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람 Oct 31. 2019

#26 난 시바 신이 아니잖아

전편: #25 지적하지 말고, 지적하지 않게 만들자

https://brunch.co.kr/@simon1025/50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한다는 뜻의 줄임말이다. 우리는 때로 눈치 없이 모든 상황에 끼어드는 사람을 발견한다. 잘난 체를 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순수하게 돕고 싶은 선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 의도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상황에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된다.


되짚어보면 난 교실에서 낄끼빠빠를 잘 행하지 못했다.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게다가 완벽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영향력은 대부분 지적으로 탈바꿈되었다. 지적은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유발시켰다. 지적을 하지 않으려면 나의 완벽주의를 뜯어고쳐야 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뿐더러 자신이 없었다. 단기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낄 때와 빠질 때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다음 차례의 덜어내기였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낄 때와 빠질 때를 칼로 두부 자르듯 딱 잘라서 구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빠진다고 하는 것이 외면을 의미하는 것이 되면 안됐다. 어쨌든 관리가 필요한 상황들이었다. 때문에 이번의 덜어내기는 신중성을 요했다. 한 번에 뭉텅이로 빠지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대체방안을 마련한 뒤에 빠지는 전략을 택했다.


먼저 1인1역을 조정했다. 1인1역이 지방정부라면 담임인 나는 중앙정부였다. 그 동안은 중앙정부에 권한이나 역할이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1인1역을 통해 수행하는 역할이라곤 시간표 정리나 우유배분과 같이 소소한 일에 불과했다. 아이들을 믿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역할을 맡기면 교실의 시스템이 말썽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아이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청소상태는 내가 하교할 즈음에 직접 교실을 순회하며 먼지 한 톨까지 잡아낼 정도로 중요하게 다뤘다. 그만큼 청소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청소검사의 역할을 아이들에게 넘긴다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었다. 역할을 떼어내어 청소검사를 아이들의 몫으로 넘겼다.


며칠이 지나자 교실이 조금은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덜어내기는 성공과 거리가 멀어지는 듯 보였다. 살짝 조급했지만 지적을 삼갔다. 하교 시간에 청소의 중요성에 대해 간략히 언급 정도만 해주었다. 교실은 일정 수준 이상 지저분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청소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청소를 성실히 수행했다. 청소검사의 주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차이라면 청결상태의 수준 정도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예전과 같이 완벽하게 청결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나의 스트레스를 헌신해야만 얻어지는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아이들에게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동하는데 있어 선구자를 바꿨다. 지금껏 두 줄로 강당이나 급식실로 이동하면서 맨 앞에 섰던 것은 나였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며 간격을 맞추지 않는 아이, 장난치는 아이, 줄에서 벗어나는 아이를 지적했다. 소귀에 경 읽기였다. 아이들은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이동했다.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흐트러짐과 정비례했다. 역할을 넘겼다. 1인1역으로 질서지킴이라는 이름을 붙여 맨 앞에는 아이를 세우고 난 맨 뒤에서 따라갔다.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앞에 있을 때보다 뒤에 있을 때 훨씬 정돈된 모습으로 이동하였다. 질서지킴이는 나보다 훨씬 역할을 잘 수행했다. 더불어 내가 뒤에 있으니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쉬웠다. 아이가 선두자의 역할에 익숙해지니 이동 수업을 할 때에도 알아서 친구들을 지휘했다. 진즉 아이에게 넘겼어야 할 역할이었다. 눈치 없이 그곳에 끼고 있었음이 부끄러워졌다.


이번에는 더 나아갔다. 교사의 고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가르침의 역할을 나누어주었다. 물론 40분 수업을 온전히 아이에게 넘기면 나의 스트레스는 제로가 되겠지만 그건 직무유기였으니 희망사항으로만 남겨두었다. 배움에 있어 철학을 천명했다.


우리는 함께 배운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다

수업시간에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 친구를 가르쳐주는 것을 권장했다. 질문도 나보다는 친구에게 먼저 하도록 일러주었다. 친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함을 무시하지 말 것, 무작정 정답을 알려주지 말고 정답에 이르도록 길을 안내해줄 것, 잘난 체 하지 말 것 정도의 가이드라인이면 충분했다. 아이들은 나의 의도를 이해했다. 아이들끼리의 배움이 활발해졌다. 특히 수학시간의 경우 지독한 연산학습지로도 나아지지 않던 원리습득이 옆 친구의 가르침을 통해 해결됐다. 아이들은 나보다 옆 친구를 통해 더 잘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신이 아니었다. 팔도 2개, 다리도 2개, 귀도 2개, 눈도 2개밖에 없는 누구와도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유독 교실에서 신을 자처하며 모든 역할을 부둥켜안고 있었음에 괴로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팔이 8개 달린 시바신이었다면 수월했을까. 물어볼 수 없으니 알 턱이 없으나 나에겐 버거웠음이 명확했다. 내가 모든 역할을 떠맡을 수 없다는 것. 아이들도 충분히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 역할을 나누어주고 나서야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이전 08화 #25 지적하지 말고, 지적하지 않게 만들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