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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Jan 11. 2021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편지, 딸에게

  

새해도 첫 열흘을 넘기고 이리 무심히 흘러가고 있구나. 연초에 했던 파릇한 다짐과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조금씩 무디어 가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지. 이럴 걸 내심 짐작하지만 주문을 걸 듯 매번 다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이만큼이나 살아왔으면서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숨은 매력인가 싶기도 하다.


요즘엔 눈을 떠보면 새벽 3, 4 시인 경우가 허다하단다. 부정하고 싶을 때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속설에 이 엄마도 영락없이 해당이 되는 가 싶어 조금 쓸쓸해지기도 해. 하지만 새벽에 눈을 뜨게 되면

예상외로 시간을 그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쓴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거겠지?


우선 새벽 4시경에 인터넷으로 읽는 신문은 훨씬 감각을 세밀하게 일깨우고, 여유로운 스트레칭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명징한 눈을 선물한단다. 때론 어두운 불빛에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읽어 내려가던

책의 문장들을 한결 명징해진 눈으로 되짚어보는 나만의 호사를 누리기도 하고 말이야.


이러다 보니 왜 내 어머니가 이른 새벽 일어나, 꼭 성경을 읽고 계셨는지 이해하게도 되더라. 사실 말이지~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비슷비슷할지라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내 인생에서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일 텐데, 크게 당황하지 않고 매양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건 이런 잠재된 경험 치들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등불을 밝혀주기 때문 일거야.


매일을 힘겨운 노동으로 지쳐 곯아떨어졌던 중년의 외할머니가 그렇게 이른 새벽 일어나 정갈한 모습으로

기도를 하고 신문이나 책을 읽으시던 모습, 지금 엄마도 별반 다르지 않게 행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면 부모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자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외할머니는 그걸 이미 아시고, 막막하고 어두운 삶 가운데도 맑고 희망에 찬 새벽을 밝히고 또, 밝히셨던 걸까?


허둥지둥하다 보니 엄마도 어느덧 희끗한 중년 여인이 돼 있어서 일견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내 유전자에 깊이 아로새겨진 ‘희망의 새벽 기운 영접’ 은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하는구나.

언젠가 네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때를 맞는 순간, 네게도 이런 선한 힘이 내재돼 있다는 믿음을 떠올리며 어려움들을 차근차근 헤쳐 나갔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그래 왔듯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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