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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Sep 30. 2020

知音을 갖고 있다는 행복

편지 딸에게

나른한 휴일, 혼자만의 고요하고 아득한 ‘고독’에 묻히는 시간! 엄마에게 휴일이란 이런 정의지.

너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그런데 오늘은 그런 ‘고독’으로의 침잠이 기분 좋게 깨졌단다. 대학 후배인 상경 이모와 긴~시간 통화를 하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야.


워낙 낯을 가리기도 하고, 곁을 쉬 내주지 않는

성격 탓에 많은 숫자의 친구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다행히도 문득문득 진한 그리움을 전하는 이런 친구들이 엄마에겐 있단다.


이쯤 살아와 보니, 우리 사회가 규정한

나이란, ‘친구 되기’에 아주 쓸데없는 걸림돌이란 걸 알게 되더구나. 나이를 넘어 생각의 지평이나, 삶의 태도 등이 유사한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지.


그런 의미에서 상경은 명목상으론 후배지만 엄마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친구란다.


지역적으로 썩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니어서

자주 보진 못해도 문학을 사랑한다는 교집합,

그리고 거친 세상을 나름의 치열함으로 견뎌내고 있는 성정, 무엇보다 서로의 세계에 든든한 나무

한 그루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지.


30년 이상, 이런 관계를 유지해 온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싶어 긴~ 통화 중, 마음이 느꺼워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었단다.



‘知音’이란 말을 알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이지.

좀 더 해석해 본다면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이고..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와의 얘기에서 출발해.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준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이후,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멋지지?


이렇게 나를 알아주는, 아니, ‘알아준다.’를 넘어

내 깊은 곳 마음속 우물의 흐르는 물소리까지

귀 기울여 줄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知音’이라 부를 수 있겠구나.


친구 관계의 ‘폭넓음’ 이 삶을 살아가는 데

무조건 정답인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수가 적어도, 혹여 하나밖에 없더라도

‘知音’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네가 한창 사춘기 무렵 친구관계로 고민하고 힘들어할 때 엄마가 ‘절친’ 한 사람만 있어도 괜찮다! 위로한 적이 있었을 거야.


세월이 이만큼 흘러 네게도 그런 ‘知音’ 이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친구가 들려주는 인생의 소리를 이해하고,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향기에 오래도록 또, 변함없이 취해 줄줄 아는 사람. 우리 딸도 누군가에게 그런 ‘지음’ 이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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