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에 자리한 동네의 작은 카페는 요즘 문을 열어둔 채 장사를 하고 있구나. 하기야 이토록 아름답고도 황홀한 가을 날씨에 문을 닫고 장사를 한다는 게, 오히려 ‘어불성설’ 일 순 있겠다. 아무튼 열어놓은 문을 통해 공기 속으로 전파되는 커피 향은 그 어떤 유혹보다도 강하단다. 너도 알다시피 ‘커피 마니아’인 엄마는 하루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날이 없지만, 유독 가을엔 그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커피’가 우리나라로부터 시작된 음료가 아니라는 참, 단순한 이유만으로 ‘차’를 굳이 가까이 한 때도 있었다만, 그 3년여를 제외하고는 엄마의 ‘커피 사랑’을 헤아려보니 벌써 30년도 넘었다 싶구나.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뚫고 가끔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던 대학 3학년 때였던 거 같다.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일어나지 않겠다던 단호한 다짐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이면, 엄마는 호주머니 사정을 확인하고는 1층 정문 앞에 놓여 있던 커피 자판기 앞으로 향하곤 했었단다. 자판기를 통해 나오는 달콤한 커피 한 잔의 값이 50원이었나? 백 원이었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가난한 대학생이 무시로 생각날 때마다 마실 수 있을 만큼, 싼 가격은 아니었던 거 같아.
커피사랑, 삶의 또 다른 기쁨
설탕 한 스푼에 크림 두 스푼의 황금비율을 척, 척 알아서 해주는 자동판매기가 신기하기도 했고, 저녁 무렵 불어오는 싸~한 바람과 함께 천천히 음미하듯 마시는 여유로움이, 그 시절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함이었단다.학교 앞, 음악다방에 앉아 마시는 커피와는 그 결이 달랐던 대도서관 앞 자동판매기 커피는, 생각해보니 엄마에겐 인생 커피였고 커피사랑을 전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든 촉매제였구나.
우리나라엔 한 걸음 뗄 때마다 카페가 보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만, 그 많은 카페들에서 판매하는 수많은 커피들을 접하면서도 아직 인생 커피를 뛰어넘을 역작을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는다. 어딘가엔 있겠지?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 마치 커피 맛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 취급받기 마련이어서 이즈음의 최애 커피를 ‘묽은 아메리카노’ 로 대체하고는 있다만, 커피는 맛보다 그 향이 뿌려져 스며드는 장소나 그 장소에 있는 내 마음의 일렁임으로 마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여전히 최고의 커피를 찾아다니는 ‘커피 노매드’의 삶은 엄마에게 유효하다.
한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너에게 따뜻한 라테 쿠폰 몇 장을 모바일로 선물하며 커피 향기에 함께 취해 얘기 나눌 날도 은밀히 담아 보내는 밤, 적당히 부는 바람에 갓 볶은 커피 향이 실려 있어 차마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