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던진 '꼰대' 경고
“엄마, 오늘 불금이에요! 나가서 간단하게 저녁 먹고 올까요?”
불금.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한국에서는 금요일 저녁을 즐기는 문화가 익숙한데, 이곳에도 있을까? 아이는 주말을 앞두고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곧 그렇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냥 주말을 맞이하기 전날일 뿐일지도 모른다. 집 앞에 주차된 차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간단히 외식하기로 했다. 캐나다의 국민 음식이라는 ‘푸틴’을 먹기로 했다. 푸틴은 캐나다의 감자요리다. 바삭한 감자튀김 위에 치즈와 브라운 그레이비를 곁들인 것으로, 위안을 주는 음식이라고 한다. 캐나다 전통 음식이라니 먹어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감자 요리는 늘 좋아했기에 부담 없이 주문했다. 하지만 먹다 보니 생각보다 느끼했다. 특히 감자튀김 위에 올려진 치즈가 보기만 해도 열량이 높아 보였다. 많이 먹기는 어려운 음식이었다.
아이에게 여행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음식에 대한 경험이었다. 각 나라마다의 고유한 맛을 경험하고, 독특한 음식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특히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 재미가 배가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하고,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아이가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줄어든 듯했다.
아이는 말했다. 여행 중 먹는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나의 편식은 결국 여행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고. 아이의 말을 인정했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음식을 경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이와의 대화에서 더욱 크게 느낀 점이 있었다. 나는 ‘오래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주로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다 보니 나의 언어와 사고방식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아이가 놀라며 나의 표현을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요즘 세대는…”이라는 말이다. 아이는 전체를 하나로 묶어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개별적인 경험과 사례는 모두 다른데, 그것을 보편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런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편견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지적을 받을 때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지적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몰랐던 나의 사고방식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웠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익숙하게 쓰던 말들이 이제는 조심해야 할 표현이 된다는 걸, 젊은 세대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겠어.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과 가깝게 소통할 기회가 필요함을 새삼 느껴 “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는 엄마가 되겠지’라는 착각. 그러나 아이를 통해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꼰대 의식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을 확인했다. 다행인 것은, 지적을 받을 때마다 생각하게 되고, 적어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세월을 겪으며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대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유연함을 잃지 않고, 말보다 귀 기울여 듣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우선, 아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을 무조건 낯설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그건 그냥 밈이에요"라고 말할 때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제는 "밈이 정확히 어떤 의미야?"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친절히 설명해 주고, 나도 요즘 문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또한, 내가 보는 뉴스나 콘텐츠만 고집하지 않고, 아이가 추천하는 영상이나 음악, SNS 트렌드를 가끔 따라가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보다 보니 젊은 세대가 무엇에 열광하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어'라고 치부하던 것들이 이제는 ‘이런 흐름이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했다. 다만, 인정과 수용이 필요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화할 때 나도 모르게 "요즘 세대는~" 같은 표현이 나올 때마다 스스로 한 번 더 점검해 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다른데, 내가 너무 쉽게 일반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 연습을 했다.
완벽하게 젊은 세대와 같은 감각을 가지긴 어렵겠지만, 중요한 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 보려는 태도 아닐까.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직 배울 기회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