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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강진역 Oct 26. 2024

치솟는 집값, 부동산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애기 엄마

이제 개포 포기할게요




1


때는 매도자 우위이던 2017년 가을. 하루에도 몇 천이 우습게 올랐다. 개포동 부동산 페이지에 업데이트되는 시세표에는 매도자들이 계속 물건을 거두어서 공란으로만 올라오던 시기. 매수자들은 조급함으로 잠 못 이루었고, 매도자의 은행 계좌는 연예인 전화번호보다 따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수진은 점점 조급해졌다. 남편 한결은 이런 상황도 모르고 천하태평이다.



"오빠 집이 너무 빨리 오르고 있어. 우리 빨리 사야 하지 않을까?"

"내가 쿠폰 쓰면서 아껴가며 모은 돈이야. 아무거나 샀다가 반토막 나면 어떡할래?"



수진은 답답하기만 하다. 하루하루 매수세가 강해지고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최대 11억이 마지노선이다. 이번 기회 놓치면 다시는 이쪽은 쳐다보지도 못할 텐데, 나 집 살 수 있을까?'



한결을 설득하기 위해 수진이 작성한 <7단지 매수 시뮬레이션>



MS 워드와 친한 수진은 오랜만에 MS 엑셀을 켰다. 한결을 설득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해보기 위해서다. 매수금액을 넣으면 비용과 수익이 대략적으로나마 계산되도록 수식을 넣어봤다. 어설프게나마 부동산 커뮤니티와 공인중개사들에게 들어 공부한 재건축 관련 정보도 넣어가며 예측해 봤다. 보유기간 동안 내야 할 이자비용도 반영했다.



"오빠, 카톡으로 보냈어 확인해 봐."

"너무 희망회로 아니야? 5억 갈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건 좀..."

"항상 최악을 대비하라니까."

"알았어..."



머리를 쥐어뜯던 수진은 어차피 정확한 예측이란 불가능하고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엑셀 파일을 닫는다.



'이러다 기회비용만 날리겠어! 하아...'




2



그 시기를 지나던 어느 일요일 오후, 수진과 한결은 점심을 먹고 아들과 스타벅스에 갔다. 웬일로 아들이 유모차에서 곤히 잠들었고, 여느 때처럼 수진은 부동산 커뮤니티 글을 훑었다. 몇 달째 들여다보는 페이지들이라, 새로 업데이트되는 부분이 눈에 다 들어올 정도였다.



그러다 부동산 어플에서 눈에 들어온 물건 하나. 분명 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물건인데, 비록 또 신고가를 기록할 금액이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물건이기에 반가웠다. 이 금액이 수진과 한결 예산의 마지노선이었다. 영혼까지 끌어와 취등록세와 복비를 낼 수 있는 마지노선.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약속 시간을 잡았다.





한결은 투덜댔다. 이 황금 같은 주말에 또 집을 보러 가야 하냐고.

수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부동산 보는 게 제일 돈 버는 거라고.

그리고 이 집 놓치면 우리 개포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고.



한결은 집에 와서 외출 준비를 하는 내내 남편은 투덜거렸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한결은 폭우를 뚫고 꼭 가야만 하느냐고 물었고 수진은 꼭 가야 한다고 고집부렸다.

한결은 수진이 꽂히면 하고야 마는 성격에 이미 진절머리가 난 상태라,

내키지 않았지만 수진과 아기만 보낼 수는 없었기에 마지못해 따라나서 주었다.



다행히 경쟁자가 나타나기 전, 1번으로 집을 보게 됐다.



기쁨도 잠시, 집을 보러 가는 길에 매도자가 3천을 더 올렸다는 비보를 접했다.



"사모님, 오고 계세요? 근데 어떻게 하나... 가격을 조금 올렸어요."

"헉, 이거 오늘 올라온 거 아니었어요?"

"그렇죠 방금 올라온 거고 우리 단독 물건인 것도 맞는데... 방금 매도자분께 전화가 왔어요."

"얼마나요...?"

"많이는 아니에요. 3천만 원."

"아..."



블루투스 통화로 같이 듣고 있던 한결이 차를 돌리자는 사인을 보냈다.

수진은 일단 고개를 저으며 개포동 쪽을 가리켰다.



우선 보자, 보고 얘기하자며 부동산 소장을 따라나섰다. 매도자는 비 오는 날 힘들게 왔겠다며 따뜻한 차까지 내어왔다. 곧 재건축을 앞둔 집인데도 3년 전 매도인이 실거주 들어오면서 올수리 한 집이라 바로 이사 와서 살아도 문제없을 만큼 집도 깨끗해 보였다.



3천만 원만 깎아주면 완벽한 집이었다. 수진과 한결은 일단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수진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메모지에 적은 자금조달 계획을 부동산 소장에게 내밀었다.

3천만 원이 올라가면 우린 방법이 없다고,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마음속 자존심과 민망함은 잠시 접어둔 채.



"소장님... 이게 저희 마지노선이에요... 오늘 보고 온 그 가격 아니면 못 사요..."



갑자기 부동산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책상 앞에 앉아 친절히 설명하던 공인중개사의 아내는 갑자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수진에게 메모지를 돌려주는 공인중개사의 표정에 어두움과 미안함이 섞였다.



"애기 엄마 사정은 알겠는데, 우리도 어쩔 수가 없네..."



'아, 이런 기분이구나.' 환대가 홀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모님'이었던 호칭도 '애기엄마'로 바뀌었다.



3천만 원이 모자라서.



민망함을 뒤로한 채 수진은 아이를 안고 한결과 부동산을 나왔다. 미안했는지 공인중개사가 상가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다. 상가 문 앞에서 우산을 펴기 직전이었다.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이었다.




3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냥 저희 수준에 맞춰 사야겠어요. 이제 그냥 개포 잊을게요.

이거 놓치면 저흰 이제 여기 쳐다볼 수 없어요.

애 낳아보니 애 키울 동네로, 20년 쭉 살 동네로

여기 말고 다른 데는 눈에 안 들어왔거든요.

봄부터요.


남편은 이해 못 하는데 저는 순한 애들 많고 공기 좋고

남편 회사 가깝고 오를 여지도 많고

여기가 저희한텐 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욕심이었나 봐요.

인연이 아니었나 봐요.

죄송해요. 잊으려니 막 아쉬워서..."



수진은 아기띠를 한 채 엉엉 울었다.



거센 빗소리와 함께 수진의 울음소리가 늦은 밤 낡은 상가 안에 울려 퍼졌다.



8개월간 개포 아파트를 알아보며 준비한 날들이 아쉬워서. 부동산학개론, 민법, 발표되는 정책들을 보며 오피스텔을 매도하고, 이 순간을 준비해 왔던 그 시간들이 수포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서 수진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울지 말고... 잠깐 있어봐요, 애기 엄마.

40년 부동산 하며 애 안고 우는 엄마는 처음 봤어. 잠깐만 있어봐."



갑자기 공인중개사가 기다려보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결은 창피하다는 표정으로 빨리 집에 가자는 사인을 보냈다. 공인중개사는 40년 부동산 하는 동안 애 안고 우는 엄마는 처음 봤다며 매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밤도 늦었고, 수진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겨울비를 뚫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수진은 과연 연예인 전화번호보다 얻기 어렵다는

'매도자의 계좌번호'를 받을 수 있을까?



과연 개포에 집을 살 수 있을까?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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