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키우기 좋은 동네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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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매도 계약금을 받자마자 '어디에 살 것인지'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정확히는 '어느 단지를 살 것인지'라고 해야겠다. Live보다는 Buy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Live를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다. Live가 만족스러워야 가치가 높고, 그만큼 수요가 몰려 미래 시세 전망도 밝다. 특히 아들 엄마인 수진은 남자아이에게 잘 맞는 동네 위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포털 부동산 지도를 펼쳐 놓고 시세를 눌러 확인하는 것이 수진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서초2동
강남역 수진의 회사에서 가까운 단지들부터 살펴봤다. 신혼부터 3년 넘게 살고 있는 블록이니 익숙하다는 장점이 크다. 독수리 5형제(서초우성 1/2/3차, 무지개, 신동아 아파트) 재건축이 끝나면 이 블록 전체는 천지개벽을 할 것 같다. 원래는 '오성타운'이 될 뻔했지만, 경쟁사 SG건설이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면서 오성물산의 계획은 틀어졌다. 같은 그룹사 직원들이 많은 동네, 워킹맘 자녀들이 많아 소외감을 느끼지 않겠다는 점 등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강남대로변 상업지구와 붙어 있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서초4동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그리고 교대역과 삼호가든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블록이다. 2동에 비해 조금 덜 상업적인 블록의 느낌이 났다. 특히 삼풍아파트와 아크로비스타가 있는 교대역 북동쪽 블록은 안정적인 부촌의 분위기가 풍겼다. 신논현역 근처는 이미 재건축이 되어 대부분 신축이고, 교대역 쪽은 구축이어도 가격이 넘사벽이라 일단 제외했다.
삼성1동
한결의 회사인 미래자동차가 삼성역 옛 한전부지를 매입해 개발하고 있으니 그 근처로도 눈길이 갔다. 우선 개발호재가 있는 곳이니 시세가 오를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이미 선반영 된 것이 문제인 동네였다. 그런데 샅샅이 찾아보니 아직 10억이 안된 아파트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임장을 가보니 초등학교가 문제였다. 봉은초등학교까지 산을 넘듯 고개를 넘어서 가거나 아예 사립초를 다니거나 해야 했다. 그리고 비싼 아파트들 사이에 나홀로 저렴한 아파트라 혹여나 아이가 빈부격차를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청담동
명품거리, 부촌의 상징 청담동을 감히 쳐다볼 줄은 몰랐다. 하지만 포털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가격대에 맞는 아파트가 하나 찾아졌다. 청담근린공원 근처 아파트였다. 게다가 언북초는 워킹맘이 많다고 하니 수진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나도 청담동 주민이 되어 보는 건가'하는 떨림이 심장을 스쳤다. 하지만 동네에 비해 저렴한 이유는 반드시 있었다. 상당한 언덕, 좁은 골목, 그리고 위험한 통학길.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대치1동
혹시 모르니 학군지도 들여다봤다. 은마아파트는 워낙 상징적이라 재건축 속도도 늦고 가격도 예산을 넘은 지 오래라 패스 했고, 10억 언더로 쳐다볼 수 있는 애매한 연식을 찾아봤다. 대치삼성의 연식이 신도시 아파트들과 비슷해서인지 아직은 쳐다볼만했다. 위치는 조금 언덕이지만, 대치동의 웬만한 학원들을 걸어 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파트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재건축을 해서 시세 퀀텀점프를 노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치동에서 번아웃이 와서 부작용이 오는 사례를 들으니 무서움이 앞서서 선뜻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개포2동
2017년 봄에 처음 본 단지는 2단지였다. 2단지가 전매제한을 피한 단지라 입주권 시세를 알아보러 갔다. 2단지 옆 1단지 주공아파트는 낡고 허름했고, 1단지 상가 안에 있는 정의남 부동산에서 상담을 받았다. 자금이 조금 부족해 2단지 입주권은 포기해야겠구나 할 때, 부동산에서는 1단지 매수를 권했다. 급매로 9억대에 나온 물건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때는 아직 남편 한결의 동의가 없던 때라 그 물건을 잡지는 못했다. 1단지는 상가와의 협의가 요원해 보였기에 더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3년 뒤 비리 조합장이 구속되고 젊은 조합장으로 물갈이되면서 상가/전철연과의 협의는 급속도로 진행됐고, 이주부터 철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3, 4단지는 대형 위주로 가격이 비쌌고, 5, 6, 7단지는 저층이 아닌 15층짜리 중층이라 재건축 이익률에 아쉬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원본동
수진이 2017년 한 해 동안 담당 업무 때문에 일원동을 매주 1, 2회 방문했다. 일원본동에는 오성의료원 자녀들이 많아 조용하지만 학구열이 높고, PC방이 없을 정도로 청정지역이라 아이들이 순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대치에 비해 순박한 스타일의 남자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숲이 많고 조용한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수서역도 개발된다고 하니 기대도 됐다. 수서역이 개통되고 잠시 숨 고르기 후 1년 뒤부터 2배가 올랐다는 수서 신동아 소유주들이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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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틈나는 대로 임장을 하다 보니 후보군이 추려지기 시작했다. 수진의 조건은 이랬다.
1) 아들 키우기 좋은 곳일 것 = 학군지
2) 개발 호재가 있을 것 = 삼성역 또는 수서역 근처
3) 큰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 = 재건축
일요일 오후, 아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을 틈타 수진은 아이를 맡기고 혼자 드라이브 임장을 떠났다. 남편 회사의 신사옥이 지어질 삼성역에서 수서역으로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삼성역의 한전부지를 왼편에 두고 영동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천천히 달렸다. 복잡한 도심을 지나자 우쌍쌍이라 불리는 우성, 쌍용과 이를 마주 보고 있는 은마아파트가 보였다. '은마는 달리고 싶다'는 현수막을 보며 양재천을 건넜다.
양재천을 건너자 마치 신도시 한 블록이 오버랩됐다. 대모산과 양재천 사이의 개포주공7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영동대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본 7단지는 수진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8단지는 공무원 아파트를 재건축하기 위해 이미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맞은편에는 15층짜리 주공아파트 7단지가 대모산 산세와 어우러져 있었다. 보석을 찾은 느낌이었다. 대치동처럼 부담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편안하게 수진을 맞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도시처럼 공원이 많고 나무가 많은 동네가 강남에 있다니!'
숲, 천, 그리고 학원가가 지척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라는 생각에 수진은 흥분되기 시작했다. 옛날엔 '개도 포기한 동네'라지만 곧 천지개벽 후 '개도 포르셰 타는 동네'가 될 거라는 개포동. 이날부터 수진의 머릿속에는 온통 개포 생각이 가득했다. 매일 시세를 확인했다.
원래는 5, 6, 7단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다가, 개포동역 시장과 붙어 있는 5단지는 따로 분리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속도는 5단지가 빠르고, 6, 7단지는 영동대로를 낀 대단지라는 장점이 있어 보였다. 수진은 남편 회사가 삼성역 개발을 진행 중이니 아무래도 영동대로변이 끌렸다. 대단지일수록 커뮤니티도 더 고급화된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더 마음이 갔다.
'그래! 개포동을 사야겠어!'
수진은 그날부터 매일 개포동의 시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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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니 두 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일명 82 대책이었다.
이번 정부가 부동산에 칼을 빼어든 것은 분명했다. 2달 만에 정책이 또 바뀐다니. 이제 막 부동산에 눈을 뜨기 시작한 수진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집을 사야 한다는 일념으로 복잡한 심경은 뒤로 하고 발표된 정책을 찾아보고, 그에 대한 영향이 어떨지 예측들을 찾아봤다.
'이번에도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이 상승할까?'
이번 대책은 지난번보다 강도가 높았다. 서울 전체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고, 다주택자를 조이는 방향이 확실해졌다. 2 주택 이상 소유하는 것은 죄악시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었다. 특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는 등 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세졌다.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 싶어 안달 난 수진은 걱정이 더 커졌다. 과연 지난번처럼 오를지, 아니면 강도 높은 규제에 꺾여 좋은 가격에 살 기회가 생길지, 아니면 예전 반토막 시대로 돌아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대출 규제도 세졌다. 그런데 대출 한도를 점점 줄이니 사람들은 빨리 사야 한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이 정부에서 점점 더 대출을 규제할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최대한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고 꽉 조이면 조일 수록, 너도나도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앞당겨주는 꼴이 되어갔다.
'나도 빨리 사야 해'
수진은 대출이 막히기 전에, 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더 세지기 전에 빨리 사야겠다는 조급증이 발동했다. 매수 반대론자였던 남편의 마음도 서서히 돌아서고 있고, 오피스텔도 매도했고, 이제 대출을 껴서 살 수 있는 10억 전후의 집을 잡기만 하면 되는데 어디에 좋은 물건이 남아있을까.
불안했다. 수진은 '좋은 물건은 누가 다 집어가고, 내가 볼 수 있는 물건은 잔챙이만 남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10억 이하는 잘 찾아지지도 않는다. 나홀로 아파트나 애매한 위치의 물건만 보인다. 다음 규제가 발표되면 또 폭등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친정 식구들은 부동산에 관심 없으니 믿고 조언을 구할 사람도 마땅치 않다. 누굴 믿고 어떤 물건을 사야 할지 막막함이 몰려온다.
과연, 오롯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수진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