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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의 도시, 토론토

만남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하루

by 리베르테 Mar 24. 2025

오늘은 아침 일찍 줌으로 독서 모임을 마친 뒤, 교회에 가서 이른 예배를 보았다. 그 후 토론토로 향했다. 유니님의 아들 준에게 잘 익은 파김치를 전해주고, 조카에게 부탁받은 물건도 건넬 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니님이 나를 위해 이 길을 함께해 준다는 마음이 느껴져 더욱 고마웠다.    

 

겨울이 다시 온 듯한 차가운 날씨에 몸을 움츠렸지만, ‘토론토’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자연스럽게 산드라가 생각났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인연, 함께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지난겨울 만나지 못한 아쉬운 기억까지. 내게 토론토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산드라가 있는 곳이기에 더욱 특별한 도시였다.    

 

지난번 폭설로 만나지 못해서 더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미리 연락하진 않았지만, 유니님과 나는 산드라가 있는 곳에 깜짝 방문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그녀의 일상에 방해가 될까 망설여졌다. 게다가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주차할 생각을 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토론토 역시 우리나라 대도시처럼 사람과 차로 붐비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산드라와의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계획대로 유니님의 아들 준과 조카만 만나기로 했다.     

먼저 유니님의 아들 준이 사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옆에 커다란 공원이 있어 무척 깨끗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반갑게 만나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조카를 만나기 위해 '세인트 로렌스 마켓(St. Lawrence Market)'으로 향했다. 이곳은 토론토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시장으로,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토론토 시청사로 사용되었던 오래된 건물에 형성된 시장이라고 한다. 다양한 식료품을 취급하는 전통시장으로 ‘토론토의 부엌’이라 불린다는 말만으로도 이곳의 분위기가 그려지는 듯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고풍스럽고도 인상적이었다.     


마켓에 가기 위해 주차할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도심을 몇 바퀴 돌았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었고, 결국 간신히 도로변 주차구역에 자리를 찾았다. 도심이 붐비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였고, 거리 곳곳은 여행자들과 일상 속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켓에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사람들의 활기가 온몸으로 전해지며,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치즈 향이 어우러졌다. 활기찬 대화 소리도 함께 흐르고, 이곳은 단순한 시장이 아닌 하나의 살아 있는 공간, 작은 세상처럼 느껴졌다.     


한쪽에서는 과일을 고르는 손길이 분주했고, 다른 쪽에서는 갓 구운 빵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마켓의 유명한 맛집 '우노 무스타키오(Uno Mustachio)'를 찾았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였다. 주문한 샌드위치는 커다란 빵 사이에 바싹하게 튀긴 가지와 치킨,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듬뿍 들어 있었다.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빵의 식감과 촉촉한 속 재료가 입안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무엇보다 짜지 않아 부담 없이 먹기 좋았고, 둘이 나누어 먹어도 충분할 만큼 크고 푸짐했다.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우리도 여행자처럼 샌드위치를 먹으며 즐겁게 지냈고, 무엇보다 공간과 하나 된 친근함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문득 산드라가 떠올랐다. 함께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 좋아하는 음식을 나누며 웃던 기억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샌드위치를 산드라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면 어땠을까?  

   

점심을 마친 후, 우리는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알록달록한 과일과 야채가 가득한 코너를 지날 때 눈이 멈췄고, 견과류와 초콜릿이 가득한 점포 앞에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한참을 구경하던 중, 한 모자 가게 앞에 섰다. 가지런히 진열된 야구 모자를 보며 문득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에게 어울릴만한 모자를 하나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야구모자를 쓴 아이의 모습이 행복하게 떠올랐다.     


유니님은 조카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연락하지 않고 찾아갔지만, 예상치 못하게 쉬는 날이었다. 

그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당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가끔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곳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카와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고, 20분 거리라면 충분히 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조카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까지 가는 길은 토론토 중심가를 지나, 마치 차로 토론토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렵지 않게 찾은 그곳은 와플과 커피를 파는 아담한 카페였다. 학교 근처라 그런지, 홀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고, 둘러앉아 스터디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니님의 조카는 따뜻한 커피와 직접 만든 와플에 딸기를 얹어 대접해 주었고, 우리는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니님 덕분에 받게 된 이 친절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 친절이 흘러갈 수 있도록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토론토의 골목을 걸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산드라가 생각났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카페에서 공부하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유니님의 조카는 산드라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이 그리 멀지 않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들러볼까도 했지만, 결국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산드라에게 연락했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만날 수 있는 가능한 날짜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산드라가 가까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 거리는 오히려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오랜 친구의 집 앞까지 찾아가 놓고도, 초인종을 누르지 못한 채 돌아서는 기분이었다. 만나고 싶은 마음과 망설이는 마음이 교차했다.          


돌아오는 길, 토론토의 상징인 CN타워가 보였다. 오래전 토론토를 방문했을 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CN타워는 마치 이 도시에 새겨진 표식처럼 느껴졌다. 그때 타워에 올라 토론토 시내는 물론 온타리오 호수 일대를 바라보았을 때, 낯선 세계의 풍경이 생경하게 다가왔었다. CN타워를 보자, 다시 토론토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던 중, 마침내 산드라와 연락이 닿았다. 산드라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산드라를 만나러 토론토에 가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될까?" 산드라는 화요일엔 수업이 없다고 했고, 우리는 돌아오는 화요일인 3월 25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로 가시기 전에 꼭 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산드라를 안 보고 그냥 가기는 아쉽지. 다음 주 화요일에 반갑게 만나자."   

  

전화를 끊으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짧은 통화만으로도 토론토를 다시 방문한다는 설렘이 몰려왔다. 다음 주 화요일, 우리는 토론토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다. 주차 걱정 없이,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갈 것이다.     


오늘 토론토를 걸으며 생각했다. 토론토는 CN타워, 세인트 로렌스 마켓,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도시지만, 내게 토론토는 곧 산드라의 도시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나는 토론토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셈이었다.     


이틀 후, 나는 다시 토론토로 간다. 산드라와 함께 거리를 걷고,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산드라의 시선으로 바라본 토론토를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다시 그곳을 향하는 이유다.     


세상에는 장소와 사람이 어우러져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내게 토론토는 그런 곳이다. 오늘 비록 산드라는 만나지 못했지만, 유니님의 아들 준과 조카를 만나 반가웠고, 무엇보다 여행자처럼 골목을 누비며 유니님과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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