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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 진심인 이유

진로 교사의 어느 하루 - 진로 교사의 상담 이야기 1

by 해 말고 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재미있고 유익한 직업인 인터뷰가 많아서 수업시간에 자주 보여주는 편입니다. 수업 자료로 쓸 동영상을 검색하다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초등학생은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라는 명언을 남깁니다. 한참을 웃다가 문득 '내 상담은 잔소리와 충고 그 어디쯤에 있을까? 나는 상담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걱정과 불안이 밀려와 한동안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직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인터뷰가 있습니다. 꽤 오래전 방송 되었던 JTBC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걸그룹 '소녀시대' 멘토들이 한 청소년에게 꿈을 묻자 국회의원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이유를 다시 묻자 '놀고먹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영상들은 유튜브 밈(Meme)을 통해 재확산되기에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재밌지만 씁쓸하기도 합니다.

예능은 예능일 뿐 다큐로 받아들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탐구와 실행과 성찰의 방법을 배우게 하는 직업 특성 때문인지 가끔씩 도지는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대표적인 증상은 정말 사소한 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과 틀린 것을 찾아내어 고쳐주려고 하는 습관입니다. 여기에 너무 무게를 두면 상담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로 교사가 된 지 5년 차입니다. 다행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진로 교사가 될 때의 부푼 꿈과는 달리 현실과 역량 한계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특히 상담이 그랬습니다. 상담, 그것 참 어렵습니다.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하면 할수록 어렵고 공부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저의 진로 상담 이야기를 잠시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전교생을 다 만나는 이유

저는 상담을 할 때도 업무와 마찬가지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편입니다. 학교급별로 상담 내용과 상담 방식이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지금은 고등학교 입시와 진학을 앞두고 있는 3학년 상담에 선택과 집중을 합니다. 이 학생들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진로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첫 단추를 잘 꿰야 앞으로의 진로 결정도 큰 문제없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배우게 하고 실행을 경험하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상담을 진행합니다.

3학년은 순번제와 희망제를 섞여서 만나고 있습니다. 1, 2학년과 학부모는 희망자 위주로 진행합니다. 올해 옮긴 학교는 학년당 6 학급, 150명 정도입니다. 1학기 동안 3학년 150명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개별 상담 시간을 가졌고, 지금 2학기에는 그룹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1년 동안 전교생을 모두 다 진로상담실에서 만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졸업하기 전까지 3년 동안은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전교생을 다 만나 보려고 합니다.

전교생을 다 만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학생들은 인지발달이론과 도덕성 발달이론처럼 진로도 발달단계를 거쳐 성장하고 있기에 단계별로 적절한 확인과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때에는 진로와 직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로인식 단계를, 중학교 때에는 자신의 특성과 다양한 직업 세계를 탐색하는 진로탐색 단계를, 고등학교 때에는 진로 목표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진로설계 단계를,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구체적인 직업 준비 단계를, 성인기에는 재교육을 받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러니 진로상담은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 위주의 상담도 필요하지만, 진로 발달 단계에 맞게 잘 가고 있나를 체크하고 피드백을 주여, 스스로 진로를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진로 역량을 키워주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시작한 '모두를 만나는 상담'은 교육 복지 대상 학생이 많았던 이전 근무 학교에서는 학생 맞춤형 통합지원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상담이나 대화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라포르 형성도 중요하고, 융통성 있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이 중요한 교사이지만 실제로는 업무 시간과 에너지의 절반을 상담에만 쏟기에는 중학교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부가적인 다른 업무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교생 상담은 학교 규모와 상황, 상담가의 역량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적절하게 진행하면 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상담실 문턱을 낮추고 활짝 열어서 모든 학생들에게 상담의 경험을 제공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고3 담임을 하면서 학생들을 상담했을 때 보면 중학교 때부터 한 번도 진로상담실에서 상담을 한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꽤 많았습니다. 상담을 희망제로 하면 학교 특성과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로상담실에 오는 학생들은 아주 공부를 잘하거나, 자신감이 넘치거나, 사교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학부모나 생활안전부장이나 위클래스 선생님 손에 이끌려서 오는 학생들로 양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범한 학생들은 잘 오지 않지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잘 없지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상담 후 성취도는 오히려 평범한 학생이 훨씬 좋았던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중위권 학생들을 잘 상담하여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강점을 찾고 계발하게 하면 학업 성취도나 진로 성취도 면에서 의외로 훨씬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더불어 자신도 관심과 돌봄을 받고 있다는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행복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한창 마음이 성장하고 있는 중학교에서는 모두를 만나는 진로 상담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상담에 진심인 이유

오래간만에 모임에 나갔는데 다른 학교 선생님께서 학교 자살 사고가 발생해서 모두가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육 혁신, 학교 혁신, 수업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대입 제도의 거대한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한 아이의 꿈은커녕 한 아이의 목숨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한 자살률 세계 1위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청소년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성적, 진학, 취업 문제입니다. 진로 상담도 위클래스 상담만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진로 상담도 누군가의 꿈을, 미래를,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생활 안전 부장을 할 때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사안은 신체 폭력, 언어폭력, 금품 갈취, 따돌림, 사이버 폭력 같은 일반적인 사안이 아니라 성폭력이었습니다. 당시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소위 '조건 만남'이라는 성매매 사안이 꽤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매매는 주로 성인 남성이 가해자이기에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 학생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해서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고 특별교육이나 상담을 지원했습니다. 소문이 나지 않도록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면서 처리해야 했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특히 힘들었던 점은 성매매 사안의 경우 가정의 돌봄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성매매에 노출된 시간이 상당히 경과한 경우에는 쉽게 끊어내지 못하기도 하고, 또 학교의 또래 친구들에게 확산이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양육과 돌봄 부족, 아동학대에 노출된 학생의 어려웠던 성장 과정을 알게 되어 안타까웠고, 힘들게 노력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상담소의 상담사를 만났습니다. 그 기관은 피해 여성을 위해 전문적인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숙식을 제공하고 경찰과 연계하여 보호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몇 분의 상담사가 왔는데 유독 한 분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상담사는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성매매 여성 자활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도박 중독이나 마약 중독만큼 시간이 경과할수록 끊어내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상담과 지원을 위해 만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저는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심 어린 위로와 지지는 물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학생을 만나러 오고, 찾아가고 관계를 이어 갔습니다.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은 끝내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에도 학교 밖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었기에 그 지역의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를 소개했습니다. 꼭 등록해서 검정고시도 치고 여러 가지 지원도 받으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기를 조언했습니다. 저하고는 라포르가 조금은 형성되어 있어서 이후에도 가끔 찾아오거나 안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학교에서는 의무교육 관리위원회를 열어 학업 면제 조치를 했고, 학생은 희망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3년을 상담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처음 인상은 평범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엄청나게 끈질기고 강인한 내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생활에 오래 빠져 있을수록 자활하기 쉽지 않지만 열에 아홉이 나쁜 결과가 있더라도 한 사람만이라도 더 나아지고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기꺼이 만나러 가려고 해요."라는 말씀을 듣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고, 힘들어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여 입학 때보다 졸업할 때 크게 성적이 향상되어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을 많이 보았습니다. 학교 밖에서 좌절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청소년도 많이 보았습니다. 성장 속도와 성장 정도라는 개인차는 있지만 모든 청소년들은 분명히 성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진로 상담에 진심인 이유는 이처럼 모든 청소년은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의 성장 가능성을 믿습니다. 사람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며 변화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때로는 힘들고, 상처받고, 불안해합니다. 공부도, 진학도, 진로도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니까 그 마음을 듣고 헤아려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진로 상담이야말로 각자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가장 개별적이면서도 맞춤형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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