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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Sep 22. 2019

#6 드디어 첫 담임인건가

준비할 게 뭐 이리 많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달디 달았던 겨울방학은 갈수록 가속도를 더해가며 끝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의 힘으로 멈출 수 없는 무지막지한 시간의 힘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또다시 한 바퀴를 완전히 돌아 2월의 정차역으로 돌아왔다.     


난 교직경력 3년차에 드디어 제대로 된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 동안의 교직경험은 중간에 휴직하거나 중간에 복직해 들어온 시간들이었다. 완전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심 각오가 남달랐다. 배정받은 학년은 6학년이었다.      


처음부터 6학년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고학년 학급담임을 해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5학년을 희망했다. 첫 담임에 6학년은 부담되었다. 그러나 학년 배정 희망서에 ‘고학년’이라고 써내었던 것이 문제였다. 관리자분들에게 “저 6학년 하겠습니다!”하고 자신 있게 내뱉은 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달리해보니 초장부터 가장 센 놈을 만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되돌아봤을 때 6학년에 배정되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느껴지는 6학년의 위엄




개학하기 전 6학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담임이 처음인지라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 교실을 꾸밀 학급환경자료가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1톤 트럭 분량의 짐을 실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등학교 교실에는 예쁘고 쓸모 있는 환경자료가 많이 필요하단 뜻이다.

다른 선생님들이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앞으로의 1년의 그림을 그리시는 동안 난 묵묵히 출력하고, 자르고, 코팅하고, 다시 자르고, 자석을 붙이는 일에 매진했다. 다 되었다 싶다가도 다른 선생님 반에 좋아 보이는 자료가 있으면 다시 칼과 코팅지를 들었다. 그 동안 교실에서 누렸던 많은 것들이 선생님의 손에서 탄생했음을 알아가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학급환경자료 제작을 마무리 지을 때 즈음, ‘인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이 가장 긴장하면서도 설레는 시간. 학급 명부를 뽑는 날이었다.     


사실 학급 명부를 뽑는 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A의 선택지로 할 것인가, B의 선택지로 할 것인가 하는 찰나의 고민과 결정으로 1년의 인연이 결정된다. 어쩌면 1년을 넘어 평생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그 순간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선택의 무게와 달리 선택의 시스템은 너무도 단순하다. 학급명부가 적힌 종이봉투를 뽑는 것. 그것으로 끝이다.     

낙장불입




그 선택을 처음 하는 나는 괜히 설렜다. 학급명부가 담긴 8개의 종이봉투를 뽑는 순서는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나의 순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다. 순서가 빠른 선생님들이 종이봉투를 뽑아가고 남은 봉투는 2개뿐이었다. 종이봉투를 뚫어져본다고, 심사숙고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괜스레 더 흰색처럼 보이는 종이봉투를 뽑았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아이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힌 학급명부를 꺼내 읽었다.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읽으며 어떤 아이일지 머릿속에서 그렸다. 정확한 형태는 묘사되지 않지만 모네의 인상주의처럼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2017년 3월 2일.

날씨: 맑음

마음: 두근두근, 쿵쾅쿵쾅, 조마조마     


검은색 양복에 푸른빛 코트를 걸쳤다. 노타이가 사회적 대세라고 하니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빨리 일어난다고 일어났는데 괜히 개학 첫 날이라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8시 30분에 딱 맞춰 출근을 했다. 원래라면 아이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로 시끄러울 학교의 아침공기에 고요함과 적막함이 맴돌았다. 역시 개학 첫 날이구나 싶었다. 내가 맡은 6학년 마루반은 5층에 있었다. 5층으로 가는 길목에서 급히 선회를 해 4층 6학년 연구실에 먼저 들렸다. 챙길 게 있었거나 회의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교실로 입장하기 전 혹시 연구실에 있을 수 있는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괜히 목만 한 번 축이고 다시금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근두근.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 앞에 섰다. 이제 드르륵 문을 열면 25개의 눈이 날 쳐다볼 텐데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심호흡 한 번에 입 꼬리를 광대 쪽에 걸었다.      


‘잘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짧은 응원을 던지고 문을 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시선은 기 싸움이야’ 아이들의 눈을 일부로라도 더 강력히 쳐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전체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인상은 4~5년 정도의 경력에 친절한 듯 단호한 젊은 호감형 남자 선생님이었다. 몇몇 아이들도 나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기에 그렇게 보이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곤 “안녕” 한 마디만을 허공에 뿌리고 교사용 책상으로 가 컴퓨터를 켜고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아직 컴퓨터는 켜지지 않았지만 괜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툭툭 두드렸다. 고개를 들어 아이들의 시선과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뭐 책에서는 개학 첫날에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혹은 따뜻한 이야기를 해주라는데 전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터질 듯한 긴장감에 편도체만이 반짝반짝 불을 내며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분위기에 민감하다. 담임선생님의 침묵에 아이들 역시 동조했고 반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얼어붙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급한 일이 있는 것 마냥 티를 내며 서둘러 교실에서 나왔다. 숨이 막힐 듯한 고온의 사우나에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나오긴 나왔는데 어디 갈 데가 없었다. 화장실이나 한 번 들리고 다시 반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두근두근. 첫 만남의 떨림은 쉽사리 가라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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