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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라떼 Oct 11. 2022

왜 둘째만 사랑해?

지금 돌아보는 나의 어린일기 #2

이 시리즈를 써보려고 엄마한테 옛날 일기장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는 비가 와서, 까먹어서 등의 이유로 택배는 아직 부치지 않았지만 내 일기장을 꽤 흥미롭게 읽었나보다. "니 일기장 너무 웃겨"라며 카톡으로 보낸 사진 한 장을 보고 나 또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글인데 진짜 어릴 때, 철들기 전에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랄까.


2008. 6. 15. 13살 때의 일기

아래에 담임선생님이 적어주신 코멘트처럼 분명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크기는 우리 자매 둘에게 동등했을테지만, 당시의 나는 저렇게 느꼈나보다. 어른이 된 지금은 엄마가 저런 마음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란 걸 잘 알지만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선 13살에게는 모든 말이 삐뚤게 들렸을 것이다. (별개로 글씨는 참 잘 썼다.)



첫째들은 오직 자신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부모님의 세계에 어느날 경쟁자가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만 보고 나만 챙겨주던 엄마 아빠가 갑자기 다른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지게 되고, 온전히 받고있던 그들의 관심과 사랑을 동생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 동생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만큼을 받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첫째들은 이미 100%를 경험한 상태라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내 동생은 선천적으로 나보다 약하게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병원에 자주 가야했다. 부모님은 자연스레 튼튼한 나보다는 몸이 아픈 동생을 좀 더 챙겼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썼던 육아일기를 동생과 읽은 적이 있는데, 내 육아일기는 온통 단문 뿐이었다. "유라가 드디어 뒤집기를 했다." "배밀이에 성공했다" 등등... 반면 동생의 육아일기에는 아파서 병원에 갔던 이야기, 동생이 내가 애써 만든 레고를 부순 이야기, 화장품을 먹을 뻔한 이야기처럼 길고 재밌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나를 낳았을 때 고작 25살이었던 엄마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기에 날 보느라 정신이 없고 지쳐서 차마 육아일기를 길게 쓸 틈이 없었을 것이다. 반면 동생이 태어나고는 나름 3년의 육아 경력이 쌓여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집에 아기가 둘이나 있으니 풀 썰도 많았겠지. 그 사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해가 되었지만 처음으로 육아일기를 읽었을 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엄마, 왜 내 껀 이렇게 짧아?


이런 과정에서 나는 동생에 비해 자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컸다. 영원히 동생보다 애살은 없을테지만. (나는 '애살'이라는 단어가 경상도 방언인 줄 모르고 컸는데, 애교있고 사랑스러운.. 붙임성이 좋은.. 그런 비슷한 뜻이다. 하지만 '애살있다'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단어 뿐이다.) 가끔 부모님의 뜻을 조금 거스르기도 했지만 결국 내 방식대로 삶을 개척하고 내 선택도 좋은 선택이었단 것을(꼭 옳았다고 할 수는 없다) 증명했다. 스스로 잘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부모님도 무척 좋아해 주신다.


반면 동생은 이렇게 인생을 2년 먼저 산 나라는 선배가 있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많이 얻고있다. 인생에 중요한 선택이나 도전을 해야할 때는 어김없이 나와 엄마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 엄마가 우리 사주를 보신 적이 있는데, 동생이 물 사주가 부족하니 물의 기운이 많은 나와 엄마를 빨아먹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오셨다. 이 이야기는 우리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어서, 동생이 무언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계속 회자된다. 내가 가끔 엄마한테 "내가 너무 도와주나? 이러다 얘는 혼자 할 줄 모르면 어떡하지?"라고 하면 엄마는 "어쩌겠어. 평생 그럴거랬잖아 ㅋㅋㅋ"라고 하신다. 우리는 낄낄 웃으면서, 그래도 그 밖에 나와 다른 동생의 많은 장점들을 짚으며 칭찬으로 마무리한다.


어쨌든 착한 내 동생은 내가 도움을 주면 꼭 고맙다는 표시로 보답을 하고, 언니 의견을 항상 존중한다. 또 나보다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깊은 편이라, 가끔 내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각보다 속깊은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6학년 때는 혼자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은 동생이 미울 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얘가 없었으면 인생이 많이 허전했을 것 같다. 자매는 평생의 베프!



언젠가부터 인터넷에서 'K-'를 붙이는 게 유행이 되었다. (지금은 또 아닌가?) 나는 신기하게도 유독 누군가의 언니이거나 누나인 장녀 친구가 많은데, 우리는 서로 만나면 'K-장녀'라는 말을 쓰며 장녀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다 알아서 했는데 동생들은 항상 쉽게 우리한테 물어본다거나, 갖고싶은 게 있어도 부모님한테 쉽게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거나. 또 여동생이 있는 경우 화장법 같은 걸 다 따라하는 동생을 보며 어이없었던 적이 있다거나.


엄마한테 K-장녀에 대해 얘기했더니, 진정한 K-장녀라면 고로 항상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연락을 자주해야 하는데 넌 아직 멀었다고 한소리 들었다. 나랑 내 친구들은 엄청 가볍게 한 얘기를 엄마는 효녀 심청이로 들은 것이다. 내가 또 내 무덤을 팠군... 하지만 엄마 기준의 '진정한 K-장녀'가 되려고 계속 노력할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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