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심전심의 기쁨

멸치볶음과 명이나물 장아찌

by 리베르테

아침 5시 30분, 아직 창밖이 어둑한 시간에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이불 속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겠지만,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에 있는 독서 모임 멤버들과 온라인으로 함께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은 『즐거운 어른』.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인생의 골든에이지를 살아가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는 성장과 공감, 그리고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어 깊은 여운을 남겼다.


모니터 너머 반가운 얼굴들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의미에 대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저마다 느끼는 바는 달랐지만, 어른으로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꼈다.


일요일은 늘 특별하다. 독서 모임을 마치고 교회에 가면 또 다른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 겨우 한 달 반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세심히 챙겨주신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한 분은 나와 고향이 같아 놀랐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캐나다에서 강원도 시골, 그것도 바로 고향 바로 옆 동네에서 살았던 나를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반가워하셨다. 처음에는 같은 고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전 고향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 이야기 나누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고향을 떠난 지 몇십 년이 흘렀음에도, 그분은 여전히 고향 곳곳을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잊힌 줄 알았던 추억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고향이라는 이름 아래, 낯선 땅에서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친목의 날이 있었다. 커피 한 잔과 페이스트리를 들고 자연스럽게 모였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며느리가 출산해 한국에 다녀오신다는 분도 계셨고, 함께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의 들뜬 목소리도 들려왔다. 따뜻한 관심과 나눔이 오가는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오늘 나는 매주 나를 위해 일부러 차를 몰고 와주시는 고마운 분께 드릴 멸치볶음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이웃과 나눌 요리를 하니 마음이 즐거웠다. 특별할 것 없는 반찬이지만, 정성껏 볶은 멸치를 그릇에 담으며 그분이 기뻐하실 모습을 떠올렸다. 음식에는 마음이 담긴다. 직접 만든 반찬을 건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분 역시 나를 위해 준비한 반찬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명이나물 장아찌와 연어 매운탕거리를 싸 오셨다며 조심스럽게 내 손에 건네셨다. “맛있어할지 몰라서 조금만 준비했어요.” 하는 그분의 말에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 교차할 수 있다니. 마치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심전심’이란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도 늘 고마운 마음 표현하고 싶어 멸치볶음을 준비했어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분도 “어쩜 이렇게 마음이 통할까요?”라고 답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지만, 그 순간이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작은 정성이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다시 내 마음도 풍요롭게 채워준다.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이미 나는 행복했다.

저녁이 되어 명이나물 장아찌에 배추겉절이, 콩나물국을 준비했다. 아이는 “이건 무슨 장아찌예요?”라며 맛있게 먹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기쁨, 그리고 그 마음이 되돌아오는 순간의 감동.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3화보통의 사람들, 보통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