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글자 말 '발효'의 한글 표현, '삭히다' 열(불)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조리 용어 선조들이 정성과 기다림으로 만들고 이어 온 조리법
세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발효음식은 다양하다. 호밀과 보리를 발효시켜 만든 술인 러시아의 크바스(kvass),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베트남의 느억맘(nuoc mam), 양배추를 절여 발효시킨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홍차를 발효시킨 중국의 콤부차(kombucha), 산양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유제품인 터키의 케피르(kefir) 그리고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인도네시아의 템페(tempeh)와 일본의 낫토(natto) 등 여러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발효음식이 많다.
한국도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식문화와 조상의 지혜를 바탕으로 만든 다양한 발효음식이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과 같은 장(醬)과 김치, 젓갈 등 한국음식 상차림을 구성하는 반찬과 양념부터 식혜, 막걸리 등 음료와 술까지 다양하다. 특히 한국의 김치는 2013년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긴 음식으로 인정받았다. 예로부터 한국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쌀 중심의 식사 패턴으로 단백질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식물성 단백질의 급원 식품인 콩을 가공해서 먹는 기술을 개발해 한국인의 영양을 균형 있게 맞추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은 삼국시대(57 BCE~668 CE) 이전부터 콩을 이용한 발효식품을 섭취했다. 3세기 중국 고문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展)>에 한국 조상들의 발효기술이 훌륭하다고 언급한 기록도 있다.
한국 조상들은 발효(醱酵, fermentation)와 부패(腐敗, putrefaction)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해서 음식을 만들었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미생물 분해과정에서 일어나는 결과물로 과학적으로 동일한 현상이지만 그 차이는 뚜렷하다. 발효는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효모나 세균 등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당 분해과정에서 인체에 유용한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부패는 미생물 작용으로 악취를 내며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분해되는 현상이다. 한자어 발효와 부패는 한글 ‘삭다’와 ‘썩다’라는 동사로 표현할 수 있다. 동사 ‘삭다’와 ‘썩다’는 각각 그 행동을 취하게 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동사(使動詞) 형태로 쓰인다. ‘삭다’는 ‘삭히다’와 ‘삭이다’, ‘썩다’는 ‘썩히다’와 ‘썩이다’로 사용한다. 네 개의 사동사는 문장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형태가 각각 다르다.
그 가운데 음식이 독특한 맛과 건강에 유용한 성분이 생성되는 발효 과정은 ‘삭다’의 사동사 ‘삭히다’로 설명할 수 있다. ‘삭히다’는 열을 사용하지 않고 미생물 효소의 화학반응으로 음식 맛을 익히는(숙성시키는) 조리법이다. 이 조리법은 식재료의 원형을 변형시키며 특유의 맛과 향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전통 발효음식을 만드는 조리 용어인 ‘삭히다’는 열(불)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조리법이다. 알코올 발효, 젖산 발효와 같은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오랜 시간 동안 정성과 기다림으로 만드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조리법이다.
한국에는 삭혀서 만드는 음식이 다양하다. 이미 세계에서 인정하는 발효음식 김치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과 같은 콩을 이용한 장(醬)이 있다. 생선을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젓갈과 이것을 거른 액젓 그리고 홍어를 볏짚으로 덮어 삭힌 홍어회 등 어패류를 이용한 발효음식도 있다. 젓갈은 발효과정에서 생선이 갖는 효소에 의해 분해돼 고유의 감칠맛과 풍미를 낸다. 이러한 젓갈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 식탁에서 하나의 반찬 역할뿐만 아니라 김치나 다른 음식에 소금 대신 간을 맞추기 위한 조미료(양념)로도 사용한다. 반찬과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 엿기름으로 찹쌀을 삭혀 만든 식혜와 쌀과 누룩을 빚어 만든 막걸리 등 음료와 술까지 한국의 발효음식은 다양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한국의 전통 발효음식을 만드는 조리 용어인 한글 ‘삭히다’는 다음 세대에게 계승되어야 할 음식문화의 언어적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