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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람들, 보통의 날

뭉클한 케이크

by 리베르테

보통 한 번 잠이 들면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는 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유난히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는 일이 많았다. 오늘도 그랬다. 창문이 덜컹거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렇다. 겨울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다. 바람은 차고 강했지만,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그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늘 반갑다.


오래전부터 1인 인터넷 방송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매주 아이와 함께 궁금한 것을 묻고 배우는 날이다. 아이는 오늘 궁금한 내용을 미리 정리하고, 기본적인 세팅을 해두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아 미뤄왔던 1인 방송 아이디를 만들고 등록하는 것조차 한참이 걸렸다. 결국, 깊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주제로 콘텐츠를 정했다.


첫 녹음을 해봤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였지만, 말하는 동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너무 평범한 이야기 아닐까?', '이런 얘기를 누가 듣지?'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끝까지 녹음을 마치고 저장 버튼을 눌렀을 때 내 목소리가 낯설고 이상했지만,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올리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RSS 피드가 무엇인지, 팟캐스트 플랫폼에 등록하는 방법이 어떤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첫 번째 에피소드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비록 아무도 듣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해냈다. 첫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끙끙거리며 “너무 복잡해서 포기하고 싶어"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하고 싶다고 하시지만, 사실 간절하지 않은 거예요."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간절했다면 벌써 시작했을 것이다. 아이 말에 움칫 찔렸다. 왠지 오기가 생겨 모르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며 저녁때가 되어서야 해냈다. “그것 봐요. 엄마. 하실 수 있잖아요” 아이는 웃었다.




"엄마, 우리의 여행은 3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겠어요." 아이가 말했다. 그때쯤 아이는 밴쿠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갈 예정이고, 나는 유니님이 돌아온 후부터 여행을 계획할 생각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지만, 내리는 눈을 보며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려고 교통카드를 충전했지만, 굳이 이 날씨에 나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아이는 바빴고, 나 역시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을 즐기며 느리게 쉬고 싶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하며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시간이면 족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떠날 때, 이 여행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깨닫기를 소망했다. “


늦은 시간 아이가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바람이 거세고 날이 추웠지만,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이 차가워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엄마! 케이크 사 왔어요. “


놀라서 쳐다보니,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랑 저랑 이곳에 있는 동안 참 알차게 보냈어요. 서울에서 바빠서 하지 못했던 작업을 이곳에서 다 해본 것 같아요. 결과야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보낸 시간을 자축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엄마가 새롭게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시는 것도 축하드리고 싶었어요. “


케이크와 함께 준비한 카드에는 짧게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따뜻하면서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떠밀려서가 아니라, 기꺼이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오늘 3월의 시작, 아이에게 받은 이 가슴 벅찬 순간으로 나는 또다시 내 인생의 따스하고 다정한 날들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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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1_215424[1].jpg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 들어도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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