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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Oct 14. 2020

내 삶은 어쩌면 부모가 걸어간 길에 대한 오마주

편지, 딸에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단다.‘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내 삶의 행로나 궤적이 올바른 것인가?‘ 하고 말이야.


살아오면서 나를 낳아준 부모님들의 지난 생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기에, 이미 쉰을 넘은  나이임에도 간혹 이 물음은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 뒤돌아보거나 앞을 살피게 만드는, 등대의 서치라이트 역할을 해주곤 하는구나.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늘 희미한 정체의 그리움으로만 남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몫까지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고귀하게 엮어갈 수도 있었던 본인의 생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시뻘건 삶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산화시켜버린 어머니.


그 숭고하지만 지독했던 결단은, 솔직히 고백하건대 가끔은 따라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기도 했어. 어떻게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을 반복해 되뇌기도 했고.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다른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단다.



엄마의 성장기쯤 그 당시 보통의 가족들이 누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행복, 가령 생일이면 온 가족이 짜장면이라도 먹으면서 축하를 한다거나, 여름방학엔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먹을 것을 이고 지고, 인파로 둘러싸인 시외버스를 타고서는  피서를 가는 같은,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들 말이야.


그런데 이조차도 지난 시절의 엄마에겐 가닿을 수 없는

마치 저 언덕 너머 어디쯤의 낙원의 것으로 보였으니,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힘든 일이겠지.


그런데 이상도 하지. 마흔을 넘기고 외할머니의 영면을 맞은 이후 엄마는 인생행로의 방향키를 다시금 다잡게 되었단다.

엄마가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지울 수 없는

어쩌면 숙명적인, 그리고 끝내 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림의 속성있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았거든. 


내 어머니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 그 걸어간 길마다 단단히 세워놓은 이정표들을 봐가면서 그렇게 나는 한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차마 외면하고 살아온 날들이 일시에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단다.


그런 이유로 이런 생각을  맘에 품게 됐구나.

‘여태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의 것이라 자만했던 인생길은

내 부모가 거친 시간을 살아가며 닦아둔 길이었고, 그 길 안에서 보호받으며 보다 안전한 곳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는 걸 말이야.


그래~, 앞으로도 엄마는 그렇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삶을 오마주 하며, 가끔은 소름 돋는 기시감에 깜짝깜짝 놀라가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야.

다만  당신들이 숱하게 겪었던- 외로이 눈물을 훔치거나 심장을 도려내는듯한 아픔 가득한 상황들-만큼은 남은 생에서 과감하게 삭제할 권한을, 제게 주십사! 그렇게 부탁드려 보려고.


10월 하늘의 푸르디푸른 깊음과, 몸에 닿는 박하향 공기의 밀도가 어찌나 매혹적인지 쉬~ 잠들지는 못할 하루겠다.

오늘 감사 노트에 채워질 한 줄의 요약은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또 한 번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란다.

내내 행복한 시간, 이어 나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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