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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Jul 22. 2021

나는 소모품이야!


   찰랑 찰랑 ~ 

 거리는 소리가 머리맡 가까이 들다. 태양과 구름이 함께 직조한 그물 모양 파도 위로 하얗게 부서진 포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바닥에 누운 채 여자 친구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을 바라본다. 찰나 같은 순간은 영원고, 모든 게 다 잘될 거란 이상한 낙관이 마음 속에 배어든다. 그때였다.

   위위잉~ 위위위잉

   사이렌 소리가 들다. 뭐지?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공습이라도 당한 건가? 아니면 ‘5분 대기조’ 훈련인 건가? 습관처럼 관물대를 열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려 했다.



 “뭐야! 이게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군가가 불을 켜자 주위에서 아비규환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에 물 한 가득이었다. 뿌옇게 차오른 물이 침상 아래 벗어난 군화까지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부대원 30명 모두 문으로 쉼 없이 쏟아지는 물을 보고 입을 떡 벌린 채 연신 눈을 비볐다. 밤새 비가 엄청 왔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그때 당직사관 목소리가 방송으로 들렸다.     


 <전 대원들에게 알린다. 모든 대원들은 즉시 2층으로 대피할 것. 즉시 대피할 것!>   

  

   그제야 우리들은 미친 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나가려는데 맞선임이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퍽!! 때렸다.


 “이병 최윤석!”

 “야! 이 미친 새끼야? 총기 반출 안 해?”

 “네~ 알겠습니다.”


  그때 나는 전입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신병이었다. 아는 건 거의 없었다. 누가 만지면 관등성명만 앵무새처럼 뱉을 뿐이었다. 선임들은 모두 나가고 나와 동기 3명만 남아서 서둘러 총기 반출을 시도했다. 그때 창문 하나가 열리더니 타이타닉의 한 장면처럼 물이 콸콸 쏟아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리는 철사 하나하나 뽑았다.     

 ‘이게 뭔 일 이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끝날 때 다되니 내무반이 물에 반 이상 잠겼다. 슬리퍼가 허리 위로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각각 8개를 머리에 이고 가슴팍까지 잠긴 물을 헤쳐 나가며 2층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갔다. 형광등이 점멸하더니 이내 전기도 나갔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웠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으니까. 그때 위에서 손전등과 라이터 불빛이 보였다.


 “이쪽이야~”

  그들의 신호를 받고 무사히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채 젖은 옷을 벗지도 못하고 서로 끌어안은 채 우리는 바들바들 떨었다. 동기 안경 너머로 눈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파랗게 질린 입술로 나는 그 녀석에게 ‘이제 괜찮을 거야!’ 계속 되뇌었다.     

 


  그날 밤새 하늘이 관장이라도 한 것처럼 비는 주룩주룩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창문을 깨부수듯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우리는 라면 박스로 2층 창문을 덧대야 했다. 예민해진 선임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분풀이 상대를 찾아다녔고 우리는 한 구석에 쪼그린 채 불안에 떨며  기절하듯 쪽잠을 잤다. 그리고 두세 시간 잤을까? 눈을 떠보니 새벽이 찾아왔다. 먼저 깬 동기가 나에게 손짓했다.   

  

  “윤석아~ 이것 봐봐!”

   2층 창문으로 보니 온 세상은 황톳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닷물과 하천물이 만나 일렁이는 파도가 모든 건물을 집어삼켰다 (그때 나는 경포대 근처 공군 비행장에 있었다). 돼지와 소, 개 등이 쉼 없이 떠내려 왔으며 주인을 잃은 자동차, 슬레이트도 둥둥 떠다녔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었다. 평생 처음 보는 광경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2층도 잠기겠다는 생각에 우리들은 대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1층은 완전히 물에 잠긴 상태였다. 뿌연 물은 흐느적거리며 계단 위로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일일 강수량은 870mm, 순간풍속은 37.2m/s 역대 1위, 자산 피해 4조 2225억 원,

 그랬다. 그 태풍의 이름은 ‘매미’였다.     




  다행히 오후가 되자 태풍은 점점 잠잠해졌지만 처참한 건 마찬가지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불어난 물 때문에 우리는 며칠 동안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밥이 올 때까지 전투식량으로 때워야 했고 다른 동 옥상에 설치된 ‘간이식당’에 가려면 우리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을 뚫어야 했다. 물살에 쓸려 내려갈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움직다. 그렇게 헤엄치듯 걷다 보면 부패한 동물 사체들이 옆을 지나갔다. 부사관이나 장교들은 군용 보트를 타고 옆을 지나갔지만 우리는 그걸 탈 수 없었다. 띵띵 불은 손과 발을 체온으로 말리며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못 자고 못 먹는 건 참을 수 있었는데 냄새 하나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상상 초월이었다. 며칠 동안 안 씻은,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남자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노라면 ‘인간 취두부’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비위 약한 나는 선임들 눈치 보면서 연신 헛구역질해댔다. 볼 일 보는 것도 문제였다. 변기가 막혀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들 창문 밖으로 엉덩이를 내밀었다. 인권이란 없었다. 그렇게 5일 이상 지내다 보니 여기가 ‘난민촌’인가! 아니면 ‘노예 상선’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그렇게 태풍은 끝났다. 하지만 고통까지 끝난 건 아니었다.


  나는 그때 관제병이었는데 (비행기 이착륙을 담당) 태풍이 끝나자 전투 비행기들이 다시 출격했고 우리는 2평 남짓한 임시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3~4명이 관제 업무를 해야 했다. 레이다와 기계가 내뿜는 열기에 질식할 것 같았지만 그나마 그곳은 천국이었다. 일이 끝나면 원래 있던 RAPCON이라는 수몰된 건물에 들어가 뻘 제거 작업을 해야 했다. 기계 안에 들어가서 걸레로 전선과 부품 하나하나 다 닦았다. 마치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2주 동안 기계 다 고치고 나니 건물 보수 공사를 하라고 감독관은 지시했다. 마음 좋은 부사관 한두 명이 가끔 도왔지만 천장 슬레이트 위로 올라가고 바닥 타일 아래로 들어가는 건 우리 병사들 몫이었다. 마스크도 없이 분진 가루를 들이마시며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광부들처럼 일했다. 월급 18,900원 받으면서(0이 빠진 게 아니다) 우리는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내가 근무했던 RAPCON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날도 찌는 더위에 비 오듯 땀 흘리고 있는데 감독관이 RAPCON에 들렀다. 그는 녹초가 된 우리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고생 많네. 이번 주 일요일이면 마무리될까?”

 “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는 흐뭇해하면서 A 병장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자기 사무실로 향했다. 혹시 회식이라도 한번 시켜주려나 우리는 희망에 부풀었다. 적어도 아이스크림 하나씩은 나눠줄 주 알았다. 하지만 그는 빈손으로 나왔다. 그의 어깨에는 골프 클럽이 들려있었다.


 “그럼 조금만 더 수고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떠났다. 하루 종일 먼지와 뻘, 땀에 절여진 우리를 그대로 두고...

그때 느꼈다.


 ‘나는 소모품이구나! (I am expendable)  

  여기 널브러진 볼트와 너트처럼, 우리는 언제라도 갈아 낄 수 있는 소모품이구나!’      


  징병제라는 제도 하에서 나 같은 병사들은 매년 끊임없이 들어온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병사들은 장교, 부사관의 수발을 든다. 어차피 2년 쓰고 버릴 녀석들에게 무슨 애정을 줘~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대학 과제, 자녀들 과외까지 나에게 맡겼다. 핸드폰 한 번 쓰게 해 주겠다는 대가로, 부모님과 여자 친구 목소리 한번 듣는다는 조건으로 나는 말도 안 되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줬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건 제로섬 게임이었다. 주어진 업무량 안에서 자신들 일 적게 하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내 일을 남에게 미루기!’


  선임들은 먼저 왔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일을 우리들에게 떠넘겼다. 특히 A 병장, B 상병 두 악당은 청소 안 하고 놀다가 심심하면 우리를 집합시켰다. 동기들 모두 갈궜지만 내가 주 타깃이었다. 몸 쓰는 데 워낙 소질도 없었지만, 서울 출신이라는 게 그들에게는 콤플렉스였나 보다.      

 “명문대 나와도 별 볼일 없네. 일 하는 꼬라지 봐라.” 말끝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어느 날은 둘은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며 솔 하나 안 주고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닦습니까?”

 “시바~ 손 있잖아! 손!! 손은 뒀다 뭐하냐?”     


  그랬다. 결국 나는 손가락으로 누런 때가 묻은 소변기, 대변기 전체를 닦았다. 그때 심정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아래로 몇 가닥 빛이 실타래가 되어 춤을 추었다.


 청소 끝난 후 그들은 검사하러 와서 꼬투리 잡으며 내 머리를 때렸다.

  “시바~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 앞으로 사회생활 어떻게 할래? 밖은 전쟁터인데.”

  그렇게 21살 먹은 선임이 23살 후임에게 말했다.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지만 함부로 뻗을 수는 없었다.      







  그 해는 유별났다. 태풍끝나자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었다. 다시 바닷물은 찼고 우리는 허벅지까지 오는 뿌연 물을 헤치며 밥을 찾아다녔고 이내 또 뻘 작업을 해야 했다. 부사관, 장교들은 권태롭고 선임들은 이기적이었으며 하루하루 진이 빠졌고 또 진저리가 났다. 빗방울이 내 마음속 검은 물웅덩이 위로 사정없이 튀었다. 웅덩이는 점점 더 깊어졌고 점점 더 시커메졌다. 만약 딱 하나 목표가 없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그건 입대하고 처음 나가는 ‘100일 휴가’였다.      


  그날만 기다리며 나와 동기는 서로를 위로했다. 근데 100일 휴가 날짜가 다가왔지만 중대장은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

 “이상하다. 원래 지금쯤이면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우리가 먼저 가서 말해야 하는 건가?”

  휴가를 한 번도 안 나가봐서 우리는 아는 게 없었다. 결국 내가 총대를 맺다. 찾아가서 조심스레 말씀드리자 중대장은 귀찮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너네가 왜 100일 휴가 가야 하는데.”

 “네?”

 “가야 하는 이유 10가지 대봐!”

  신병을 놀리려는 건가? 그러기에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 정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쥐어짜서 10가지 이유를 말했다. 그러니까 중대장은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부대 난리인 거 알지? 다 같이 못 나가. 너희 동기 4명끼리 순번 정해. 그러면 보내줄게.”

  그렇게 그는 동기를 갈라놓았다. 우리 모두에게 2박 3일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가족이 너무 보고팠고 애인, 친구들이 너무 그리웠다. 밖에 나갈 수만 있다면 이틀 정도는 한 숨도 안 자고 버틸 수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제비뽑기를 했다. 제일 처음 나가는 사람과 마지막 나가는 사람은 한 달 넘게 차이 났. 각티슈에 번호가 적힌 종이를 넣고 흔드는데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제발 1번, 제발 1번’

 그렇게 기도하면서 손을 넣었지만... 3번이었다. 제기랄~      

  며칠 후, 동기 1명이 먼저 휴가 가는 날,

 “미안해. 나 먼저 가서.”

 “괜찮아.”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꼴찌가 아니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이제 며칠만 더 버티면 휴가 나갈 수 있다! 그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 견뎌냈다. 그때 갑자기 부대 안이 시끄러워졌다. 왜냐고 물어보니 참모총장이 암행 순시(순찰) 온다는 거다. 다들 비상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중대장을 찾아갔다.

 “저 휴가가 다음 주인데..”

 “지금 휴가가 문제야? 이 새끼 존나 빠져가지고.”

  그는 내게 서류판을 집어던졌다.



  우리는 뻘 제거에 더해 서둘러 건물 미화 작업을 해야 했다. 장군이 올 동선을 예상해서 제초작업, 도로 보수 작업도 병행했다. 몇 백 명이 일렬로 서서 ‘참모총장’이 도착할 활주로 위에서 잡초 뜯는 모습은 누가 보면 정말 장관이었을 게다. 위에 잘 보이기 위해서 혈안이 된 부사관이나 장교는 다들 엄청 예민해진 상태로 우리를 다그쳤다. 채찍만 들었으면 아마 목화 농장 주인과 별반 차이 없었을 .      

  ‘도대체 이걸 왜 해야 하는 걸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암행이라며. 수해 복구가 잘되는지 점검하는 거라며.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로 채 닦지 못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일이 끝나자마자 우리들은 다시 화장실 청소에 투입되었다. 총장님이 어디 화장실에 쓰실지 모르니 부대에 있는 모든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라는 지시였다. 그러자 A병장은 공용 치약을 우리에게 나눠줬다.

 “이게 화장실 청소에 직빵이야~” 한껏 어깨를 으스대며 그는 말했다.

 “이병 최윤석! 저 표백제 있는데 그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야~ 이 새끼! 죽고 싶어? 시바 하라면 해.”

 “이게 전통이야. 전통!! 예전부터 우리는 다 그렇게 했어.”


  그와 한 쌍인 B 상병이 이죽거리며 덧붙였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한 번 더 따졌다가는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눈에 선했으니까. 결국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서 줄눈 사이에 낀 때를 치약 묻힌 칫솔 하나로 구석구석 닦았다. 표백제로 10분이면 충분할 걸, 6명이서 총 3시간 넘게 걸렸다. 그때 나는 느꼈다.     

 

 우리 주적은 북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든 사회의 부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는 것을.


 며칠 후, 참모총장은 1시간가량 얼굴만 비추고 갔고, 다시 부대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예정보다 27일 늦은, 127일 만에 ‘100일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정말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감격의 해우를 했다. 시꺼멓게 타고 7kg이나 빠진 아들 손잡으며 당신은 속상해하셨지만 나는 애써 괜찮다고 했다. 괜히 힘든 모습,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었다. 여자 친구도 만났다. 한없이 그녀 품에 안겨 보고 싶었다고 속삭였다.      

 “뭐 먹고 싶어? 오빠!”

 “나 순대국밥”

  입대 전에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데 갑자기 먹어보고 싶었다. 진한 육수를 들이키며 오독오독한 무김치를 씹으며 그렇게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2시간 반 만 같은 2박 3일이 지났다. 이제는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우산 하나를 쓰고 나는 여자 친구랑 같이 동서울터미널 향다. 거기서 선임들이 사 오라는 맥심 잡지도 샀고, 나눠먹을 던킨 도너츠도 샀다. 비가 와서 눅눅해질까 봐 비닐 두세 개로 봉했다. 강릉행 티켓을 사고 이제 다시 버스에 오르려 하다가 여자 친구를 돌아보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빠 왜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눈물이 왈칵 나왔다. 돌아가자마자 나는 30명 넘게 생활하는 내무반에서 코 고는 소리 들으며 잠을 설쳐야 하고, 다음날 아침 솔 없이 맨 손으로 변기 닦아야 하며, 땡볕 아래서 뻘 제거 작업을 하며 하루 종일 갈굼 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도대체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다시 거기에 가야 하는 것일까?

 왜 내 꽃다운 청춘을 그곳에 저당 잡힌 걸까?      


  가기 싫었다. 다 때려치우고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내 인생은 출발도 전에 낙오되는 거니까. 평생 '범법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채 불안에 떨며 살 수 없으니까.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 유리 너머로 여자 친구가 어깨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우산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내 마음만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 잡았다.      


 나는 소모품이니까. (I am expendable)  

 그러니까 누군가를 대체하기 위해 가야 해. 그게 내 존재의 이유야.


  비는 그쳤지만 나의 장마는 끝나지 않았다.

  ‘감정’이란 나이테는 폭언과 폭력 아래 점점 희미해졌고

  바스락바스락 ~ 목탄처럼 조금씩 조금씩 부서진 채  하루하루 버텼다.

  그리고 2년 5개월 18일이 지난 후에....


  나는 지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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