasaki 857-0864 일본


햄버거도 슬로푸드다:빅맨 버거

빅맨버거

21세기에 들어 다이어터들의 주적이 되어버린 햄버거.

그런데 사실 햄버거만큼 완전식품은 없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의 완벽한 조화, 이런 음식이 어디 있는가!


빅맨 버거는 이러만 주장의 완벽한 증거자료이다.

사세보에 직접 공장까지 있는 이 햄버거 가게는

베이컨, 패티, 소스부터 마요네즈까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슬로푸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베이컨 에그 버거

빅맨 버거는 베이컨 에그 버거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사세보 버거의 시초가 된 가게이다.

요즘은 모든 가게들이 자신을 원조라 주장하지만

빅맨 버거는 사세보시에서 인정까지 한 진정한 "원조"가게이다.


빅맨 버거의 베이컨 에그 버거의 특징은 육즙이다.

직접 만든 신선한 패티는

"육즙을 가둔다"라는 말이라는 낭설을 뒤집어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혀에 때리 붙는다.

또한 그 육즙이 스며든 햄버거빵의

찹쌀떡 같은 식감은 저작운동을 하는 입속을 월미도 디스코팡팡으로 만들어버린다


만화 속 햄버거 같은 찹찹 감기는 식감을 원하는가?

여기 빅맨 버거가 독자들의 입속을 워터파크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빅맨 버거

7-10 Kamikyōmachi, Sasebo, Nagasaki 857-0872 일본


튜닝의 끝은 순정:C&B버거

C&B버거

사세보 아케이드 거리의 시작점에는 C&B버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햄버거 모양처럼 생긴 가게의 로고가 독특한 이 가게는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캐릭터를 배정받은 가게이기도 하다.

직접 그린 캐릭터 메뉴판

사장님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는 주문판.


인기 캐릭터의 위력과 강남 아파트급 위치 선정에

행사 초창기에는 그야말로 "줄 서서 먹는 집"이었다.


사세보에서 버거 맛집을 돌아다니는 원동력은

바로 가게의 히든카드를 찾는 것.

C&B버거의 히든카드는 바로

그대로  간직한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C&B의 베이컨 에그 버거

사실 사세보 버거의 패티는 얇은 것이 특징인데.

전후 식량사정이 좋지 못했던 일본이기에, 패티를 최대한 얇게 펴냈기 때문.

요즘은 대부분 두껍고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두꺼운 패티로 바뀌었지만,

C&B는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의 고집처럼 여전히 얇은 패티를 고집하고 있다.


잘 모르는 손님들은 얇은 패티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얇은 패티는 절대 약점이 될 수 없다.

패티의 빈자리를 채우는 베이컨과 계란의 두꺼움은

또 다른 풍미와 식감을 경험하게 한다.


다른 사세보 버거들이 화끈하게 튜닝된 강력한 출력의 스포츠카라면

C&B의 버거는 잘 관리되고 사랑받은 할아버지의 올드카같은 느낌이랄까.


C&B버거

3-1 Shimokyōmachi, Sasebo, Nagasaki 857-0875 일본


햄버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유키 아저씨의 사세보 버거

유키아저씨의 사세보버거가게 앞에 펼쳐진 큐쥬큐시마의 전경

사세보 시가지에서 좀 많이 떨어진 큐쥬큐시마국립해상공원 쪽으로 향하다 보면

사세보 동물원 뒤쪽 산 중턱에 있는 햄버거집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 어째서 이런 곳에 햄버거집을 만들었을까?

유키 아저씨의 사세보 버거는 "정말 먹고 싶으면 와라"라는 굉장한 배짱을 가진 가게이다.

필자는 이런 배짱을 매우 좋아한다.


스페셜 사세보 버거

이제까지 필자는 수많은 햄버거를 먹어오면서

과연 햄버거의 최고의 재료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다녔다.

바로 이곳에서, 평생 풀 수 없을 것 같던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유키 아저씨의 사세보 버거의 특징은 바로 빵이다.

직접 반죽하고 발효하며 직접 오븐에 구워낸 수제 빵.

일반적인 햄버거빵과는 확연히 다른 식감을 보여준다.


마치 바게트 빵을 먹는 것 같은 쫄깃함과 껍질의 바삭함.

만약 장발장이 이 빵을 훔쳤다면, 들키기 전에 전부 먹어치워서

완전범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햄버거 가게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아름다운 전경

범죄적인 식감의 빵을 가진 햄버거.

밥상의 주인이 쌀인 것처럼, 우린 햄버거의 진정한 주인을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베이컨이나 야채가 빠졌더라도 햄버거는 햄버거지만,

빵이 없는 햄버거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음식이다.

햄버거 여행의 마무리에 걸맞은 가장 아름다운 햄버거 아닐까.


유키 아저씨의 사세보 버거

190 Funakoshichō, Sasebo, Nagasaki 857-1231 일본


잘 만든 진토닉 같은 키덜트 산업과 음식산업의 만남


사세보역과 버스정류장에 있는 캐릭터간판

그저 작은 소규모 도시에 불과했던 사세보는

키덜트 산업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잘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리와 애정이 있는 한

게임 캐릭터, 아니 그녀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도시가 더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게임과의 콜라보를 넘어, 마을 전체가 만화가 되어버린

정말로 만화 같은 마을의 이야기는


다음장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FIN-


글쓴이-쉐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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