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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07. 2024

무한 재부팅! 글쓰기

미리 쓰는 에필로그

매우 의욕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프로 N잡러 친구는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아니야.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

한 번도 부끄러워 입에 담지 못한 그 말~! 글을 쓰는 사람. 나도 그 말 하고 싶어싶어싶어.


혹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의 무게를 너무 무겁게 책정해놓은 것은 아닐까?

친구와 백 통 남짓 주고받았던 편지도 글이었고 프리챌에 어둠의 자식이 되어 써제낀 수많은 감정의 쓰레기 글도 글이었고 언니네 글방에서 매주 토해내듯 쏟아냈던 글도 글이었고 브런치에서 심심하면 찾아와 끄적거리는 것도 글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넌 글 쓰는 사람이잖아"라고 해 화들짝 놀라는 동시에 한편으론 가슴이 설렜었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귀까지 빨개져서 다른 주제로 허겁지겁 이야기를 돌리곤 한다. 이런 나에 비하면 그녀는 얼마나 당당한가!!! 나는 왜 과거형의 '그랬던 사람'에 멈추어져 있는가.

어쩌면 매사 뭐든지 결국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디폴트값으로 나도 모르게 세팅해 놓는 습성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호기롭게 문을 열어젖히지만, 끝까지 달려가지 못하고 푹 넘어지는 일이 반복되었지. 최선을 다하면 실망할 것을 생각하고 힘껏 나아가지 못했다. 글쓰기도 그러했다.


나와 다르게 한때 아이는 '위인'의 열망이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을 겨우 꿈꾸던 나의 소박하다 못해 힘없는 목표에 비해 높고도 멀리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아이가 내심 부러웠다. 최근엔 보다 현실계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데 열심인, 어느덧 훌쩍 큰 아이는 이야기한다.


"엄마, 하고 싶은 것을 해."


학원 일을 하면서 내내 집에 와서 온갖 것을 궁시렁대고 "이제 그만두고 당분간 안 할 거야" 맹세하고는 또다시 일이 생기면 나가는 일을 반복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나 보다. 이제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그 누가 뭐라하지 않는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은 나이인데, 아니 이제 무엇이든 실패해도 그닥 두렵지 않은 나인데 마음속 허들은 왜인지 그새 더 높아져 있었다. 내 글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50살의 점프로 제일 먼저 넘어가야 할 것은 평생 숙제로 남아 있는 이 지긋지긋한 미련, 글쓰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까짓거 하고 싶은면 하는 거지. 신발끈 고쳐 묶고 아이와의 시간을 한줄 한줄 적어내어 넘어가면 그다음의 설레는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겠지.

"그 긴 시간을 잘 지나왔는데 이제 뭐든 할 수 있어!"

육아 졸업은 내게 어떤 자신감을 주었다. 율아, 너와의 시간은 나를 다른 곳으로 몇센치쯤 옮겨주었어. 이제 엄마사람이 되어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가장 가까운 행위인 글을 다시 마주한다.


그곳엔 좀더 나에게 너그러운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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