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븐
“너는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봤어?”
번쩍. 눈이 떠졌다. 아직 형광등이 켜지지 않은 시간. 며칠째 기상 시간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일찍 눈을 뜨는 날에는 항상 알 수 없는 자의 물음으로 꿈이 끝난다. 그 말이 도대체 뭐라고 나를 항상 흔들어 깨우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나.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살아가는걸. 그리고 우리 앞에는 항상 우리 몫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 임무를 하루 종일 붙잡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이렇게 일하려고 태어난 건가 싶기도 하고.
탁, 형광등이 켜졌다. 우리가 자야 하는 최적의 수면시간에 맞춰 형광등이 켜지는 시스템인데, 며칠째 형광등보다 일찍 일어나니 괜히 잠을 더 못 잔 것 같아 몸에 피로가 하나씩 더 쌓이는 기분이다.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 오늘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영양상태, 움직임 등 모든 게 정상인 것을 확인한다. 내 어깨에 지워진 피로를 이 기계가 느껴보면 정상이 아니라고 할 것 같은데. 이렇게 한숨 쉬는 내가 이상이 없음을 전해준다.
건강 리포트가 끝나자마자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다.
“S777에게 온 연락은 없습니까?”
답변은 항상 ‘없습니다’라고 뜬다. 이 정도면 기계가 제발 그만 물어보라며 질문하기 전에 ‘없다’라는 표시를 띄울 텐데, 참 정직한 기계는 오늘도 나의 질문을 끝까지 들은 다음에서야 대답해 준다. 세븐이 살아 있는 건지 걱정된다. 오늘도 텅 빈 대답을 듣고는 무거운 몸을 이끌어 일할 준비를 한다.
많은 S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다. 오늘은 좌표가 찍힌 곳의 행성 일을 도와주는 것. 주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존재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그 행성에 전달될 물질, 에너지를 전달하는 일을 맡는다. 끊임없이 이곳저곳 다니는 게 무료할 법하지만 세븐과 함께 일했을 때는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세븐은 자신이 이 일을 하면서 여러 행성을 많이 다녀보았다고 했다. 나보다 일련번호가 뒤에 있음에도 세븐은 자신이 다양한 곳을 다녀보았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내가 별말 없이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으면, 세븐은 항상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예전에 갔던 곳이라고 반가워했다. 하물며 자신이 간 곳이 아니라 해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꺼내어 이래저래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그 행성에 있던 친구와 내기에서 이겼다는 둥, 식량을 함께 나눠 먹었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저 멀리 보이는 비슷한 동그라미 행성들이 꽤나 제각각의 색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세븐이 칠한 추억의 색으로 보이는 듯하여 꽤나 재미있는 항해가 되곤 했다.
세븐의 발랄함은 역시 저 행운의 번호에서 나오는 걸까.
세븐과 처음 일 하게 되었을 때, 세븐은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일련번호가 아닌 애칭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세븐이라 불러주세요!”
서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약식으로 알파벳과 일련번호로 부르거늘. 교육을 못 받고 온 것일까. 애칭은 서로 친밀한 관계일 때나 서로 지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고향에서 불리는 애칭이 존재하고, 친한 존재끼리 친밀한 관계의 징표로 서로 애칭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있다. 서로만의 애칭이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여야만 하는데, 나랑 처음 만나 대뜸 자신을 애칭으로 소개해 버리다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나는 우리끼리 기본적인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이임을 명시하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S208입니다. 서로 초면이니 일련번호로 불러야 한다 생각합니다. 당신의 일련번호는 무엇입니까?”
그런데 내 태도에 대한 세븐의 답이 더 가관이었다.
“제 일련번호가 무엇이라 생각됩니까? 맞춰보십시오. 힌트는 제 애칭 ‘세븐’에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장난이란 말인가. 갑자기 쑥, 선을 넘어 사적인 영역에 침입해서는 엉뚱한 퀴즈나 내고 있다니. 그런데 그 침입이 영 싫지 않았다. 내 사적인 영역을 헤집어 놓지 않고 반갑게 쑥 들어오는 느낌. 그 싫지 않는 느낌에 나는 세븐의 질문에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흠... 일련번호에 7이 들어가 있는 겁니까?”
“네! 무려 3개나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서부터 행운의 숫자를 많이 가졌다고 다들 세븐이라 불렀지요. 저는 서로 일련번호로 부르는 것보다 애칭으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과 말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강직해 보이십니다. 저도 S208님을 애칭으로 불러도 됩니까? ‘세론’으로요. 대장 같아 보이잖아요.”
‘세론’. 세븐이 나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강직해 보인다는 이유로, 자신이 생각한 ‘강한’ 이름을 나에게 턱 붙여준 것이다. ‘세론’이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고 또 굴려보았다. 세론, 세론, 세론... 내 어떤 부분이 강직해 보이고 대장 같아서 ‘세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게 친밀한 말들로 훅 들어온 세븐이 지은 거라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세븐만의 활발함이 내 사적인 영역에 침투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네, ‘세론’. 그렇게 부르도록 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친밀함은 한순간에도 만들어지는 거구나.
수송 임무를 마치고 휴식처로 들어왔다. 휴식처에 들어올 때도 항상 하는 말.
“S777에게 온 연락은 없습니까?”
역시 이번에도 대답은 아니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듣는 대답인데도 항상 기대하게 되고, 다른 말이 들리길 바랐다. 나는 기계의 한결같은 대답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기계는 아니오와 함께 다른 메시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중앙관리 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한 시간 1분 후, 이 메시지는 삭제됩니다. 지금 바로 열람해 주시길 바랍니다.”
관할 구역이 바뀌거나 직종이 바뀌는 거면 이렇게 급하게 보고 지울 리가 없다. 지체 없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알파벳과 일련번호, 행성 번호가 쓰여있었다. 이걸 어떻게 1분 만에 다 보라는 건지. 휙휙 넘기고 있었을 그때, 일련번호들 사이로 어떤 숫자가 내 눈에 박혀 들어왔다.
‘S777’
숫자가 특이해서 금방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렇게 찾던 세븐이 왜 이 명단 안에 있는 것인가. 다른 일련번호 나열을 제치고 본 내용을 확인했다. 본 내용은 바로 이것.
‘범 우주적으로 기이한 현상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에 S208님은 현상의 원인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비밀 조사단으로 파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이한 현상?
바로 밑에 동영상 파일이 첨부되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내 눈에 말도 안 되는 현상들이 포착되었다.
행성이 통째로 가루가 되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다. 어둡고 컴컴한 행성이 마치 생을 다 한 듯, 검은 우주의 먼지가 된 것 마냥 사라진 것이다.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지만, 동영상이 보여주는 현상은 똑같았다. 행성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
문서 확인 시간을 보니 대략 15초 정도 남아있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문서의 내용을 읽어 내렸다. 행성의 대기권에 다다르면 통신이 끊기고, 행성 안 전기 에너지가 사라지면 며칠 후에 바로 행성 주민들과 함께 행성이 소멸...
메시지는 시간이 다 되어 눈앞에서 휙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잠깐 신기루를 본 것이었을까. 갑작스럽게 받은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엉켜 붙었다. 행성의 실종, 통로 차단, 전기 에너지 고갈, 그리고 그 희생자 명단에 있던 세븐.
세븐에게 연락이 없던 이유를 인제야 알게 되었다. 세븐은 함께 근무하던 중, 기력이 약해져 임무 불능의 상태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 집중케어를 받고 임무에 복귀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그 이유가 행성의 소멸. 세븐의 소멸이었다니.
온몸이 터질 듯이 쿵쿵 뛰는 감각이 느껴졌다. 눈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듯 덜덜 떨렸다. 어느 날 불시에 존재가 사라지는 게 가능한 것인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존재 중 세븐이 사라졌을까.
몸이 기우뚱 기울어져 넘어지는 걸 겨우 난간을 잡아 버텼다. 손가락, 팔다리, 가슴이 쿵쿵 뛴다. 숨을 쉬어야 한다.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어 감각을 잠재워 본다.
방금 메시지의 요점은 기이 현상을 알리는 게 아닌, 나의 새로운 임무 배치였다. 새로운 명령. 이 우주에서 일하는 모두가 중앙관리 본부는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임무가 배치되고 운영되는지 모른다. 오직 본부에 대해 아는 것은 딱 한 가지.
‘무조건 명령을 지켜야 할 것.’
본부에서는 세븐과 나의 관계를 알고 나를 파견시킨 걸까. 갑자기 몸에 가벼운 소름이 돋아 눈으로 이리저리 방을 관찰했다. 누군가 카메라를 심어 관찰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방이었다. 잠시 방 안쪽 천장을 뚜렷이 바라봤다. 그저 점 한 점도 없는 새 하얀 방의 한 부분이었다.
한 점을 가만히 응시하던 나는 이내 내가 이 임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문서 열람의 제한 시간이 1분인 정도면 그만큼 기밀 사항이고 누구에게도 안 알리고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나도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왜 불시에 행성과, 그 안의 수많은 존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지. 어두운 우주에 삼켜지듯 사라지는 그 존재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븐을 찾아야 한다.
나는 덫이 설치된 실마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