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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Oct 30. 2022

죽음이 행복을 찾아 나섰다

아침에 글을 코딱지만큼 써놓고 오후에는 보상 느낌으로 떡볶이랑 김밥을 시켜먹었다. 식곤증에 한없이 늘어져서 유튜브를 보다 결국 하루를  써버렸다. 신나고 재밌게 노는 것도 아니고 죄책감+찝찝함+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지럽게 도는 거나 마찬가지라 빠져나올 때는 기분이 한껏 더러웠다.


기분 청소를 하려고 명상을 했다. 죽음으로 현실의 사소한 잡음들을 잠재우고 몰입하기 시작했다. 몸이 두둥실 가벼워지는 것 같으면서 나를 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3초 정도 지나니 어떤 생각이 나를 발견한다. 명상은 생각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숨이나 소리 뒤에 숨어 숨을 죽이지만 생각은 기어이 나를 찾아낸다. 나의 숨기 기록은 겨우 7초 정도다. 그 이상 생각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럴 때 생각은 꼭 매트릭스에서 집요하게 주인공을 찾아내던 센티넬 같다.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다가 황홀경에 이르면 생각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멱살을 잡고 기억의 방에 처넣는다. 거기서 바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기억에게 손목을 붙잡히는 순간 문은 점점  멀어진다.  위에는 실낙원이라고 적혀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들이 나를 엎치고 덮치는 동안 아득하게 나를 일깨우는 공기청정기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붙잡고 탈출하면 다시 딸기우유색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명상하면서 지금, 여기가 행복에 가장 중요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지금 바로 이 순간에만 나에게 존재하는 힘 때문이다.


영혼은 시간을 감지하지 못한다. 영혼에게는 지금만이 존재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지금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지금이다.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진짜 지금뿐이다. 나는 지금의 표정을 결정함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창조한다. 내가 기쁨으로 칠한 지금이 시시각각 과거가 되는 사이 미래에게 지금을 새로 건네받아 칠한다. 나는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행복으로 물들이는 창조가, 영원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된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견딜 수 없는 실패가 있다. 내 영혼을 돌보는 일에 실패했을 때다. 내 영혼에 좋지 않은 일을 계속하는 나를 발견할 때 화가 난다. 몸처럼 영혼도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주고 가꿔줘야 한다.


하릴없이 유튜브 추천 영상을 스크롤하고 있다 보면 낚싯바늘이 잔뜩 드리워진 비좁은 수조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다. 나를 낚은 미끼들은 대부분  행복에 비협조적이었다. 재벌들의 , 범죄 뉴스, 연예인 가십 같이 자극적인 미끼를  나는 낚싯대에 끌려가며 처참하게 공포심, 자괴감, 질투를 맛보았다.


몇 년 전에는 같은 이유로 고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끊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유로워지자 이제 유튜브에서  수요를 충당하고 있었다. 하긴 10 넘게 해온 것을 끊는 것은 쉽지 않다.  자아가 형성되고 있었던  중요한 시기에 나는 몰라도  인생에 전혀 하자가 없는 시답잖은 정보들로  정신에 접대를 해왔다.  의식이 나의 소란스러운 과거나 답답한 처지, 암담한 미래로 눈길을 돌리기 전에 후다닥 다음 글을 클릭해가며.. 그렇게 자란 내가 다른 수조에 갇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수조 속에서 행복할  있을  없다.


죽음이라는 필터로 삶을 거르면 쓸데없이 복잡한 불순물이 많이 빠진다. 단촐하지만 단단한 행복의 알갱이들이 남는다. 과감한 가지치기가 끝나면 인생의 중요한 줄기들은 물을 흠뻑 빨아먹고 더 활기차진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무시해야 한다. 행복을 빼앗아가는 것들을 무시할 결단력은 죽음의 가능성에서 나온다. 내일 죽을 예정인데 오늘 유튜브를 시청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구경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행복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면 죽음에 대한 사색이 행복을 저해하는 속박에서 해방시켜줄 촉매제가   있다. ‘'이라는 데서 오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끝을 떠올릴  오는 시급함이  이상 미루지 않고 능동적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게  준다.


하루를 망치는 결정들을 내리지 않기 위해 아침에도 명상을 하기로 했다. 죽음에 대한 명상에서 깨어난 나는 펄떡이며 몸을 순환하는 에너지를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그런 내가 되어야지. 느긋하고 여유롭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있고. 꼭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조바심이 없고. 항로를 위해 나침반을 설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오늘 나와 나의 하루의 방향을 설정했다. 그런 내가 될 거야 오늘은.


그런 다짐도 잠시, 차를 끓이려고 들어선 부엌 꼴이 엉망이자 속이 확 뒤집혀버렸다. 런던에서 회사 소유로 구한 아파트에 남편 동료가 출장 와서 함께 머무르는 중이었다. 전에 있었던 동료는 깔끔했고 잘 통하는 사람이라 미국으로 돌아갈 때 아쉽기까지 했는데 이번 동료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먹고 치우질 않아서 부스러기가 잔뜩 떨어져 있거나 사용한 접시를 식기 세척기에 넣지 않고 싱크대에 나 몰라라 내버려 두는 일이 빈번했다. 내가 치울 거라고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내가 그 동료의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었다.


평소 같으면 남편에게 불만을 한 바가지 쏟아냈겠지만 다행히도 아직 명상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남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나의 순간을 망치지는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평화를 위해 현실의 잡음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스킬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불쾌한 감정을 꿀떡처럼 꿀꺽 삼켜버렸다.


볼테르는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 행복해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I have decided to be happy because it’s good for my health.
_Voltair.


사진처럼 순간순간의 표정을 남긴다. 총천연색 기쁨으로 칠하든, 회색의 우울함으로 칠하든  표정은 할리우드 거리의 손바닥처럼 시간 위에 찍힌다. 나의 지금들은 방해받지 않고 행복할 자격이 있었다. 그대로 시시각각 영원으로 굳어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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