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엄마다

편지, 딸에게

by 초린혜원

엄마가 요즘, 가끔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거든. 차고 넘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 때문에 지쳐있던 차에 굉장히 기획의도가 명확하고, 메시지가 분명해서 한 번씩 챙겨보게 되더라고. 아무튼, 평소 먹는 행위를 즐겨하지 않는 엄마조차도 넋을 잃고 보게 되는 이 프로그램의 힘을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건 바로 ‘엄마’가 아닐까 싶어. 엄마가 해 주는 집 밥을 ‘콘셉트’으로 잡았기 때문일까? 매주 화면을 가득 채우는 낯익은 음식들은 추억을 강제 소환하곤 한단다.


너도 익히 알다시피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진짜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셨잖아. 그 흔하디 흔한 재료 등속을 가지고도 어쩌면 그렇게 뚝딱, 뚝딱 마법을 부리듯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내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구나. 그런데 말이야, 조금 더 기억을 세밀하게 분석하다 보면 외할머니의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간단한 것이란다. 된장찌개 하나를 끓이더라도, 멸치 육수를 내고 채소를 썰고 두부를 모양 나게 준비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으셨거든.


“음식 맛은 절반 이상이 정성이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계시기도 했고, 그러니 그 음식이 맛이 없다면 그게 바로 ‘사기’ 아니고 뭐겠니. 금방 버무린 막 김치와 보글보글 소리가 화음을 이루던 된장찌개가 전부인 밥상이었지만 지난시절, 외할머니가 늘~ 해주셨던 그 밥 한 끼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움 그 자체였단다. 아주 가끔은 연탄불에 구워 기름이 그대로 흐르는 고등어자반이라도 올려진 날이면, 가난한 식구들의 얼굴에도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등불처럼 켜지곤 했었지.


밥의 놀라운 힘은 그렇게 수 십 년을 이어와 오늘에 이르고 있구나.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하는 밥도 이 엄마가 해주는 ‘집 밥’이라는 걸, 엄마는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가끔 집 밥이 그리울 때면 자연스레 엄마 얼굴이 떠오르지? 밥 한 끼에 담긴 엄마의 정성, 엄마의 기도, 그리고 무한한 사랑까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어질 테고. 밥은 곧 엄마이고, 밥은 또한 추억이고, 그리움이니까 말이야.


오늘 저녁엔 마지막 남은 묵은 지 한 포기, 설렁설렁 씻어서 돼지고기 목살 넣고 멸치 육수 자작하게 부은 다음, 들기름도 휘리릭~ 두르고 ‘김치 찜’이나 해야겠구나. 오물오물 복스럽게 잘도 먹는 네 모습을 떠올리며 달아난 식욕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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