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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Dec 28. 2020

라쿤 따라 삼매경

아르바이트 일대기 (4)



   내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일까?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살면서 몇몇 잊지 못할 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생각할 때마다 마냥 미소가 지어지는 시기가 있다. 바로 토론토에 살 때였다.     




   제대하고 7개월 후에 나는 토론토로 갔다. 돈도 시간도 여러모로 빠듯했지만 그래도 이때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 먼저 캐나다에 다녀온 여자 친구에게 고민 상담했더니 그녀는 좋은 기회니까 꼭 가라고 했다. 여자 친구와 생이별하긴 싫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영어도 배우고 학과 공부도 해두면 일석이조일 듯싶었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좀 더 멋진 남자가 되리라 마음먹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잠시 놓아주었다.      


   퀘벡 출신 60대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정집에서 9개월가량 홈스테이를 했다. 그들은 친절했고 따뜻했다. 하루 3끼를 다 챙겨주었고 이벤트를 좋아해서 같이 핼러윈 파티를 하고 볼링 치러 가기도 했다. 홈스테이에는 당연히 남자방, 여자 방 나눠져 있었는데 우리 방에는 2층 침대 4개가 있었다. 그 말은 즉, 적게는 5명 많게는 8명 정도의 남자가 한 방을 써야 한다는 거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다. 물론 군대에 있을 땐 한 내무반에서  30명이 같이 잤지만 여기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방은 '작은 지구'나 다름없었다. 남미 친구, 유럽 친구, 아시아 친구 각 대륙에서 온 친구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또 공용공간에서 '오륜기'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걸쳐진 채 생활했다. 영어로 의사소통했지만 각자 쓰는 말이 엄연히 달랐고 생활 방식은 두 말할 필요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침대 바로 위에는 15살짜리 뚱뚱한 베네수엘라 친구가 잤는데(모던 패밀리 ‘매니 델가도’ 생각하면 될 거다) 이 녀석이 몸에 열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았다. 낮에는 상관없는데 문제는 밤에 잘 때였다. 윙윙 거리는 게 귀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저렇게 머리맡에 계속 틀어놓았다가 나중에 큰일 날까 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그때만 해도 순진하게 그렇게 믿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무리 더워도 자다가 죽기 싫어서 늘 타이머를 맞춰놓고 잤다. 하지만 이 리틀 '우고 차베스'는 코를 드르렁거리면서도 도통 끌 생각이 없었다.


   '이러다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머리 위에 시체 있는 거 아니야?'


    생각만으로도 두려웠다. 그때 당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밀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가서 녀석의 선풍기를 껐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녀석이 코를 들이마시면서 잠에서 깨더니 다시 선풍기를 틀었다. 나는 영어로 '그러다가 너 죽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지만... 녀석은 화를 내면서 스페인 어로 뭐라 뭐라 꿍시렁 거리더라. (이 녀석은 영어를 정말 1도 몰랐다)      


   녀석은 또 잠나라로 갔고 나는 불안에 몸을 뒤척이다가 또 선풍기를 껐다. 잠시 후 녀석은 이마에 땀이 범벅된 채 아래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누워있는 날 향해 저주를 퍼붇더라. 치노 라 뿌따!! 이 녀석 욕 매콤한 거 보소. 입에서 마그마 나오는 줄~


   ‘이 녀석아~ 내가 널 살린 거다. 생명의 은인도 몰라보고.’

   나는 그렇게 한국말로 말하며 선풍기를 빼서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잔뜩 육수를 뿜어대던 녀석은 홈스테이 할머니에게 울면서 고자질했고 나는 아니라고 도와준 거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다른 침대칸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억울했지만 덕분에 좋은 것도 있었다. 그 소문이 퍼져서 러시아에서 온 친구도, 남미에서 온 친구도 날 깔보지 못했다. 아마도 ‘Korean Bully’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우리 방의 '엄석대'가 되고 말았다.      


 

미안해! 카를로스~



    베네수엘라 꼬마는 자꾸 선풍기를 끄는 나 때문에(미안) 다른 홈스테이로 떠나버렸고 나는 남미, 유럽 친구들이랑 정말 신나게 놀았다. 문화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지만 그래도 ‘젊음’이란 건 만국 공용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는 도시 곳곳을 누볐고 매일 밤마다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즐겼다. (다행히도 아빠는 이때 몸이 호전된 상태셨다)  나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서 적어도 밤 12시에는 자야 했는데 멕시코, 브라질 친구들은 그때가 파티의 서막이었다. 내가 침대에 누울 때마다 디에고 일당들은 기타를 들고 내 코 앞에서 '마리아치'처럼 노래를 불러냈다.


    '초이 초이~~ 웨이크 업! 잇츠 파티 타임'


    처음에는 베개로 귀를 막았으나 나중에는 포기하게 되더라. 나도 파자마 입은 채로 녀석들과 노래를 부르고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다보니 분명 영어 배우러 갔는데 스페인어만 오지게 늘었다.


   근데 그렇게 놀다 보니 모아둔 돈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급하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야했다. 하지만 영어가 문제였다. 우리 홈스테이에서는 나름 영어 실력자였지만(내가 잘하기보다는 다른 친구들이 영어를 심각하게 못했다) 밖에 나가면 나는 동네 부랑자보다도 영어를 못했다. 학교에서는 교수가 하는 말 30퍼센트만 알아들었고, 극장에서 영화 보고 나면 혼자 머릿속에서 딴 이야기를 만들었다. (덕분에 상상력은 좋아졌다) 이런 영어 실력으로는 그 흔한 서빙 자리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토론토판 ‘벼룩시장’에서 빨간 줄 치며 일자리 찾는데 라쿤(아메리카 너구리)이 그려진 일자리가 눈에 띄었다. 시급이 무려 25 CAD(캐나다 달러) 란다! 나는 부랴부랴 그 회사로 전화를 걸었고 다음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영 앤 블로어 역에 내려서 건물에 들어가니 이미 다양한 인종,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아무래도 시급이 세다 보니 많이들 지원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들어가니 초로의 사장이 나보고 의자에 앉으라 했다.       


   “여기 뭐하는 곳인지 알지?”

   “네. 알죠. 라쿤 잡는 거 아닌가요?”

   사장은 턱을 괴고는 날 골똘히 살폈다. 벗어진 머리가 형광등 아래서 환하게 빛났다. 문득 저쪽 모공은 지금 한낮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라쿤을 왜 잡는 거냐고? 토론토는 ‘라쿤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라쿤이 살았다. 라쿤은 남의 사유지에 들어가서 정원을 망치고, 쓰레기를 뒤지고, 옥상과 발코니에 배설물을 싸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나도 여기 살면서 심심치 않게 보곤 했다.      



   “근데 괜찮겠어?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그는 음영이 진 턱수염(여기는 밤이었다)을 매만지며 고개를 반쯤 기울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때 당시 나는 몸무게가 60대 초반이었다.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마냥 얼굴은 희디희었다. 이곳 사람들의 평균 외형을 생각했을 때 나는 '소말리아 난민'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자 나는 준비해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전 한국에 있을 때 군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휴먼 웨폰’이었죠.”

   그러면서 나는 군대에서 찍은 사진과 엑스트라 할 때 불화살 맞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껄껄껄 웃으면서 내게 두 엄지를 올리더라. 그날로 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이틀간 맹훈련을 받았다. 제일 먼저 받은 건 의상이었다. 카키색으로 된 작업복에 다용도 주머니가 곳곳에 달려있었다. 오른팔에는 회사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색감이며 스타일이며 딱 예전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가 생각나는 옷이었다.      



    훈련은 2인 1조로 진행되었다. 내 파트너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카짐’이라는 친구였다(실은 하도 오래되어서 카짐인지 하짐인지 헷갈린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고 왠지 모르게 하는 행동이 어설펐지만... 그래도 나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온 선배였고 이미 전에 몇 번 출동한 적 있기에 나는 그가 가르쳐주는 걸 수첩에 메모하며 열심히 배웠다.       


   그는 전기 담당이었고 나는 포획 담당이었다. 그게 뭐냐고? 카짐이 앞이 동그란 링으로 된, 전기 막대기로 라쿤을 기절시키면 나는 재빨리 라쿤을 플라스틱 철창에 넣어야 했다. 훈련 매니저가 라쿤 인형(실은 라쿤 사진이 붙은 쿠션에 가까웠다)을 가지고 이리저리 다니면 우리는 점점 공간을 좁혀가며 한 군데로 몰아붙였다. 우리 둘 다 몸이 날쌘 편이어서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매니저도 우리 연습하는 걸 보더니 나쁘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틀간의 훈련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신고 전화가 울렸고 사장이 우리를 불렀다. 카짐은 내 어깨를 툭~ 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훌륭한 파트너였다. 그는 '베트맨'이라면 나는 '로빈', 그가 '마이클 조던'이라면 나는 '스코티 피펜', 그가 '배추도사'라면 나는 '무도사'였다. 우리 둘이 함께 있노라면 라쿤은 물론, 반달가슴곰도 산채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얀색 미니밴을 타고 출동하는 길, 군대에서도 수없이 육공트럭을 타봤지만 그때만큼 떨리는 순간은 또 없더라. 토론토 밤길을 내달리는 외부 풍경을 보며 나는 창문에 이마를 갖다 댔다. 하얀 입김이 창문을 뽀얗게 흐렸다. 옆에서 카짐은 볼우물에 힘을 주며 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였다.



 


   “괜찮아. 초이~ 긴장하지 마!”

    카짐이 말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요들송처럼 떨렸다. 그도 실전에서 전기 담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랬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그도 나처럼 누군가의 조력자였다.


    “오늘은 세 마리 정도 잡아가자!”

   “세 마리로 부족할 것 같은데 5마리는 잡아야지.”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파이팅을 외쳤다. 실제로 그랬다. 대기 시간까지 포함해서 시간당 알바비가 계산되지만 라쿤을 잡는 대로 보너스 수당이 붙었다. 한 마리당 25달러였다. 만약 하루에 5마리 잡으면 125달러, 둘이 나누면 62.5달러. 그 돈이면 일 끝나고 맥주 한잔 하면서 서로 수고했다며 무용담 나누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드디어 밴에서 내렸다. 나는 철장을 들었고 카짐은 전기 막대기를 챙겼다. 가니까 할머니 한분이 우리에게 자기 집 창고에 가보라고 손으로 가리키셨다. 비장하게... 정말 비장하게... 우리는 앞마당의 돌계단에 발을 디뎠다. 어디선가 ‘스티븐 테일러’가 숨어서 그 큰 입으로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을 부르것만 같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창고로 들어가서 불을 켜니 뭔가가 후다다닥 지나갔다. 순간 깜짝 놀라 나와 카짐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라쿤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훈련 때 배운 대로 불을 껐다. 그러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뭔가의 눈빛이 빤짝거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정말 소름이 돋더라. 우리는 다시 불을 켜고 천천히 다가갔다. 카짐은 리더답게 나보고 후방을 맡으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그의 지시대로 나는 뒤로 둘러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세상에...


    그동안 토론토 살면서 수많은 라쿤을 봤지만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차원이 달랐다. 조금 과장하자면 멧돼지만 한 크기였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공포가 대상을 왜곡시킨다고 누가 그러던데... 암튼 그때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라쿤은 '끄르르르~'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경계했다. 우리의 랜턴 불빛에 녀석의 그림자는 점점 커졌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돈을 벌어야 했다. 이러다간 생활비 없어서 거리에서 노숙할 처지였다.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녀석이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며 주위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지만 전기 한방이면 기절할 게 분명했다. 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기 막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옆을 살피니 카짐은 보이지 않았다. 뒤를 보니 아까 그 자리에서 그는 얼어있었다. 한 발자국도 못 다가온 모양이었다.      


    “카짐!! 카짐!!”

    나는 다급히 불렀지만 좀처럼 카짐을 해동할 수는 없었다. 그 사이에 라쿤은 우리의 경계를 풀고 선반 위로 달아났다. 초고속 화면처럼 내 플래시에 닿는 녀석의 배가 보였고 꼬리가 보였다. 녀석은 거의 날 듯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나는 재빨리 달려갔다. 뒤늦게 카짐도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다시 코너로 라쿤을 몰았지만 이번에도 카짐은 막대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초이~ 초이~ 테이크 잇'

   그러면서 살포시 나한테 막대기를 건넬 뿐이었다. 어랍쇼!!! 이게 뭐지? 정말 황당하더라. 언제는 ‘베어 그릴스’처럼 말하더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전기 막대기를 받아서 열심히 라쿤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덩치가 산만한 게 정신 상태도 산만하더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녀석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 번은 발톱으로 내 얼굴을 할퀼 뻔했다. 깜짝 놀라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10분간의 사투 끝, 라쿤은 유유히 창고 밖으로 도망갔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우리는 잡을 수 없었다. 상대는 너무 위협적이었고 너무 빨랐으며 또 너무 강했다. 우리는 하얗게 불태웠고 또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건 사장이 아니라 사장 할애비도 못 잡을 거다!’

   이 말을 영어로 하고 싶었지만 숨이 차서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카짐에게 쓴소리를 했고 카짐은 민망함에 몸을 배배 꼬았다. 문득 그 모습을 보니 어디선가 본 '인공잔디 씹어 먹는 흑염소'가 생각나더라.


    우리는 곧 다른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경험이 없었고 카짐은 너무 겁이 많았다. 그날 4군데 출동했고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빈 철창을 들고 사장 앞에 섰는데 정말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 카키색 ‘고스터 버스터즈’ 재봉선만 하염없이 손가락으로 긁어댈 뿐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4일째 되던 날에는 이미 지하철에 죽어있는 라쿤 한 마리 발견해서 철창에 넣었다.  


 

   홈스테이와 어학원 오가며 본 라쿤은 조그맣고 귀여웠는데 왜 하필 신고받고 출동한 곳 라쿤은 다 성질이 고약하고 사나운 걸까? 하긴... 안 그러면 굳이 신고할 필요가 없겠지. 그렇게 나와 카짐은 겨우겨우 버티다가 5일째 되던 날 잘렸다. 솔직히 잘려도 할 말은 없었다. 내가 사장이래도 15번 넘게 출동해서 겨우 한 마리(그것도 이미 죽은) 잡아오는 알바생은 봐줄 수 없었다. 오히려 5일 내내 알바비 꼬박꼬박 정산해준 사장은 우리에게 천사나 다름없었다.


   “고생했어. 초이”

   “너도 카짐.”

   카짐은 ‘앗살라무 알라이쿰!’ 합장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나도 똑같이 따라 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계속 살폈지만 카짐은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안개 속에 그의 실루엣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우리는 분명 좋은 파트너는 아니었다. 어쩌면 최악의 파트너일지도...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재미있었다. 어차피 적성에 안 맞아서 안 잘리더라도 며칠 안에 그만 둘 생각이었다.       






   그때 그 멧돼지 같은 라쿤을 본 트라우마 때문일까? 한국에 와서도 나는 라면 ‘너구리’를 못 먹는다. 오동통통한 녀석의 얼굴을 볼 때마다 섬뜩했던 라쿤의 눈빛이 자꾸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카짐’은 요즘 뭐하고 지낼까? 아직 캐나다에 있을까? 아님 나처럼 모국에 돌아갔을까? 가족에 대한 정이 많아서 틈날 때마다 동생들 사진 나한테 보여주곤 했었는데... 선홍빛 잇몸이 훤히 드러나는 녀석의 미소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다신 볼 수 없어도 같은 하늘 아래서 모쪼록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P.S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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