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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프로듀서 Oct 20. 2019

이불 밖은 즐겁다

이불속에서 나와 자연으로 향하는 오타쿠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람

대부분 오타쿠들은 히키코모리 성향이 강하다

오타쿠라는 단어의 본디 뜻은 집이라는 뜻이 있다.

단어의 원래 의미답게 오타쿠의 이미지는 대부분 집에 틀여 박혀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방에 틀여 박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다 보니 극도로 사회성이 낮아지게 되고, 한참 일을 해야 할 나이에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국가 입장에서도 크나큰 인력손실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각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러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에서 논란의 중심은 언제나 오타쿠였다.

집에서는 즐기기 힘든 콘텐츠가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히키코모리 문제를 오타쿠 탓으로 돌리기에는 요즘 만화 콘텐츠의 스타일이 굉장히 활동적이다.


지역과의 콜라보를 통한 자체 지역행사라던가, 이벤트성이 강한 콘서트 등등

오타쿠는 점점 '방에 틀어박혀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람에서 수많은 오타쿠들을 자연으로 향하게 만든 만화를 있다.


산이 없는데 산이 유명한 곳

일본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후지산 이미지가 바로 야마나시현이다.

주변이 전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인 야마나시현은 히라가나 그대로 읽는다면 '산이 없다'라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마나시현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산인 후지산이 가장 잘 보이는 지역이다.


인터넷에 '일본'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가장 자주 뜨는 이미지인 후지산 사진은 대부분 야마나시에서 찍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이름과 다르게 산이 굉장히 유명한 지역인 이곳은 이래저래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지역인 점과 수도권에서 가깝다는 점에서 한국의 충청북도와 유사하고, 실제로도 충청북도와 자매결연이 맺어진 지역이다.

야마나시의 특산물인 복숭아와 포도를 이용한 와인

또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나시'는 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답게 배가 매우 유명한 지역이며 복숭아와 포도도 매우 유명하다.

이 때문에 와인을 주제로 한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 자주 거론되는 일본 대표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스키장, 온천 같은 여가시설이나 다케다 신겐의 유적지 등등 

축복받은 자연과 풍부한 관광자원, 그리고 수도와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표 관광지인 이곳은 '더 이상 콘텐츠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어판 야마나시현 소개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유루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야마나시현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유루캠'이라는 글씨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대부분 지역의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갈 경우, 그 지역의 명물을 가장 앞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째서 야마나시현은 배나 복숭아, 심지어 다케다 신겐도 아닌, 만화를 올려둔 것일까?


오타쿠를 이불 밖으로 끌어내다

2015년 출판된 유루캠

2015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유루캠'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캠핑을 시작하게 된 고등학생 '시마 린'을 주인공으로 하는 캠핑을 소재로 한 만화다.


남알프스로 불리고 있는 야마나시현 주변 캠핑장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만화는 캠핑 계획부터 도구 마련, 목적지까지의 여행, 음식 등등 등장인물을 통해 전해지는 현장감과 간단한 캠핑 지식 등을 얻을 수 있는 나름 신선한 소재의 만화였다.


하지만 그다지 인기 있는 만화는 아니었다.

캠핑이라는 소재는 젊은 층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중년층의 취미라는 시선이 강했고 게다가 캠핑을 즐기는 중, 장년층은 만화에 크게 관심이 없으니, 어찌 보면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본의 캠퍼들 사이에서는 '현실성 없는 만화'라는 말도 듣고 있었다.

아무리 캠핑을 좋아한다 해도 여고생이 50cc 스쿠터로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인적도 없는 산기슭의 캠핑장에서 혼자 밥을 해 먹고 혼자 텐트를 치고 혼자 잠을 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루캠의 판매량은 늘 바닥을 기었고, 한국은 커녕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18년 방영된 유루캠의 애니메이션 판

그러던 2018년, 유루캠의 애니메이션판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만화책처럼 큰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제작진이 직접 캠핑장으로 로케이션을 나가서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을 애니메이션에 공들여서 반영한 덕분에 따뜻하게 치유되는 야마나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그대로 브라운관을 통해 전할 수 있었고, 많은 만화팬들을 감동시켰다.


TV 방영 이후에는 일본 아마존에서 블루레이와 DVD를 45776장을 팔아치우며 역대 TV 애니메이션 중 12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고, 이후 인기가 없어서 안 팔리던 만화책까지 순식간에 150만 부를 팔아 명작 반열에 들어가는 만화로 인정받게 되었다.


유루캠의 가장 큰 효과는, 집에서만 만화를 즐기던 많은 오타쿠층에게 '캠핑'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만화의 주인공인 '시마 린'이 조용한 분위기의 캠핑을 위해 비시즌 기간인 겨울에 캠핑을 나가는 모습은

추운 날씨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오타쿠들을 캠핑장으로 이끌었다.

만화 속 장소를 소개하고 있는 야마나시현 공식 사이트

야마나시현 역시 유명 관광지답게 귀신같이 유루캠의 인기를 알아챘다.


야마나시현 공식 홈페이지에 에피소드별 장소를 자세히 설명하며 캐릭터의 대사까지 집어넣는 섬세함으로

처음 찾아가는 사람들도 정보 부족으로 헤매지 않고 공식 사이트의 설명만으로 장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만화의 파워와 야마나시현의 연륜에서 나오는 홍보실력 덕분에 많은 팬들은 야마나시현으로 향했는데,

야마나시현이 조사한 설문조사

야마나시현에서는 이를 '유루캠 효과'라고 불렀다.


실제로 야마나시대학과 야마나시 중앙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470명의 팬에게 진행한 '유루캠을 시청한 뒤 캠프를 하고 싶어 졌습니까?'라는 설문조사에서 무려 92%가 '그렇다'라고 대답하였고 43.4%는 실제로 캠핑을 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간과 업무에 치여사는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야마나시의 캠핑은 그야말로 '치유'였다.


일본은 물론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찾아온 캠퍼들로 야마나시는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그렇다면, 유루캠은 과연 얼마나 야마나시에 도움이 되었을까.

그저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사진만 찍고 간 사람들이 아녔을까?


'유루캠 효과'의 위력

2018년 11월에 야마나시현의 폐교에서 열린 음악제

2018년 11월 야마나시현은 만화 속 주인공의 학교 배경이 되는 폐교에서 '비밀결사 담요 음악제'를 개최했다.

만화에 덕분에 폐교가 된 모교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을 본 주민들에게는 그야말로 감동적인 날이었다.

또 일부 주민들은 유루캠 덕분에 자신의 마을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음악제에 참가한 관광객의 평균 관광소비액을 분석한 자료

당시 음악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의 평균 관광소비액은 평균 2만 5152엔으로 이는 야마나시현의 평균 관광소비액의 약 2배 정도의 수치였다,


자료가 보여주는 것처럼 유루캠은 야마나시현의 또 다른 콘텐츠가 되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특히 대부분의 만화의 성지순례 콘텐츠가 주로 만화의 배경이 된 지역을 방문하고 촬영하는데에서 그치는 데에 반해, 유루캠의 경우 성지로 불리는 장소에서 직접 캠프를 하고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야마나시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른 캠핑장도 방문객이 높은 수치로 증가하는 등, 일본 이곳저곳에서 유루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유루캠 효과로 많은 캠핑용품업체가 이득을 볼 때,

최고의 홍보효과를 본 의외의 기업도 있었다.

주인공의 애마인 야마하의 '비노'

일본의 바이크 회사인 야마하.

콤팩트한 사이즈와 귀여운 차제, 운전이 간편한 CVT 변속기를 탑재해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스쿠터인 비노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카피판이 만들어진 야마하의 50cc 스쿠터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오토바이를 타고 캠핑을 다니는 주인공의 애마로 만화에 등장한 비노는

애니메이션 방송 이후 중고차와 신차 시장에 비노 열풍을 불러왔고, 이는 야마하에까지 영향을 준다.

2018년 2월 10일 출시된 청록색 비노

야마하는 원래는 비노에 없던 색깔이던 청록색의 비노를 새로 출시한다.


2018년 2월 10일에 선보인 청록색 비노는 야마하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이후 유루캠 버전 비노를 단 1대만 특별 제작하여 추첨을 통해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야마하가 유루캠 효과를 인식하고 출시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후 청록색 비노는 무려 17일 만인 2월 27일 완매 되면서 다시 한번 유루캠 효과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바이크 양쪽에 달고 다니는 '사이드백'이 유루캠 로고가 그려져서 판매되는 등

바이크를 타고 캠핑을 다니는 일명 '모토캠핑''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루캠으로 홍보되는 야마하의 3륜 스쿠터 '트리시티'

야마하는 이후에도 3륜 스쿠터인 '트리시티'를 유루캠 만화로 홍보하는 등, 

유루캠 효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야마하의 대표 스쿠터인 티맥스나 엔맥스가 아닌 3륜을 가진 독특한 모습의 트리시티를 내세운 것은

겨울이 배경인 유루캠 특성상, 비시즌인 겨울에는 주행이 위험한 2륜보다

더욱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한 3륜 스쿠터인 트리시티의 장점을 보여주기 위한 야마하의 전략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유루캠 효과'는 비단 야마나시현뿐만 아니라, 

캠핑을 주력으로 삼는 지역이나 기업까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캠핑의 현주소

캠핑인구는 감소하는데 캠핑장과 사업규모는 점점 커진다.

야마나시현과 유루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급속도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며 높은 문화 수준을 누리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특히, 한국도 레저문화와 캠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관련 산업과 캠핑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캠핑장으로 인한 자연파괴와 적자를 거듭하는 출혈경쟁에 있다.


필자의 사는 춘천역시, 과거 꽤나 유명했으나 지금은 없어진 고슴도치섬이나 중도의 캠핑장 등등

레저산업의 중심지다 보니 꽤나 많은 캠핑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캠핑장이 레저산업의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캠핑장들이 문을 닫았고, 그중에는 농지로 등록된 토지를 캠핑장으로 운영하다 적발되어

철거된 캠핑장도 있었다.

특히 필자가 캠핑장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자연파괴'다


필자의 시골집 옆에는 매우 울창하고 보기 좋던 산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트럭과 사람들이 와서 나무를 베고 땅을 파더니 

그 자리에 모토 캠핑장을 만든다고 했다.

코딱지만 한 동네에 캠핑장을 또 만든다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장난치는 거도 아니고, 산을 다 헤집고 민둥산을 만들어 놓고선 하는 말이

기업이 부도가 나서 그만둔다고 했다.


그렇게 시골집 옆에 있던 산은 흉물스러운 민둥산으로 몇 년 동안 방치되다 지금은 양봉장으로 바뀌었다.

만화와 똑같은 모습의 캠핑장은 그 자체가 성지순례가 되는 컨텐츠다

아무리 캠핑이 야외에서 즐기는 활동이라지만, 캠핑도 엄연한 '여가활동'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지만, 그만큼 느낀 점과 즐거운 기억이 있어야 한다.

콘텐츠가 있어야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가 가능한 것이지, 캠핑장만 덜렁 있다고 관광객이 느는 것이 아니다.


유루캠 효과는 지자체에게는 '우리 지역으로 캠핑을 올 만큼 콘텐츠가 즐겁고 풍부한가?',

캠핑장 업주에겐 '산을 갈아엎으면서까지 캠핑장을 지어야 하는가?',

캠퍼들에겐 '고가의 장비가 있어야만 즐거운 캠핑이 가능한가?'라는 꽤나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며 소박하지만 기억에 남는 캠핑을 하는 만화 속 그녀들의 모습과

일시적인 반짝 효과에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는 유루캠 효과를 지속하기위해 노력하는 야마나시현이

바로 대한민국의 캠핑문화가 따라가야 할 롤모델이 아닐까.


-FIN-

글쓴이-쉐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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