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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09. 2024

다만, 무해한 엄마이길

그저 사랑한다고 말할 뿐

어린 시절의 기억은 힘이 세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성격이나 태도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었다. 

매그놀리아는 “나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나를 잊지 않는다”에서 시작하는 영화이다. 부지불식중에 영향받고 있는 옛날을 삭제할 수 없지만 그것에 지금의 나를 탓하는 부채를 청구하는 것은 하지만 부질없다. 

나의 큰언니는 아직도 모든 것을 부모님 탓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커다란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부모로서 다소 서툴렀을 뿐인데.     


“내가 대학 가서 공부를 못한 것은 엄마가 그때 영어 학원을 안 보내줘서 그렇잖아.”

“오빠와 싸우고 말도 안 했던 것이 나를 망가뜨렸어.”     


나이 오십이 넘어도 이렇듯 한탄과 원망을 늘어놓고 여전히 무언가를 끝없이 요구하는 것을 보면 부모라는 직업은 업보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태도는 스스로를 갉아먹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한때 ‘언니네 글방’이란 곳에서 함께 글을 썼던 40대 여성 동지들이 있었다. 거기서 평생 쓰지 않던 글을 식탁에서 쓰곤 했던 동지를 보고 아들은 나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야”

그 아이는 문예창작 쪽으로 길을 가게 되었고 친구는 지금 문예창작 사이버대학에 다니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이들은 엄마의 성장을 지켜보고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새삼 스스로를 긴장시킨다.     


초1 때 어떤 엄마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연년생 오빠와 그 아이가 얼마나 순한지를 이야기하며 다른 아이들한테 상처를 잘 받는다며 거친 아이들을 성토했다. 공부도 너무 좋아해서 귀찮지만 어느샌가 대치동으로 가는 운전대를 잡고 있다고 애들이 잘하니 고생이라는 투정 아닌 투정을 했다. 이후 3학년이 되어 아이 친구는 황소 수학학원에 다닌다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머리에 큰 원형탈모가 일어난 것을 보고 엄마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연년생 오빠는 같은 시기 아파트 옥상에서 큰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을 맞고 지나가던 40대 여성이 머리를 강타당해 그 여성은 의식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하게 되었다. 수억 원의 보상금을 지불하였다는 소문이 들렸고 그 뒤로 그 엄마를 볼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중학교 때 조카와 같은 반이 되어 종종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잤다고 한다. 밤새 야동을 보고 담배를 피운다고 이야기하곤 하는 아이를 그 엄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고 했다.

이 아이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쩌다 돌을 던지고 어떻게 엄마는 아이를 포기해 버린 것일까. 그들이 겪은 현실과 그 안에 일어났던 것은 전혀 알 수 없고 제멋대로 단서를 엄마한테서 찾을 수는 없지만, 아이를 진짜 포기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 부모라는 위치는 아이의 행동 원인제공자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사이코패스로 의심되는 아들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소년원에서 이제 조금은 진심이 담긴 눈빛이 된 엄마를 면회하며 이야기한다.

“그때는 내가 왜 그런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자유로운 삶을 살던 케빈의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생긴 아이를 환영하지 않고 냉담했고 예민한 아이는 이를 눈치채고 끝없이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 잔인한 행동을 했다. 케빈이 원래 사이코패스인지 후천적으로 선택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애정결핍이 끼치는 영향은 간단하지 않은 거 같다. 성격적이든 신체적이든 결함이 있는 아이도 끝까지 보듬어야 할 존재가 엄마라는 것은 무거운 진실이다.     


무해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고 노력한다고 획득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가끔 아이가 옛날 이야기를 하면 깜짝깜짝 놀란다.

“너는 너무 순진해서 잘 속을 수 있어” 라는 말을 명심하고 아이는 친구들을 경계하곤 했다던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고 하여 자신의 말을 아끼고 과하게 남의 생각을 생각하게 했던 것도 같다 등과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때면 나의 한마디 한마디가 끼쳤을 영향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쁜 영향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완벽한 엄마는 없으니까.      


“엄마가 아마도 나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고 안 좋은 기억도 있을 수 있지만 나중에 그걸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으면 좋겠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 너는 그냥 너의 인생을 살아”     


훗날 엄마 탓이라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어 하며 살짝 발을 뺀다. 그냥 후회하지 않고 무해한 엄마에 가까워지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충만하게 사랑하는 것뿐, 그거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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