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상의 보물찾기, 봄볕 같은 하루

하루의 기록

by 리베르테 Mar 22. 2025

아이가 사용하던 방 안은 조용했다. 그 방을 지나 일 층으로 내려오면서 문득 허전함이 밀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을 때, 우리는 그 빈자리를 새삼 실감하곤 한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괜찮다가도, 문득 찾아오는 공허함은 피할 수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아이의 물건이 눈에 들어오자 자연스레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침 일찍 줌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비록 화면으로 만나지만, 언제나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조혈모세포 기증을 마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담담한 목소리 속에서 타인을 향한 선의가 느껴졌다.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냈다.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은 ‘행동하는 사람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였다. 진정한 실천가들은 무엇이 다를까? 머릿속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순간의 용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선한 영향력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주변의 좋은 분들을 보며,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줌 미팅을 마친 후 동네 산책로로 향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Mohawk Meadows Park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낯선 동네를 통과하고 제법 숲길을 걸어 처음 가보는 공원의 풍경은 고즈넉했다. 곳곳에서 작은 꽃망울들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웠지만, 햇살은 부드러웠다.  

    

공원의 끝자락에 있는 해밀턴 공공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마을에 있는 아담한 도서관이었다. 유니님과 나는 어린이 코너에서 그림책을 펼쳐 들었다. 알록달록한 삽화 속 캐릭터들이 재미있는 표정이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책장의 질감, 책을 넘길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도서관 특유의 평온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창가 너머로 쏟아지는 밝은 빛이 책장 사이를 비추며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도서관에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소박한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디지털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책 한 권의 무게를 느끼는 경험은 어쩌면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문득 발길을 인디고 서점으로 돌렸다. 마지막으로 들른 게 언제였더라? 싶은 마음에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자, 책 특유의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잉크와 종이가 만나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향기는 어떤 디지털 경험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부드러운 조명 아래 나란히 놓인 책들, 문구코너에 있는 공책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기도 하고, 여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가끔 이렇게 목적 없이 서성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의 균형을 찾게 되기도 한다. 이 순간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소중한 여유가 아닐까.   

  

집에 돌아와 유니님이 부엌에서 분주했다. 미리 준비해 둔 파김치를 담그느라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매콤한 마늘 냄새와 갓 버무린 파김치에서 나는 감칠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파의 매운 향, 고춧가루가 섞일 때 퍼지는 붉은 색감, 재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양념이 맛있었다.     


늦은 점심으로 된장국과 김밥을 차렸다. 담백한 된장의 깊은 맛과 김밥 속 가득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속을 따뜻하고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주는 다정함이 좋다.   

  

오후가 깊어지는 시간, 어제 장 보아온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손질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 부드러운 봄볕이 쏟아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리듬을 타듯 흔들렸다. 하루하루 보내는 일상에는 마치 보물 찾기처럼 숨겨진 보물이 가득하다.    

 

아침에 떠올렸던 질문이 다시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동하는 사람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답은 바로 이 소소한 일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작은 행동들을 실천하는 것,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서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행동하는 삶의 시작이 아닐까.    

 

이런 평범한 일들이 오늘 하루를 더욱 따뜻하고 소중하게 만들어주었다.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도, 그 빈자리를 다시 채워가는 과정도, 모두 우리 삶의 소중한 일부임을 느끼게 해주는 따스한 봄볕 같은 하루였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 비 오는 날의 소소한 일상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