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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Nov 07. 2019

#28 가끔 고백한다. "선생님도 난처해"

전편: #27 수업이 어렵다구요? 전 수업이 두렵습니다.

https://brunch.co.kr/@simon1025/56


‘페르소나는 ’ 참다운 것‘이 아니다.

페르소나는 인간이 ’ 무엇으로 보이느냐 ‘하는 것에 관한

개체와 사회와의 타협의 한 소산이다.

그것은 어떤 이름을 받아들인다.’

-칼 구스타프 융, <인격과 전이>-



덜어내기의 방법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 간의 싸움이 주인공이었다. 교실에서 싸움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싸움은 소리 없는 신경전부터 큰 소리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다툼까지 다양했다.


아이들의 싸움에는 중재자가 필요했다. 그 중재자는 단연 나일 수밖에 없었다. 중재를 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덜어내기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전에 하던 것처럼 중재의 역할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수는 없었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과 싸움은 조심스러운 영역이었다. 자칫 더 큰 문제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뭔가를 빼거나 더하거나 바꾸거나 하는 방법도 덜어내기의 퍼즐에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었다.


마땅한 덜어내기를 찾지 못한 채, 아이들의 싸움에는 기존의 시스템으로 대응했다. 진술서를 쓰고, 상황을 재구성하고, 조정과 화해의 절차를 밟고, 나이스에 결과를 기록했다. 어쨌든 봉합은 됐다. 그러나 봉합은 자꾸 터졌다. 마치 두더지 잡기 오락처럼 이곳저곳에서 싸움이 머리를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장기적인 해결책이었다. 싸움 자체의 발생 빈도가 줄어들 수 있는 해결방법을 간절히 바랐다.


그동안 갈등과 싸움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항상 있어왔다. 학기 초에는 4시간을 들여 올베우스 학교폭력 프로그램에 관한 교육을 했다. 지속적으로 감정조절, 나 전달법, 경청, 배려에 관한 프로그램을 투입시켰다. 구두지도는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덜어내기의 자리가 없는 영역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니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딱 보니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학급회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건의 발단은 노래였다. 우리 반에는 DJ라 불리는 1인 1역이 있다. DJ의 역할은 쉬는 시간에 내 컴퓨터를 이용해 노래를 틀어주는 것인데, 이 DJ와 노래를 신청한 여자아이 간의 싸움이 일어난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었다. 결론은 DJ는 융통성을 조금 발휘했던 것이었고, 여자아이는 그러한 융통성에 불만을 가진 것이었다. 나름 무게감이 있는 싸움이었다. 사건의 봉합을 위해 진술서를 받으려는데 그날따라 힘이 쭉 빠졌다. 형사 역할에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수업을 준비했을 때부터 지루함이 예상되는 수업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건네려던 진술서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교과서를 내려놓았다. 아이들 눈을 한 번씩 바라보고 넋두리를 시작했다.


“애들아 선생님이 혼내려고 하는 게 아니니깐 잘 들어봐. 너희들이 오늘처럼 교실에서 싸우는 일이 종종 있잖아. 물론 싸울 수 있어. 선생님은 어른이지만 어른들도 다 너희들처럼 싸우기도 하고 그러거든. 근데 중요한 건 싸움이 일어나면 해결을 해야 하잖아. 그 해결에 선생님은 도움을 줘야 하는 거고. 그런데 보통 너희들이 어떤 줄 알아? 이 사람한테 물어보면 자기는 잘못 없이 상대편이 잘못했다고 그러고, 저 사람한테 물어보면 똑같이 자기는 잘못 없이 상대편이 잘못했다 그렇게 말한단 말이야. 선생님은 누구 한쪽 편만 들어줄 수는 없잖아. 선생님이라면 공정해야 하니깐. 그런데 선생님도 사람이거든. 너희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어떨 것 같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난처할 것 같아요.”


빙고. 정확히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표현이었다.


“맞아. 선생님도 난처해. 가끔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어. 그럴 때면 선생님도 진짜 힘들거든. 물론 싸움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건 너희도 알잖아. 선생님이 바라는 건 조금이라도 우리가 싸움을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자는 거지. 너희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니?”


이미 밑그림은 다 그려놓고 아이들한테 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이라면 저희들끼리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교실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위치에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선생님 일단은 주변 사람이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아요. 싸움을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편을 드니깐 기분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


학급 부회장이 의견을 내었다.


“맞아요. 아까 전에도 계속 둘이서 몰아가니깐 그 친구가 더 기분 나빠했던 것 같아요.”


동조하는 의견이 이어졌다.


“그럼 우리 앞으로 갈등이나 싸움은 최대한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 만약 내가 정말 중립적인 입장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갈등을 조정해 줄 수 있으면 개입해도 되는데, 그게 아니면 끼어들지 않도록 하자. 다들 괜찮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깐 갈등을 당사자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위험을 초래하는 일인 것 같았다. 뭔가 보안책이 필요해 보였다.


“근데 애들아 너희가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봤어.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해도 괜찮을까? 그러다가 감정에 휩쓸려서 더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잖아. 방관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아이들은 잠시 침묵했다. 현명한 해결책을 기대했다. 뜻밖의 곳에서 손이 올라왔다. 갈등의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아이였다.


“주변 애들이 저희를 떨어뜨려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조금 기분이 나쁜 정도였는데, 계속 말싸움을 하니깐 더 화가 났어요.”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이나 어른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 또한 그러했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에서 시작한 논쟁이 사소한 감정의 스파크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말싸움으로 변한 적이 꽤 있었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갈등이 생기면 당사자들은 잠깐 멈추기! 근데 우리가 경험했다시피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잖아. 그럼 주변 친구들이 어떻게 도와줘야 되지?”


“두 사람을 잠깐 떨어뜨려 놓아요.”


2번째 규칙이 탄생했다.


“자 그러면, 이제 갈등을 해결해야 하잖아. 그런데 선생님이 봤을 때 너희들의 말하기에 문제가 하나 있어 보이거든. 뭔지 맞춰볼래?”


기다렸지만 정답을 맞히는 아이는 없었다.


“너희들은 싸울 때 절대 자기 탓은 안 하거든. 근데 모든 갈등에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만 있는 경우는 없어. 한 번 확인해볼까? 지후는 그 상황에서 지후의 잘못이 뭐였다고 생각해?”


DJ 역할을 했던 아이에게 물었다.


“쉬는 시간이 부족해서 나경이가 신청했던 노래를 1분만 듣고 꺼버렸어요. 너무 제 마음대로 했었던 것 같아요.”


아이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지후가 제 노래를 꺼버려서 화를 냈어요. 욕도 했어요.”


다른 아이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봐봐. 모든 싸움에는 서로 어느 정도 잘못한 부분이 있는 거거든. 그럼 그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 이야기부터 해볼까. 선생님도 여자 친구랑 다투고 나면 그 순간은 화가 나. 화가 나지만 잠깐 멈추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생각해보잖아? 내가 잘못한 것은 뭐가 있을까. 그럼 막 선생님의 행동이 후회가 돼. 그러면서 여자 친구한테 미안해진단 말이야. 먼저 사과를 할 수밖에 없어. 그럼 그렇게 화해를 하는 거야. 그니깐 선생님이 생각했을 땐 일단 내 잘못부터 되짚어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상대방의 잘못만을 꼬집다가는 영원히 싸움이 끝날 수가 없는 거거든. 앞으로 갈등이 생기면 내 잘못부터 생각하기! 너희도 동의하니?”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3번째 규칙이 완성되었다. 혼자 붙들고 고민했더라면 나올 수 없는 규칙들이었다. 40분 수업시간을 온전히 아이들과의 대화에만 할애했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그래서 싸움이 줄었냐고? 아니 싸움은 전혀 줄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사방에서 스파크가 튀겼으며, 내 탓은 뒤로한 채 상대 탓만 늘어놓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끼어드는 아이가 줄었다는 정도였다. 하긴 단 한 번의 대화로 문제가 영화에서처럼 해결될 리는 없었다. 서희 정도는 돼야 담판을 할 수 있으니깐.


그런데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내가 언제나 솔로몬이 아니라는 것, 나 또한 힘들고 난처하다는 것을 이제야 솔직히 고백하고 털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싸움에 관한 해결책은 여전히 궁리하며 찾아야 하겠지만 최소한 ‘척’은 안 해도 되기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덜어내기가 그제야 눈앞에 나타났다. 덜어내기는 단순히 빼거나 줄이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교사의 역할에 대한 압박감, 책임감에서 잠시 벗어나 아이들에게 좀 더 진솔하게 다가는 것 또한 덜어내기의 한 방법이었다. 계속 가면을 쓴 채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가면 속은 답답하고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어두컴컴한 공간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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