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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Sep 23. 2019

#7 담임이 처음인지라.

생각보다 떨리네. 많이.

전편: #6 드디어 첫 담임인건가

https://brunch.co.kr/@simon1025/8




두려움이 가득 찰 땐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저지르고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들 앞에 섰다.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 훑었다. 흐릿한 인상으로만 보였던 아이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 예뻤다.


“떨리지?”


아이들한테 물었다. 정작 제일 떨고 있는 건 나면서. 아이들은 이제야 슬며시 웃었다. 한 번 그렇게 얼었던 분위기가 풀어지자 교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췄다. 쑥스러워서 눈을 내려까는 아이들, 벌써부터 장난기를 눈에 모으고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낯선 이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아이들, 옅은 웃음을 눈에 머금은 채 나와 눈을 마주치는 아이들,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아이들이 있었다.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내 자식 같았다.

분명 이런 표정도 있었어...



이제 정식으로 아이들 앞에서 나를 소개할 차례였다. 꽤 공 들여 준비한 피피티를 틀었다. 나는 말을 멋들어지게 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신상교사였지만 비전, 선생님의 약속, 꿈 등의 기대감이 차오를 만한 단어를 교묘히 섞어가며 화려함을 부각시켰다. 정말 눈치가 빠르거나 세상살이를 미리 깨우친 아이였으면 알았을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다행히 빈 수레의 요란함을 눈치 챈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학부모 상담 때 들어보니 아이들이 내 소개에 깊은 감명을 받고, 집에 가서 우리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았다고 한다.




첫 단추였던 내 소개가 잘 풀리기 시작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준비해놨던 활동들을 이어서 풀었다. 제일 먼저 했던 활동은 ‘반 이름 짓기’였다. 요즘 교실에서는 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유행이라고 들었다. 블로그에서 봤던 방법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토론을 맡겼다. 맡기긴 맡겼는데 들리는 소리는 온통 게임 캐릭터 이야기며 연예인 이야기뿐이었다. 블로그에서 봤던 진행 과정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백종원의 레시피 그대로 끓이는데 맛은 영 저세상 맛인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주의를 좀 주고, 우주, 사랑, 협동과 같은 몇 가지 샘플 단어들을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일러준 단어만 가지고 조합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앞 글자만 줄여서 우사협이나 사우협과 같이. 6학년은 많이 다를 줄 알았는데. 나의 판단미스.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우리 반의 이름은 ‘무한빛반’. ‘무지개처럼 한마음으로 빛나는 우리반’이라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자주 들여다보면 오히려 시들시들 앓는 선인장인가 싶었다. 모두들 만족해하는 반 이름이었다. 나 역시도 최고로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무언가 잘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이후에도 한 주는 교과서 수업을 하지 않은 채 학급운영에 관련된 교육을 하였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이며 경청교육이며 교실놀이며 해야 될 교육이 참 많았다. 그래도 개학 후 일주일은 학급의 분위기를 바로 잡는 황금의 일주일이라고 들었으니 최선을 다했다. 걱정이 많았던 만큼 준비도 철저했던 덕분에 학급은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의 호흡이 좋았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곧 있으면 형님 아우 하면서 소주 한 잔 걸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잘 따랐다. 여러모로 난 운이 좋았다.


아이들과의 만남 이후 또 한 번의 떨리는 만남이 예고되고 있었다. 1년에 정기적으로 2번. 서로가 불편한 만남. 그러나 필요한 만남. 우리가 지금은 만나야 할 때. 학부모 상담 주간이었다.


학부모 상담과 관련해서는 여러 괴담을 많이 들었다.


담임이 나이가 어리면 학부모가 은근히 말을 놓는다.

온갖 명품으로 휘감고 와서 책상에 구찌나 루이비통 가방부터 올려놓고 시작한다.

다짜고짜 1년 교육과정 비전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한다.

선생님 애 안 낳아보셨죠?

선생님 애인은 있으세요?


듣고 있으면 도저히 학부모를 대면할 자신이 안 생기는 이야기들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과장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없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어쨌든 그땐 처음이라 겁이 좀 났다. 학부모 상담 신청을 받았는데 한 10분 정도는 방문 상담, 7분 정도는 전화 상담을 신청했다. 저학년에 비하면 적은 수지만 나로선 조금 부담되는 인원이었다.


그래도 말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으니 큰 준비를 안했다. 나의 세치 혀가 춤을 춰주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딱 하나, 물고기 가족화 검사를 준비했다. 아이가 자신의 가족을 어항 속 물고기로 그리면 물고기의 크기, 위치, 어항 속 부유물 등으로 아이의 심리를 파악해보는 그림 검사의 일종이었다. 사실 그것도 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보면 함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림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전문성이 없이 하는 결과 해석은 사실상 A형은 소심하고, AB형은 4차원이네 하는 수준과 비슷하다. 그래도 그때는 뭔가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던 비장의 무기였다.



학부모 상담을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5분 정도 일찍 아이들 하교를 시켰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2시 50분이 되자 한 분의 학부모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한껏 친절한 웃음을 지었다. 준비했던 커피를 한 봉 타드렸다. 그리고 마주 앉았다. 세상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이 있을 수가 있을까. 숨 막히는 침묵이 찰나의 순간에 가득 찼다. 어색한 너털웃음을 한 번씩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침묵. 나의 세치 혀는 영화 ‘어베젼스 인피니티 워’ 속 헐크처럼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학부모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애 어떤가요?”


사실 나도 아이들을 본 지 2주밖에 안 되서 애가 어떤지는 잘 몰랐다. 따지고 보면 애는 13년이나 봐 왔던 엄마가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애는 13년이나 봐 왔던 어머님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최대한 이것저것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서둘러 물고기 가족화 검사로 집중을 옮겼다. 괜스레 이것저것 가리키며 “물고기 크기가 이 정도라는 것은 자존감이 조금 낮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요.” “여기 미역이 그려진 것을 보니 평소에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요?”와 같은 헛소리만을 늘어놨다. 만약 그때 학부모님이 상담을 전공하신 분이었다면 얼마나 귀엽게 보였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허접하고 별 볼일 없던 나의 첫 학부모 상담에 정말 친절하고 성심성의껏 임해주신 학부모님께 이제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대학교를 가면서 부턴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진짜 자연스러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워 보일만큼의 충분한 연습과 농축된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는 것이라는 걸. 그 동안은 내가 자연스러워 보여야 할 때가 없었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의 어려움을 몰랐다. 그런데 처음으로 담임이 되어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보니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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