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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l 07. 2024

0706 주꾸미 점심

2024년 여름일기

2024년 7월 6일(토) 흐림


동네 스페인음식점을 가기로 했는데, 여름휴가로 문을 닫아 다른 음식점에 가게 됐다. 여기저기를 알아보다 오랜만에 연포탕을 먹을까 했는데, 엄마가 예전에 아빠와 갔었던 낙지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가 일하실 때 회사 근처에 있어 가끔 갔던 곳인데, 반찬도 잘 나오고 맛있다셨다. 하지만 엄마는 음식보단 아빠가 생각나 가고 싶으신 듯 보였다. 난 아무 말 않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고, 그렇게 오늘의 점심 장소는 엄마의 추억이 남아있는 낙지마당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정확한 위치확인을 위해 아무리 검색해도 그 음식점이 나오지 않고, 엄마가 전화해도 없는 번호라고 나오는 거였다. 100% 없어진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는 우선 가보자고 하시며, 평소 다른 곳을 갈 때와는 다른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차로 15분쯤 달려 골목을 들어가 예전의 장소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며 있기를 바랐는데, 역시, 거기엔 파스타를 파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엄마는 ‘사장님한테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하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도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벌써 12시 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빨리 점심 먹을 곳을 정해야 했다. 어디로 갈지 한참을 실랑이하듯 이야기했고, 골목을 지나다 보인 주꾸미 집에 가기로 했다. 엄마가 가자셨는데, 원래 가게 근처에서 먹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주꾸미 집은 체인점이라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고 들어갔다. 주문은 요즘 대세답게 자리에서 태블릿으로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주꾸미 덮밥 2개, 치츠사리, 백합탕을 주문하고, 하나는 덜 맵게 해달라고 얘기하러 사장님께 갔다. 사장님은 맵기 조절이 어려워 다른 야채를 조금 더 넣어주겠다셨고, 치즈사리는 덮밥에 안된다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기본으로 미역국이 나오는데 백합탕을 주문하겠느냐고 물어보시는 거였다. 미역국이 나오는지 몰랐던 우리는 다시 고민했고, 백합탕을 취소하기로 했다. 사장님이 백합탕에 대해 묻지 않아도 되고, 하나라도 팔면 가게에 이득일 상황이었다. 그런데 손님의 입장을 고려해 물어봐주신 사장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이고 지나가다 그냥 들려, 오히려 내가 사장님을 그냥 돈 벌려고 하는 존재로 본 게 아닐까 싶어, 미안해지기도 했다.


음식이 나왔고, 많이 맵지 않아 엄마도 먹을만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셀프바에서 깻잎과 무쌈, 콩나물을 가져와 먹으니 더 순해졌다. 요즘 외식하면 거의 1만 원이 넘는데, 9,500원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게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도 차 한잔에 7000원이 넘기도 하는데 말이다. 사장님의 인간미가 더해져 모든 게 맘에 드는 음식점이 돼 가고 있었다.




밥을 먹고 나와, 근처에서 신발을 보게 됐다. 엄마는 장마가 다가오는데 지금 신발로는 감당이 안된다며 사러 가자셨다. 필요할 거 같긴 했지만, 피곤해 집에서 눕고 싶은 맘이 컸는데, 이왕 나온 거 엄마도 강하게 원하시니 가보기로 했다.

근처 뉴코아아웃렛에 가 주차를 하고 신발을 보았다. 역시 이름 있는 가게는, 십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구경만 하고 패스. 비가 와도 괜찮을만한 운동화를 사러 위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엄마는 여성복 파는 곳에서 구경한다며 중간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셨고, 나 혼자 신발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구경하다, 예전에 신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운동화를 선택했다. 방수재질이라 올 장마는 이걸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계산을 하고 엄마를 만나 잠깐 옷을 구경하고, 집으로 향했다.


점심도 먹고 쇼핑도 하며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날이었다. 그런데 뭔가 나의 행동에서 찜찜함이 느껴졌다. 쇼핑을 하면서, 나를 위해 신발을 사러 가자 옷을 보자 하는데, 괜한 짜증과 귀찮음이 올라옴을 느꼈던 거다. 몸이 피곤한 게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은 아닌 거 같았다. 내가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나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심지어 엄마가 나를 위해 신발을 사러 가자했는데 왜 그런 걸까? 그리고 엄마가 나중에 신발비용도 주셨는데.

차분히 돌아보니, 오늘 엄마와의 시간을 같이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엄마를 위해 내가 시간을 낸다는 마음이 들어있었던 거 같았다. 게다가 피곤한 상태에, 해야 할 게 있는 상태라 마음도 조급해지고 여유가 없어졌던 거 같았다. 엄마와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에서, 중요한 걸 놓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보낸다는 표면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온전히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가 중요할 거였다.


나를 가장 사랑해 주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더 잘해야 는 구 나란 마음을 다시 먹어본다. 매일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실천할 수 있기를.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행할 수 있기를.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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