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람 Nov 04. 2019

#27 수업이 어렵다구요? 전 수업이 두렵습니다.

전편: #26 난 시바 신이 아니잖아

https://brunch.co.kr/@simon1025/52



드디어 수업에도 덜어내기의 칼을 들이댔다. 건방져 보일 수 있겠으나 올해 전까지 수업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드물었다. 원래부터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수업하는 게 재미있었다. 특히 “이거 수업하고는 크게 상관없는데”로 시작하는 딴 이야기를 즐겨했다. 제일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이 ‘알쓸신잡’인만큼 여러 방면에 걸쳐 수집한 잡학지식을 풀어놓으면 수업시간이 술술 흘렀다. 


그런데 올해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수업의 무게에 짓눌렸다. 수업의 성공, 실패여부와 상관없이 수업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업이 두려웠다. 처음에는 수업에 대한 눈이 생기기 시작하니 그에 따른 반성으로 비롯되나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는 부족했다. 수업이 힘들어진 데는 필시 다른 이유들도 존재했다. 짐작컨대 수업은 고도비만 상태였다. 수업에 들어있는 불순물이 너무도 많았다. 수술이 필요했다. 따지자면 지방흡입수술이 필요했다. 


먼저 빨아들여야 할 것은 강박이었다. 

나에게는 2가지 강박이 있었다. 하나는 토의토론에 대한 집착이었고, 또 하나는 마침표에 대한 것이었다. 


토의토론에 대한 강박을 해체하는 것이 시급했다. 토의토론을 위한 수업준비는 나에게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토의토론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싶었으나 토의토론을 무작정 버릴 수는 없었다. 분명 토의토론 자체는 생동감 넘치고 높은 학습효율을 자랑하는 학습방법이었다. 다만, 모든 수업을 토의토론으로 꾸려야 한다는 강박으로 변질돼버린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난 아직 토의토론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고작 몇 가지 토의토론 틀에 모든 수업을 욱여넣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수업 흐름이다보니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의 입장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수업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5시간이었다. 목요일 같은 경우는 6교시를 전부 내가 맡았어야 했다. 아무리 토의토론이 좋다한들 하루 종일 토의토론을 한다는 것은 입에서 쉰내가 날 일이었다. 


토의토론 수업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자 한 동안 발길을 끊었던 인디스쿨에 들어갔다. 다음 날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찾았다. 새로움이 넘치고 다양함이 춤을 췄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수업을 풀어간 자료들이 너무도 많았다. 다음 날 아이들은 전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다. 모든 일에는 ‘적당히’가 중요하듯 토의토론도 적당해야 함을 느꼈다. 


마침표에 대한 강박은 수업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으로부터 해체를 시작했다. 그 동안은 40분 수업 하나하나를 독립적인 개체로 바라보았다. 그러기에 준비한 수업자료는 온전히 40분 수업 안에서 투입되고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이 부족하다면 쉬는 시간을 끌어와 썼다. 마침표를 꼭 찍었어야 했다. 


마침표에 대한 강박을 없애기 위해 쉼표를 떠올렸다. 


수업을 딱딱한 40분의 틀에서 해방시키고, 마침표를 찍지 못했을 땐 잠시 쉼표를 찍어놓기로 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예상했던 것보다 특정 활동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거나 하면 흘러가는 대로 놔두었다. 미처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음 시간으로 넘겼다. 더불어 아이들이 충분히 배웠다고 여겨지면 애써 준비했던 활동지라도 쓰지 않았다.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엔 수업의 마침표가 찍혀있으니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업은 전보다 정돈되지 못한 느낌을 내었다. 다만 그것은 3인칭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랬다. 수업 안에 참여하고 있는 1나는 전보다 여유롭고 가벼워진 수업을 느꼈다. 아이들 역시 수업의 변화에 대해 밝은 표정으로 화답해주었다. 


다음에 도려내야 할 것은 욕심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모든 수업시간 내내 내 말에 집중하고, 공부한 내용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집어넣길 바랐다. 이를 위해 질문을 오남용했다. 수업 시작 전에는 복습을 위한 질문, 수업 중에는 중간 점검의 질문,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잘 이해했는지 확인의 질문을 던졌다. 물론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배움을 점검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방법이 문제였다. 질문을 통해 평가하고 피드백을 해준다기보다는 단속을 하는 형태였다. 


이에 질문부터 고쳤다. 복습을 위한 질문은 더 이상 한 사람을 지목하지 않았다. 틀리면 10번 쓰기의 과제도 지웠다. 복습을 위한 질문은 정말 필요한 때에 모두에게 물었다. 수업시간에는 말하지 않을 권리를 다시 돌려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그저 ‘패스’를 외치기만 하면 됐다. 오남용은 아이들 스스로 자정했다. 아이들은 고시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 한 순간의 딴 짓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폭력에 가까웠다. 나는 정작 연수를 들을 때 얼마나 집중했는지를 떠올려보면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숨구멍을 열어줄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빼내야할 것은 업무였다. 돌이켜보면 유독 아이들한테 짜증을 많이 내었던 때가 있었다. 업무가 많은 때였다. 업무관리에 대기상태의 공문이 반짝이면 조바심이 눈을 떴다. 서둘러 공문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간혹 3시에 연수나 회의가 잡혀있을 때는 더 마음이 졸았다. 거기다가 명단보고나 현황파악 등의 메신저를 받으면 남아있는 여유마저 사라졌다. 수업시간을 할애해가며 업무를 처리했다. 아이들에게 지시를 하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다루고 있자면 예민함이 치솟았다. 아이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지 못했고, 반복되는 질문은 못 들은 척 하거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충 얼버무렸다. 


업무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이었다. 내가 수업에만 온전히 빠져들어 있어야 수업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업무를 수업에서 들어냈다. 아침에 오면 업무포털을 여는 습관부터 버렸다. 그날 당장 처리하지 않는다고 하여 문제되는 일은 없었다. 6교시 수업이 끝나고 업무처리를 시작해도 시간은 넉넉했다. 간혹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음날에 처리해도 충분했다. 더불어 메신저는 쉬는 시간을 포함해 6교시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대충 훑어보고 창 닫기 버튼을 눌렀다. 각 선생님들의 협조가 시급한 담당선생님께는 죄송한 일이었다. 그러나 뭣이 중헌지는 나의 판단에 따를 일이었다. 

이전 09화 #26 난 시바 신이 아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