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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05. 2024

사춘기에 대처하는 자세

관계 적금을 위한 인내

오래된 아이 친구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다 아이와 통화를 했다.

“아들아 밥 잘 챙겨먹고 나가셔~"

여느때처럼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니 다른 엄마가 말한다.

"언니는 혼내거나 화내지 않고 항상 이렇게 친절해?"

"웅 혼낼 게 뭐가 있어."

"어떻게 그래. 믿을 수가 없어"

8년째 아이가 사춘기라고 말해온 오늘도 아이가 돌았다고 말하면서 침을 튀기고 있던 다른 엄마는

"말도 안돼. 우리 집도 이상하지만 언니네도 정상이 아닌 거 같아."

성인이 된 아이를 혼낼 게 있는 것과 혼낼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구분해 말하지 못했다. 다시 정정해 다 큰 아이는 혼내고 말고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지 않냐는 말이 입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꿀꺽 삼켰다. 중학교 이후 아이를 혼낸 적 없다는 말을 하면 기절하려나.

사춘기 때부터 나는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혼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니 그냥 "엄마는 율이가 그렇게 말해서 마음이 안 좋아" 라 하고 퇴각하여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이제 나도 생각이 있어! 나도 내 세계를 만들거야"라는 생각으로 마음 속에서 폭풍이 일고 있는 아이들의 그것이 정상인 성장과정이면서 정상이 아닌 태도로 표출되는 시기, 그것이 사춘기다.

엄마들은 아이가 뜻대로 안 되거나 마음에 안들 때 무조건 아이가 사춘기라고 한다. 예전 시키는 대로 공부도 넙죽, 생활도 문제없이 잘 하던 아이들이 자기 뜻대로 행동하면 "어라 얘가 왜 그러지"라는 생각과 당황을 하면서 끌어다쓰는 사춘기란 단어는 실은 미니 독립을 위한 아이들의 몸부림 과정이다. 아이가 호르몬의 지배를 받아서 말도 안되는 것에 화를 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오늘 영화 내용 중 뭐가 재밌었어?"(영화를 같이 봐준 것도 감사한 것인가)

"(버럭하며) 왜 그런 걸 물어봐?"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면 남편은 부르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큰소리를 내서 부딪히곤 했다. 무조건 오냐오냐 하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서로 감정만 나빠졌기에 옆에서 마음 졸이던 나는 이제 그만 하며 워워 했다. 그때 남편에게 "아이도 자기가 잘못하는 거 안다. 시간 지나면 속으로 반성할 거다."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이래도 되나 싶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말로 불꽃이 튈 때면 부랴부랴 둘을 갈라놓느라 애를 써야 했다.

가장 심각했던 사건은 둘이 어떤 문제를 같이 풀면서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을 같이 문제를 풀다 어떤 부분에서인가 부딪쳐 율이의 신경질과 남편의 울컥의 컬래버는 극단을 향해 달려갔다. 둘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조금도 지지 않으려는 감정의 최고치를 뿜어내고 있어 나의 조정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나도 태어나서 이런 큰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싶은 깊은 소리를 저 뱃속에서 끌어내

"당장 그만해!!!!"라고 소리쳤고 그제야 둘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로 각자의 방으로 갔고 이 날은 나름 서로에게 어느 선까지는 조심해야겠다는 교훈을 남겼다.

나중에 "당신은 아이에게 권위적이고 말도 안 통하는 아빠로 남고 싶어 아니면 이해심 많은 좋은 아빠로 남고 싶냐"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남편에게는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율이가 극단적인 일탈 행위를 하지 않아서 이런 태도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주변 엄마들은 "언니는 몰라 율이가 모범적인 아이라."라고 치부하곤 했지만 어느 집 아이라도 크고 작은 사춘기의 물결은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오지 않으면 문제가 아닌가. 내 품을 떠나 어엿한 인간이 되겠다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과정인데.

생각해보면 그때 영글어가는 아이를 기다리며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고 지난 것이 육아 독립의 씨앗이 되었다.

그들이 굴에서 나올 때까지 기대를 접고 좀만 참으면 더 편하고 따뜻한 세상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 사랑하는 자식과 관계 적금 든다 생각하고 인내를 쌓아가면 언제고 만기는 도래할지니.

아이들의 방황이 길어져 그 기간의 한숨으로 몸에서 사리가 나오더라도 천둥벌거숭이 아이들도 엄마가 그랬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믿는 만큼 성장한다는 말은 거짓부렁이 아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저 멀리서 "언니는 몰라~~~~~"라는 소리가 또 들리는 것만 같다. 고작 애 하나 키우고 그래 뭘 알겠나 싶긴 하네. 이런 뻔한 육아서스런 조언이라니. 다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인 엄마들이 그들만의 방법으로 아이와 행복해지는 길을 잘 찾길 그저 바랄 뿐. 다른 이에게 충고 같은 건 가당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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