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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강진역 Nov 09. 2024

[최종화] 집을 사니 달라진 것들

"강남 아줌마 다 됐네"



1



지키고 싶은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수진이 처음으로 이 감정을 느낀 순간은 출산 직후였다. 이 생명체를 세상에 오게 했으니, 잘 자랄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왔었다. 두 번째 출산 마냥 잘 지키고 싶은 존재가 바로 첫 집이리라. 이제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시장 상황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지켜야 할 재산이 생긴다는 것,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에 수진은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집을 사면 보수가 된다고 했던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 바뀌어 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급진적인 변화가 아닌 안정적인 현상 유지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이 안정과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물밖에서는 우아하지만 물속에서는 발버둥을 멈추지 않는 백조처럼 품행을 조심히 하려 애썼다. 




2



대화 주제는 기승전 부동산이 되었다.



때는 부동산 폭등기 초입이었기에, 더더욱 수진의 재건축 아파트 매수는 뉴스거리였다.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면, 업무든 육아든 근황을 업데이트하다 보면 결국 이야기는 부동산으로 귀결됐다. 집을 사야 할지, 산다면 어디에 사야 할지, 너무 꼭지는 아닐지, 더 오른다면 얼마나 오를 거라 보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들이기에 서로들 의견을 확인하는 일이 많았다. 



한동안 수진은 잔금을 치르기도 전에 2억이 넘게 오른 시세에 자신감이 차오르며 한동안 집을 빨리 사라고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선무당의 잡지식을 늘어놓기 바빴다. 이내 세입자와의 갈등이 생기면서 다시 겸손을 찾았지만.




3


 

더 아끼고 버티는 습관이 생겼다. 



대출 이자는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제 회사에서 어떤 모진 일을 겪어도 참아내리라 다짐했다. 이 집과 가정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지시도 묵묵하게 받아들이면서 적극적으로 참아내기로 했다. 예전에는 사사로운 일에도 부침을 느꼈지만, 대출이 실행된 날부터는 웬만한 업무량에서 동요가 일지 않았다. 한 달 한 달 원리금을 갚아 나가고 돈을 모아 나가는 기쁨이 이를 덮고도 남았다. 




4



주눅 들 일이 거의 없어졌다. 



겉으로는 자존심을 지키느라 괜찮은 척해도 주눅이 들 때가 종종 있었던 수진이다. 특히나 회사 근처에 자가가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뭔가 있어 보이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됐다. 그래서 무슨 일에든 자신감이 생기고 더 당당해지는 기분이 수진을 감쌌다. 비록 낡은 집으로 퇴근할지라도 언젠간 새 아파트의 주인이 될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마음속이 차올랐다. 








친정에 갈 때면 점점 벌어진 생각차를 확인하는 일이 잦아졌다. 



친정은 여전히 진보적이고, 수진은 점차 보수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 집을 사면 왜 나쁜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거야?"

"투기꾼들이니까 그렇지."

"아니, 애 키우고 안정적으로 살려면 집 한 채는 있어야 하는 거잖아."

"너 같은 사람들이야 괜찮지만, 부동산으로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왜 문제야? 우리 자본주의시장이잖아. 북한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발전하는 건데, 그냥 있어도 집값이 이렇게 오르면 누가 일하려고 하겠어."

"집값 떨어지는 것도 감수하고 사는 건데, 불로소득은 아니지 않아? 나도 이번에 세입자 때문에 고생하면서 잠을 못 자니 알겠던데."



대화가 흐르다 보면 늘 마무리는 친정엄마의 마무리 문장으로 끝났다.



"에휴, 강남 아줌마 다 됐네."



보통의 집들은 부모 쪽이 보수, 자식들이 진보인 편이 많은데, 수진네는 그 반대다. 



수진은 불편했지만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와 여성운동에 애쓴 엄마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진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지금과 달랐고, 친정엄마는 변한 세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을 지닌 것뿐이다. 이것을 잘 알기에 수진은 엄마의 핀잔을 그저 받아냈다. 엄마가 생각을 바꾸는 건, 엄마의 젊은 시절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엄마, 나도 엄마 시대에 살았으면 엄마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어. 그땐 여자들이 일하는 것도 굉장한 챌린지였으니까. 근데 지금은 바뀌었잖아. 엄마가 희생한 덕분에. 요즘 페미들은 변질되긴 했지만, 엄마 같은 1세대 페미니스트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회사 생활 하잖아. 민주화도 이뤘고. 이제 뉴스 그만 보시고 편하게 좀 지내시면 안 될까?"

"난 뉴스 보는 게 쉬는 거야."

"맨날 정치 뉴스 보면서 뭐는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는 게 엄마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을 거 같아서 그렇지."

"뉴스 안 보면 무슨 낙으로 사니."

"알았어, 에휴."



점점 보수로 기울어져 가는 딸을 바라보는 수진의 엄마는 한편으로 씁쓸했다. 



"엄마도 네가 편하게 안정적으로 사는 건 좋아. 그런데 살다 보면 꼭 돈이 다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야. 지금은 잘 모를 거야. 집이 오르는 것만 보이니까. 그런데 돈 보다 중요한 것들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알았지?"



집값이 오른 기분에 취한 수진의 귀에 다 들어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수진도 내심 생각은 했다. 공정함과 정의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겠다고. 



"엄마, 알았어. 근데 그래도 돈 없이는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 정의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또 경제를 우선하는 게 꼭 정의롭지 못한 것도 아니잖아. 독재였어도 우리나라 이만큼 발전하게 한 공을 무시할 수도 없고."



보수로 한 발씩 내딛고 있는 딸과 사회 정의만을 생각하는 엄마의 간극은 좁혀지기 어렵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렇게 일상을 이어갔다. 



"강남 아줌마 다 됐어! 밥이나 먹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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