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프로듀서 Sep 28. 2019

인싸피케이션의 시대

탄가 시장을 통해 보는 인싸문화의 어두운 그림자

여행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간단하다.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필자는 여행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타지의 문화와 언어를 몸소 체험하고 느끼며 부딪히는 것은

책으로 얻는 지식보다 더욱 생생하고 진실된 경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옛날보다 더욱 쉽게 관광지의 정보를 알고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SNS의 등장은 여행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었다

한번 인터넷 검색창에 자신이 떠나고 싶은 장소를 검색해보자.

조금 유명한 지역이라면 SNS에서 수많은 자료들이 터져 나오고,

SNS만 둘러봐도 여행 따윈 안 가도 될 정도로 사진과 영상 등등 다양한 방식의 정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여행의 순서나 스타일이 겹치는 글이 많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구경하는 관광지, 식사하는 장소, 사진 찍는 위치까지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심지어 사진 찍는 포즈나 사진 편집까지 말이다.


'인싸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여행지'

'이곳을 놓친다면 당신은 인싸가 아니다'

인싸... 인싸... 대체 그놈의 인싸가 무엇이길래 그러는 것일까.

똑같은 반팔티를 입은 사람들

노스페이스 패딩과 파타고니아 티셔츠의 유행,

사실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이라고 불린 이유는

"그 당시에 흰옷이 유행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줄 정도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런 유행을 리드하는 문화에 소비문화가 결합되며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유행을 리드한다"라고 SNS에 자랑하는 것이 이젠 당연한 일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열심히 조사해서 글을 쓰는 것일까, 어차피 인싸들은 관심조차 없을 텐데 말이다."

요즘 칼럼니스트 10명 중 11명은 이런 생각을 달고 살 것이다.

인싸들의 영상과 이미지가 판치는 SNS에서 글의 파급력은 한없이 무기력하다.


인싸 문화를 그저 유행을 좇는 단순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해졌다.

이젠 인싸들이 문화를 찾아다니는 시대를 지나, 인싸들이 문화를 변화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조미료 폭탄인 자극적인 냉면육수처럼, 점점 단순화되며 일회성 즐길거리가 되어가는 여행,


칼럼니스트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죽어가던 전통시장을 부활시키다

탄가시장 입구(좌)와 탄가시장의 전경(우)

필자가 대학교에서 외식경영을 전공할 당시, 탄가시장은 성공적인 전통시장의 부활 사례로 꼽히며

늘 대형마트의 규제만을 외치는 한국의 전통시장들이 배워야 할 롤모델로 꼽혔다.


목조건물로 이루어진 탄가시장은 한때는 '고쿠라의 식탁'이라 불릴 정도로 큰 규모의 시장이었지만

대형 마트라는 시대의 흐름을 버티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화재로 인해 시장 일부분이 손실되며

재개발의 도마 위에 올라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와도 같았다.

탄가시장 대학당

이러한 시장을 살린 것은 대형마트의 규제나 지방자치단체의 상품권 뿌리기가 아니었다.


기타큐슈시립대 학생들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탄가시장살리기 프로젝트,

젊은이들과 관광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작은 행사를 꾸준히 열면서 시장을 하나의 문화복합시설로 만들었으며, 이렇게 끌어모은 관광객과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 '대학당'을 만들어내면서 탄가시장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대학당이 그저 특정한 하나의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였다면, 탄가시장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모든 상인들이 이득을 보게 할 수 있을까?"라는 학생들의 생각은 '대학 덮밥'이라는 메뉴를 만들어냈다.

그저 흰쌀밥만 나오는 대학덮밥

대학 덮밥을 주문하면 그저 그릇에 흰쌀밥만 달랑 담아준다.

처음엔 '이게 대체 뭐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 덮밥을 먹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학생들의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웃음이 나오게 된다.


대학 덮밥은 탄가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메뉴판으로 만들었다.

시장에서 반찬을 구입하여 바로 그릇 위에 올려 직접 나만의 덮밥을 만드는 DIY 시스템은

탄가시장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는 즐거운 체험거리를, 시장상인들에게는 새로운 수익이 되었다.


신박한 아이디어로 기타큐슈의 전통시장과 문화도 지키고 많은 수익도 창출했던 탄가시장.

이랬던 탄가시장이 변하고 있다.


전통시장에서 전통이 사라지다

백종원씨가 방문했던 탄가시장 대학당

한국에 탄가시장 대학당이 알려진 것은 꽤나 최근이다.

대학당이 생긴 것은 2008년이나 백종원 씨의 방송에서 알려진 것이 2018년이니

한국의 인싸들에게 알려진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뭐, 이전부터 일본 여행에 조예가 깊은 분들의 블로그나 책을 통해 여러 번 알려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탄가시장은 '일본'다운 분위기와 느낌을 간직한 전통시장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탄가시장을 다시 한번 방문했던 필자는 확실히 방송 전과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본 불매운동 직전인 7월의 이야기다.)

대학당 내부에서 바라본 탄가시장

가게마다 보이는 한국어 카탈로그

빽빽하게 길을 채운 한국인 관광객들

단체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소리


여기가 기타큐슈의 탄가시장인지 부산의 자갈치시장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릇을 들고 시장를 돌아다니면 기분이 참 묘하다

시장을 가득 채운 것은 장을 보러 온 기타큐슈 시민들이 아닌, 그릇을 들고 돌아다니는 한국인들이었다.


기타큐슈의 전통음식이자 특산물인 고등어조림(누카미소)를 파는 가게보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가게는 놀랍게도 한국식 양념치킨 소스를 쓴 가라아게 집이었다.


그릇에 음식을 담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밥이 식든 말든 수십 분 동안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뭔가가 달랐다.

전통시장이 아니라 마치 전주 한옥마을 같은 하나의 테마파크가 되어버린 느낌,

탄가시장은 한국 관광객들의 인싸테마파크였다.


이쯤되면 분명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대체 자기는 뭐 얼마나 여행을 다녔다고 저렇게 허세을 부리는 걸까'


맞다, 필자는 허세를 부리고 싶다. 그래야 진정한 여행을 아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까.


SNS인싸의 시대, 긴 설명과 글은 "설명충"이라고 놀려대며

해외여행에서의 체험을 그저 인스타에 자랑거리로 올리는 인싸들에게

탄가시장은 그저 하나의 "독특한 자랑거리"일 뿐이다


여행이란 의미가 점점 바뀌고 있다.

경험과 공부가 아닌 그냥 일종의 사치적인 자랑거리가 되어간다.


황당하고 골 때리는 인싸문화의 문제점

인싸문화의 문제점 중 하나는 유행만 바라보고 잘못된 문화도 인싸들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1대라는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단종된 기아 카렌스

기아 카렌스의 몰락은 한국 자동차 문화의 극단적인 유행 문화를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큰 짐칸을 원하면서 왜건은 짐 싣는 차처럼 생겼다며 싫어하고

사람이 많이 탈 수 있는 차를 원하면서 밴은 너무 거대하고 비싸다며 불평한다.


이런 한국인들의 취향에 완벽한 합의점이 바로 미니밴인 카렌스였다.

길쭉하게 늘리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왜건보다 균형 잡힌 디자인과 넓은 트렁크

그리고 미니밴이라는 이름답게 7명까지 태울 수 있는 실용성 넘치는 내부까지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시장에서는 현대 라비타와 함께 기아의 대표 효자상품이었다.


마치 대한민국을 위한 자동차 같았던 카렌스는 2018년 10월 단 한대라는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파란장만했던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마쳤다.


황당한 점은, 실용성 넘치던 카렌스를 죽인 암살자가 바로 소형SUV라는 것이다.


대표 소형SUV 기아 스토닉, 쌍용 티볼리, 현대 코나

어이가 없다.

짐을 편하게 실을 수 있는 넓은 트렁크와 탑승자의 편안함을 위한 넓은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골프백도 안 들어가고 몸을 구겨 넣어야 하며 SUV이름값도 못하는 '도심형'인 소형SUV를 구입한다.

마치 누군가 최면이라도 걸은 것처럼, 소형SUV의 판매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카렌스 개발진들은 하늘이라도 원망하고 싶을 정도겠지만, 필자는 이역시 인싸문화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젊은 층 소비자를 겨냥한 소형SUV들은 인싸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경차는 폼이 안 나고, 조금이라도 크기 좀 있는 세단은 가격이 너무 올라가니

저렴한 가격에 크기도 좀 있는 소형SUV들은 인싸들의 자랑 문화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격이었을 것이다.


허세에 찌든 인싸문화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흥행 대성공을 한 인터스텔라

한국 외 국가에서는 흥행이 흐지부지했던 인터스텔라는 유독 한국에서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높은 수준의 과학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주입식 교육과 입시위주 교육으로 창의성 없고 과학에 흥미를 잃은 한국인들이 과학 수준이 높아서 영화를 잘 이해했다니, 지나가던 문과충이 코웃음 칠 이야기다.


필자는 인터스텔라의 흥행 당시 SNS의 상황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리는커녕 과학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두 번 세 번 재관람하며 마치 자신이 물리학자가 된 듯 영화의 수준에 감탄했다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인터스텔라는 한국의 '지적 허영심'을 뼈저리게 잘 보여준다.


일회용품 문화

지나친 상업화가 지적되는 전주 한옥마을

인싸여행의 대표 성지인 '전주 한옥마을'

이곳을 방문했던 필자는 아직도 전주에 대한 실망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마카롱, 꼬치, 추로스 같은 음식들의 한국을 대표하는 한옥마을에서 판매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국적불명의 음식을 한식이라 추켜세우며 한식 세계화를 논하는 한국 정부를 보는 것 같다.


전주시민들과 많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늘 지적해 왔지만

인싸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꿀타래가 궁중 다과인 줄 아는 인싸들에게

한식의 전통 따윈 지루한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과도한 설명을 비판하는 신조어) 일뿐이다.


인싸들에게 한옥마을은 그저 인스타그램을 위한 스튜디오일 뿐이고

심심하고 따분한 한식보단 자극적인 맛의 꼬치 음식이 전주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방송을 통해 알려지는 국제전자상가

더 큰 문제는, 인싸문화의 힘에 밀려나는 B급 마이너 문화들이다.

'나 혼자 산다'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국제전자상가는 과거 만화, 게임마니아들의 성지이자 마이너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쉼터였지만

방송 이후 수많은 인싸들이 찾아오며 막상 이 곳의 주요 소비자였던 오타쿠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그저 SNS 자랑거리를 늘리기 위해 국제전자상가를 찾는 인싸들로 인해 밀려나는 주요 소비층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인싸들을 통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속력과 충성도가 강한 B급 마이너문화와 달리, 인싸문화는 지속력이 없는 '일회용'문화일 뿐이다.

골목식당 방송 후 논란이 끊이지 않는 포방터 돈까스

인싸는 결코 충성도 높은 손님이 될 수 없다.

골목식당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뒤 늘 논란이 끊이지 않는 포방터 돈까스처럼, 마치 메뚜기 떼 같은 인싸들의 습격은 가게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상권 자체를 초토화시켜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의 힘을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인싸문화의 문제점을 이제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의 문화활동을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나눈다면

필자는 3~7등급을 인싸문화라고 생각한다.

3~7등급의 인싸문화가 계속 지속된다면, 한국의 문화는 점점 하향평준화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마이너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마이너 문화인 만화문화는 1~2등급의 수준 높은 문화일 수도 있지만 그저 만화캐릭터의 상품성과

섹스어필만 내세우는 10등급의 최악의 문화일 수도 있기 때문.)


우리는 허세에 찌든 SNS의 인싸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깨우쳐야 한다.


자신이 아싸라고 한탄하지 말라, 아싸인 당신이 바로,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갈 주인공일 수도 있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