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육아
처음은 자연분만이었다. 자연분만이 얼마나 아이에게 좋은지 구구절절이 적혀있는 책을 보며 나도 꼭 해내리라 다짐했다. 그다음은 모유수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면역력을 높이는데 모유만 한 것이 없다고 했고 그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 다음에도 시기별로 아이를 케어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학교에서 육아에 대해 배운 것도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으니 어디에든 기대야 했다.
이유식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챙겨서 꼬박꼬박 읽었고 어쩌다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가 매운 음식을 어린아이에게 줬다고 극도로 분노하는 다른 아이의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될 정도로 지침서를 철저히 따르려 했다. 그 뒤로도 육아서는 컴컴한 어둠을 걸어가는 손전등이 되어주었다.
2009.2
나의 아들은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를까.
겨우 몇 년을 살지 않은 아이에게 나는 이미 어떤 평균치를 요구하고 있다.
뛰어남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니 묻어가기라도 했으면 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욕심인데 자꾸 아이를 내가 만든 틀 안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축농증으로 고생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부끄럼 없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 왜 이렇게 겁이 많아서 나의 손을 여전히 강하게 잡고 있는지. 왜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는지. 아주 작은 일들에 실망하고 지나치게 큰 걱정을 늘어놓는 나란 사람은 이미 위험하다.
바뀌어야 할 것은 모든 일에 조급증을 내는 나이다.
온갖 실용서와 지침서를 우습게 여기는 아집으로 육아서를 시니컬하게 읽지 않으면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이 성격. 나는 많은 것에 서툴고 많은 것을 잘 해내지 못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충고'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인 거 같다. 육아서 좀 읽자. 아들을 사랑하면 좀 더 여유 있게 바라봐야 하는데 내 의지로 힘드니 책의 힘을 빌으면 좀 현명해지겠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육아서 만한 것이 없었기에 한때 위로를 받고 방향성을 잡는 초석을 만들어주긴 했나 보다. 기본적인 육아의 토대, 즉 철학을 수립하는 데에는 스며들듯 도움을 주었던 게다. 생각해 보면 결국 몇 가지 반복되는 말들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근본적인 태도였고 그걸 그저 재확인하고 공고히 해주는 역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내 아이의 속도는 다르니 조급해하지 마라"
"믿는 만큼 큰다"
"대화를 많이 해라"(말은 쉽다...)
"엄마가 규칙을 정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오히려 혼란스럽다."
"공부에 혈안이 되지 마라"
"책을 많이 읽혀라"(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을 키워주는 말을 해라"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라"(어떤 아이들은 결과에 대한 칭찬을 목 빠지게 기다리기도 한다)
자꾸 옳지 않은 방향으로 튕겨갈 때 당겨주는 고무줄이 되어 나를 정신 차리게 했던 육아서와 멀어지게 된 것은 아이가 자라면서 학습과 양육에 대한 소위 '조언'들도 각자의 단언하는 목소리들끼리 충돌하는 것을 눈치채면서이다. 아이가 다른데 정답이라고 적혀있는 것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서이기도 하다.
아이랑 노는 법에 대한 책은 사놓고 조금 따라 하다 영 현실적으로는 적용이 안 돼서 아웃. 습관 기르기 책은 내가 게을러서 못해서 아웃. 하루종일 영어를 흘려듣기 하라고?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거야 동의할 수 없어서 아웃. 몇 살 때 뭐뭐 하라고? 그런 게 어디 있어해서 아웃. 수학공부는 이리이리 시키라고? 글쎄.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책은 따라 하기 힘들거나 동의할 수 없거나 잊어먹던가 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오은영 박사의 설루션을 남편이 따라 하고 큰 부작용을 겪으면서 아이마다 반응하는 것이 다르니 훈육도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 수많은 방법론을 그저 참고하는 정도로만 쓰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 프로에서 오은영박사는 아이가 떼를 쓰면 힘으로 제압하고 두 손을 잡고 계속 눈을 쳐다보면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라고 했던 것을 남편이 그대로 적용했는데 아이는 너무나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겨 되었다. 유독 겁이 많고 예민한 아이는 크게 상처를 입었고 남편은 내내 그 부분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또 사교육을 절대 시키지 말라고 앞장서서 깃발을 휘날리는 유명 인사의 글에 큰 감화를 받았었는데 정작 그 사람의 자식은 대치동 사교육의 가장 정점인 교육을 받기 위해 먼 지역에서 굳이 찾아와 수년간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말이나 말지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나는 아이는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공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과 엄마들 역시 기질이 모두 다르니 저자와 똑같이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 역시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물음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식대로 하겠어"
역시 난 시니컬한 투덜 쟁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초창기 바짝 읽었던 육아서들이 나의 생각에 토양이 되어주었다는 것은 인정.
그러나 누구든 제왕절개를 해도, 모유수유를 안 해도, 공식대로 이유식을 안 해도 그 수많은 책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안 했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반드시, 꼭 해야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은 엄마들을 모두 자유케 하리니. 그리하여 세상 모든 일들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편안하고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도 엄마도 이러한 편안함 속에 놓여 있을 때라는 것을 깨달으며 육아서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