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외주도 좋아요
나는 매우 재빠르게 엄마표 공부를 때려치운 케이스다.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열망보다 엄마의 게으름이 더 우세하여 도무지 지속할 수 없는 것이 큰 이유였기 하지만 무엇보다도 숱한 시도와 실패의 역사는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는 깨달음을 주었기에 빠른 판단으로 접었다.
어렸을 때야 아주 쉬운 것들이니 내가 손을 댈 수 있었다.
처음 시작은 그놈의 받아쓰기!
나에게 세상 쉬웠던 것이 받아쓰기였는데 이 아이는 왜 이리 어려워하지? 30-40점대는 아니고 80점 이상이긴 했으나 그 점수를 받기 위해 아이를 도와주면서 나는 평정심을 잃곤 했다. 그게 뭐라고.
심지어 캠핑을 가서조차 다음날 받아쓰기가 있다고 남편이 텐트를 걷는 옆에서 아이에게 성질을 부리며 받아쓰기 연습을 시켰으니 독하디 독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대답을 쓸 때 "내"와 "네"를 아주 오랫동안 제대로 쓰지 못했고 꾸욱 참고 그건 아니란다 이야기하면서도 걱정이 산더미였다. 남편은 커서 맞춤법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후에도 종종 인내심을 잃곤 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영어 단어는 더 심각했다. 그나마 봐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연산과 받아쓰기와 영어단어였는데 공교롭게도 그것들은 아이가 매우 취약한 분야였다. 학원 테스트용 영어단어를 도와주면서 아니 이렇게 못 외울 수 있단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최대한 화를 내지는 않으려 노력했지만 삐집고 나오는 나의 감정을 아이는 눈치챘으리라.
그 외에도 야심 차게 시도했던 것들이 몇몇 개 있었다.
튼튼영어의 노래를 틀어놓으면 아이는 "엄마 너무 시끄러워요. 꺼주세요." 해서 꺼야 했고
하기 싫어하는 연산문제집을 풀릴 때마다 씨름을 해야 했다.
한참 유행이던 잠수네 영어는 엄마의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는데 맛만 보려고 해도 아이는 진저리를 치게 싫어해서 죄책감 없이 때려치웠다.
아이는 나에게 '선생님'의 역할보다는 '엄마'의 역할만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잽싸게 감사하게 떠올리고는 엄마표 공부라는 단어의 굴레에서 미련 없이 떠났다. 하하! 만세 해방이다.
내 대산 남편이 아이랑 두런두런 여러 수학이며 과학 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그밖에 필요한 부분들은 학원에 외주를 주며 집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오늘은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초5 자신의 아이 공부를 살뜰히 봐주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고 아이도 좋아하며 중학교 때까지 봐달라고 스스로 부탁을 했다고 한다. 공부를 봐줄 수 있는 정성과 능력도 대단하고 그 와중에 아이와의 관계도 나빠지지 않았다니 진심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아름다운 케이스들도 있지. 친구는 이를 확장하여 공부방을 열 생각이라고 했다.
어떤 친구 엄마는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될 때까지 집에서 정석으로 수2까지 봐주고 영어책도 꾸준히 시기적절하게 넣어주어 영어 실력도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뭔가 잘 안되면 "이건 다 엄마 탓이잖아"라는 말을 달고 살아 엄마는 기가 막혀했다. 지금까지 억울한 마음으로 사이가 안 좋은 상태는 ing.
아이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엄마표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실패해 이렇게 득보다 실이 많은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
이러저러해서 엄마표를 그만둔 것은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이긴 했지만 사실 다른 것들에 비하면 공부를 시키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놀아주거나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일들은 난이도가 높은 육아의 영역이다. 공부시키는 것은 엄마가 그냥 숙제를 봐주고 채점을 해주고 설명을 해주거나 하면 되니까. 나는 해줄 수 없는 일이 닦쳐 해결할 수 없음에 더 무기력함을 느꼈다. 집 앞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이 놀고 있을 때 우리 아이는 왜 안 놀지? 와 같은 일들은 내가 대신할 수 없는 거니까. 아이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와서 속상해하면 같이 아파할 수는 있어도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정글 같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하루종일 나름의 사회생활을 한 아이를 붙들고 세상의 가장 든든한 자기편이 되어주는 것에 집중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잘은 못해도.
들어주고 같이 속상해주기, 숱한 일들로부터 아이 마음 단단히 잡아주기. 그것만으로도 하루 에너지는 다 쓰였다.
학원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엄마표로 진행하는 것을 좋게 보는 글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 모든 엄마들이 무리한 학원스케줄로 하루를 짜 넣는 것도 아니고 욕심을 부리느라 학원으로 달려가는 것도 아니다. 엄마표로 어디 어디 학교를 보냈다, 사교육은 하나도 안 했다는 말들 속에 어떤 시간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그것들이 아주 적절했을지라도 꼭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학원에 외주를 줄 때 적당한 학습량과 아이의 성향에 맞춰 학원을 고르고 발주자로서 체크와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면 나는 엄마표를 고집하지 않는 것도 괜찮은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 중 하나를 뽑으라면 기질적으로 맞지 않은 엄마표 공부를 붙잡고 끙끙대다 소탐대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가 게으르면 아이한테 좋을 때도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