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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17. 2019

#19 눈 감듯 귀도 감을 수 있을까?

선생님의 멘탈이 깨지면 벌어지는 일들

전편: #18 왕관에 무게에 무너지다

https://brunch.co.kr/@simon1025/28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을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심리적 상처를 회피하려는 심리인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방어기제의 종류와 역할에는 부정, 승화, 퇴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중 나에게는 ‘회피’라는 방어기제가 발동되었다.


교실은 매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장소였다. 몸을 간지럽히듯 간질간질한 스트레스부터 일순간 치솟아 오르는 스트레스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교실은 나에게 회피해야 할 기피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주말 이틀을 쉬고 나면 교실은 잠시 나에게 낯설어졌다. 월요일은 그러한 교실로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뻔했다. 누구에게나 월요일은 두렵다지만 나에게 월요일은 특히나 괴물로 느껴졌다.


교실은 아침 출근할 때부터 퇴근 때까지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소리는 나의 신경을 건들었다. 아이들을 회피하기 전까지 소리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데 필요한 소통도구였다. 너무 시끄럽지만 않다면 제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대화하지 않을 때 소리는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나는 소리가 제거된 정적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도저히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보기 싫은 것이 있다면 눈을 감으면 된다지만 듣기 싫은 것이 있다고 하여 귀를 감을 수는 없었다. 귀에는 왜 덮개가 없는지 원망스러웠다. 귀를 감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최대한 교실에서 벗어나는 것. 우리 학교는 1,2교시를 쉬는 시간 없이 블록타임으로 운영하고 2교시와 3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을 30분으로 운영하였다. 행복놀이 시간이라 불렀다. 나에게도 해피 타임이었다. 2교시가 끝나는 10시 20분이 되면 서둘러 학년연구실로 향했다. 학년연구실은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한 교실과는 차원이 다른 안락함이 있었다. 나에게는 해방된 시간이었고 귀에게는 쉬는 시간이었다. 또 한 번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최대한 빨리 먹고 학년 연구실로 서둘러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과 있는 중에 1시간 정도는 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은 참 상대적이었다. 아이슈타인의  E는 MC제곱과 같은 상대성이론은 이해 못하지만 시간이 때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30분 동안 끓는 물에 손을 넣고 있는다면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일 테지만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의 30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5분전부터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학생 때는 선생님들이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더 아쉬워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1분이라도 교실에 더 늦게 들어오기만을 바랐지만 언제나 선생님들은 제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오셨다. 선생님들은 대단한 프로였던 것 같다. 발뒤꿈치라도 붙잡아 지연시키고 싶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은 냉정하게도 흘러갔다. 와중에 위로가 되는 것은 학년연구실에 있던 선생님 모두 한마음으로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한다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귀는 다시금 아이들의 소리에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 기구한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수업에 있어서도 스트레스가 될 만한 것들은 제거하기 시작했다. 일단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수업은 매번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다. 처음 시도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시행착오는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을게 뻔한데 이를 지속할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 1등급 인성보고서건 뭐건 없었다. 스트레스 앞에서는 그 무엇도 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수업을 설계함에 있어서도 최대 포인트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소란스러워지거나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패스했다. 결론적으로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지지 않았다. 건조한 수업은 건조한대로 스트레스를 유발시켰다. 전에는 성공적이었던 수업 흐름도 내가 열의가 없으니 포인트가 제때 살지 못하였다. 수업능력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하며 스트레스는 모습만 바꿔 나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살면서 우울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속내를 살짝 내비치기는 했으나 나의 우울함을 완연하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가 명확하지가 않았다. 유별나게 힘든 학생도 없었고, 민원을 넣는 학부모도 없었다. 주위의 정말 힘들다 싶은 선생님들을 보면 학부모에게 고소를 당하거나 문제 학생이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정도는 되어야 했다. 남들이 보기에 너무도 평이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인성보고서 2등급을 받았던 과거의 영광이 있었다. 별 계기 없이 추락해버린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힘들었다. 출근이 두려웠고, 교실에서의 하루가 우울했다. 이제는 퇴근 후의 일상마저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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