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섹시하고 아름다운 나의 50대

발칙한 50대도 가능하겠죠?-그녀의 말 1

by 초린혜원

"언니 올해는 더 섹시하고 아름다워지세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더 섹시하고 아름다워지라고? 그럼 나는 여태껏 섹시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나?'


후배가 새해를 맞아 보내온 메신저 안부의 한 글귀가 정초부터 나를 뒤흔들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선문답 같았다. 어찌어찌 많이 봐줘서 '아름다운' 까지는 용인을 하더라도 '섹시함' 이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입꼬리가 귀 끝에 걸린 채로 후배에게 답을 보냈다.


"음.. 섹시하고 아름다우면서 건강하기 까지란 매우 힘들겠지만 우짜든 동, 노력은 해볼게"


나의 50대는 아이의 재수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아이를 내 곁에서 떼어내 서울로 올려 보내고, 분리가 가져오는 불안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마흔에서 쉰으로 넘어가는 산이 어쩌면 태산보다 더 높았기에 쉰에 접어들면 겪게 된다는 온갖 증상들을 채 느껴볼 새도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중이기도 했다.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고 매일매일 내일은 어떤 오프닝 멘트로 방송을 시작할 것인가? 고민하는 날들이 차곡차곡 지층을 이뤄갔다.


먼저 50대의 길에 접어든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신체적 변화-그러니까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거나 살이 찌고 움직임이 둔화되는 걸 느낀다거나 하는-도 감지되지 않았고, 바깥출입을 극도로 꺼릴 만큼의 의욕 저하나 무기력한 증상도 찾아오질 않았었다. 아마 몸도 마음도 여전한 긴장상태에 놓여 있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하여 다행히도 나의 50대는 제법 싱싱하고 빛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생각해보니.


후배가 보내온 안부인사는 내게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게 하는 큰 자극제가 됐다. 최근 상황이 상황인지라 몸을 돌보는 일은 물론, 마음을 건사하는 건 더욱더 멀리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후배가 알고 있는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제 갓 쉰을 넘긴 배우 김혜수를 떠올린다. 쉰, 50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기도 하지만 갑자기 그녀를 떠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연예인을 빗댄 별명 붙이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얻은 별명이 바로 '100m 김혜수' 이기 때문이다. 아주 멀리서 보면 김혜수 엇비슷하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혜수 씨 미안해요).


아무튼, 김혜수 그녀의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타인을 대하는 배려와 존중의 태도, 사회의 비리와 약자들을 바라보는 강단 있는 시선, 지성이 녹아있는 어투, 삶을 지향하는 자세에서 일반적 의미의 섹스 심벌로서가 아닌 인간 김혜수의 섹시함을 읽어낸다. 믿음이 불러올 '피그말리온 효과'를 등에 업고자 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한 저 모든 것들에 더해 아름다운 외형조차 비슷하게라도 따라가려고 마음먹었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나 할까. 이 도전은 30대 후반부터 시작해 50대에 접어드는 그 순간 절정을 이루었다.

'도전' 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성과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음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도전' 하지 않는 삶보다는 훨씬 더 건강하고 활력이 있는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래도 걷기를 좋아하지만 쉰에 접어들면서 걷는 시간을 좀 더 늘렸고, 직업병으로 생긴 만성 어깨 통증과 허리 결림을 완화시키고자 택한 요가 덕에 조금씩 탄탄해지는 허벅지 근육을 갖게 됐다. 몸의 여러 병증들이 좋아지기 시작하니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고, 매일 축 처진 몸으로 잠자리에 눕긴 했지만 더 이상 피곤하지가 않았다. 운동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나, 쌓이고 쌓여 전혀 다른 몸을 만들어 주는 법이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발걸음엔 리듬이 실리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50대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50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억 저 너머 동네 어머니들의 모습, 똑같은 뽀글이 펌에다 벌써 하얗게 세진 머리에 푸른빛이 감도는 진한 검은 약으로 염색을 하고, 두꺼운 털실로 짠 스웨터를 입고는 골목 입구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주로 남의 흉이었다)를 하고는 했었다.


목소리들은 또 왜 그렇게 큰 것인지, 그렇게 여러 명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누가 누구인지 쉬 분간이 가질 않았다. 몰개성화된 이미지, 아주머니보다는 오히려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 그게 50대 여성을 정의해내는 비루한 속성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에게서 세속적이긴 하나, 고착화돼 전해진 의미의 '섹시함'이나 '아름다움'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의 50대가 저들의 50대를 답습해서는 아니 될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후배의 한 줄 메시지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긍정의 힘으로 진행 중이다. 나는 섹시함의 정의를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가장 50대 다운 모습. 여유 있고 배려심 넘치며, 눈가엔 지워지지 않을 웃음 주름 몇 개 거느리고 진한 외로움에도 고독해하지 않는 것,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세상은 물론 자신과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게 후배가 제의한 섹시하고도 아름다운 삶이라면 당당하게, 자신 있게 '섹시하다. 그리고 아름답다'라고 얘기할 것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섹시하고 아름다운 50대로 살아갈 준비도 돼 있다.

닿을듯 말듯한 거기에 나의 아름다운 삶이 있어


20대에게는 20대의 정의가 있고, 50대엔 세월을 지나며 이리저리 고쳐 쓴 그들만의 정의가 따로 있다. 일반화 하기는 다소 어렵더라도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충분한 이해로 수긍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하고 아름다운 50대가 되겠다는 아, 그러니까 일반인 중에서 말이다. 그런 원대한 꿈은 오래전에 접었지만, 어쩌면 부단히 노력한다면 이 도시에서.. 아니 아니 하다못해 내가 사는 이 동네에서만큼은 가능하지 않겠나. 이런 황당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꿈마저 없다면 이 애매하고 쓸쓸한 50대가 너무 시시할 거 같으니 말이다.


50대 남은 날들을 위한 나만의 멋있는 인프라를 열심히 구축해야겠다. 그리고 50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그녀들, 각양각색의 섹시하고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부지런히 탐사해 더 늦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50대에도 생을 향해 도발하고 한껏 발칙해질 수 있다는 증명을 해내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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