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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Apr 24. 2024

노르웨이 피오르에는 백조가 산다

여행 레코드

시부모의 집에서는 피오르가 보였다. 발코니에서 본 동네의 모습은 평화롭고 한적했다. 북극해에서 불어온 바람은 바다를 품고 있어서 비 온 뒤처럼 청량했다. 바삭하게 차가운 공기에 은은한 소나무 향이 실려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집 벽에 코를 묻으니 가문비나무 향이 났다.


노르웨이에 도착한 지 4일이 지나도록 트롬소와 오슬로를 구경한다고 집 주변은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4일째, 일찍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나는 동네 주변을 산책하자고 가족들을 꼬드겼다. 다들 두꺼운 잠바와 스카프를 벗고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 몸이 노곤한 모양이었다. 나는 오늘따라 날이 맑으니 석양이 예쁠 거라고 열심히 산책을 팔았다. 가족들은 결국 귀찮아하면서도 따라나서주었다.


이웃집 옆으로 가파르게 난 숲길을 내려가 작은 부둣가에 닿았다. 부두에는 작은 모터보드 몇 척만 잔잔히 떠있었고 하늘은 이미 살구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물과 하늘이 하나가 되어 데칼코마니 그림이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나오길 잘했지라며 하늘색과 분홍색이 섞여 물들어가는 하늘을 가리켰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법이 없는 사춘기 셋째 동생도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갖다 댔다.


그때 수면 위로 물결을 가르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얀 물체가 보였다. 백조 한 쌍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뭔가를 기대하는 듯했다. 고개를 쭉 빼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 보니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우리 손에 아무것도 없는 걸 발견하자 미련도 없이 휙 돌아 다시 피오르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뭔가 백조들을 실망시킨 상황에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다들 내일 다시 내려오면 만날 수 있겠지라고 다음을 기약했지만 나는 내일은 미지의 세계라고 믿는 사람이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늦게 귀가할 수도 있고 백조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 우리가 있는 부두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의 그 거창한 결정이란 오르막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서 빵을 가지고 다시 뛰어내려오는 것이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숲길을 숨이 가쁘게 달렸다. 집에서 가족들이 먹지 않고 남긴 식빵 꼬투리 두 장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헐레벌떡 뛰었다.


다시 부두로 돌아오자 백조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곳으로 헤엄쳐 간 뒤였다. 허탈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유튜브에다 백조가 짝짓기 할 때 부르는 노래를 검색해서 틀었다. 그리고 빵 봉지를 허공에다 대고 쥐불놀이하듯 돌렸다. 그렇게 콧물은 흐르고 몸은 얼어붙어가고 남편의 남동생들이 집에 가자고 할 찰나 피오르를 가르고 다시 돌아오는 백조들이 보였다.


우리는 666과 742라는 태그가 달린 백조 한 쌍을 먹이고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의 널따란 날개는 우아했고 목은 길고도 새하얬다. 콧등이 좀 더 동그랗고 커다란 게 암컷이라는 것도 배웠다. 백조들도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좌우로 흔든다는 것, 거위처럼 낮고 그르렁대는 소리를 낸다는 것도.


살면서 내 손에 있는 빵을 백조가 받아먹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손을 물려서 다치지 않을까 무서웠지만 내 손이 백조 입속에 들어가도 부드럽기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백조는 치아가 없다고 한다. 대신 얇은 판이라고 불리는 인간 치아의 법랑질 같은 기관만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행동력이 가상했다. 산책을 갈 결정, 빵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갈 결정, 백조들을 다시 부를 결정. 사소한 결단으로 원하는 시간과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마치 마법 같았다. 피오르에 사는 북유럽의 신들이 나의 간절한 마음을 높이 사 백조들을 보내준 것은 아닐까.


빵이 동난 우리는 루시퍼라고 이름 붙인 666백조와 742백조 커플에게 내일 이 시간에도 저녁 영업을 할 테니 꼭 다시 찾아달라고 거듭 당부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정작 우리가 외식을 하느라고 일몰을 놓치고 말았다. 허탕을 친 루시퍼 커플은 저 집 다신 안 간다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 있는 동안 세 번 정도 노을을 보러 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세 번 다 백조를 만났다. 두 번째에 만난 백조는 다음날 자기 짝을 데리고 다시 부두를 찾아왔다. 셋째 동생과 나만 꾸준히 산책을 나갔는데 마지막 날에는 삼십 분을 기다려도 백조 머리털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손도 빵도 꽝꽝 얼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물결을 가르고 다가오는 백조들을 발견했을 때 어떤 앎이 찾아왔다. 백조들처럼 삶도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고 있다는 것. 그걸 마법 같은 시간들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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