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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의 우주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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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1. 2023

S의 우주 2

2화 D와 N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세론 님은 혹시 알고 계세요?” 

방에 불이 탈칵 켜지자마자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중앙 수송 장치 관리장이라는 메시지가 눈앞에 켜졌다. 이제 이 휴식처에 오는 일도 없게 되는 걸까. 어제 영상에서 보았던, 행성이 아스라이 사라지는 광경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행성 안의 존재들도 그렇게 먼지처럼 사라진 걸까,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내 손을 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관절을 움직여 봤다. 손가락이 관절의 명령에 맞게 살며시 꿈틀댔다. 아직은 살아있는 나 자신의 손이 보인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운명 앞에 마주했다고 생각하니 주먹을 괜스레 꽉 쥐어보았다. 

중앙 수송 장치 관리장에 도착한 후, 키오스크에 나의 일련번호를 기재했다. 키오스크는 내 몸 전체를 스캔하더니, 내 일련번호를 받아 정보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키오스크부터 시작하여 모든 기계는 중앙관리 본부와 연결되어 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오늘 내가 받은 기밀 임무부터 오늘 내 건강 상태까지 전부. 어떤 행성에 가서 내 일련번호를 조회해도 최신 정보가 바로 업데이트되어 나온다. 이렇게 나를 스캔하고 정보를 조회하는 기계 앞에만 가면 수많은 눈이 눈동자를 휙휙 굴리며 내 안 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느낌이 든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관리받는 느낌. 혹은 하나하나 속속들이 파헤쳐지는 느낌. 

키오스크가 도면을 보여주며 내가 타야 할 수송 장치 위치를 알려주었다. 꽤나 복잡하게 생긴 도면이지만, 임무가 바뀔 때마다 알아서 잘 찾아가야 하는 게 이 일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수송 장치는 꽤나 깊은 곳에 숨어있다. 참으로 기밀 작전이라는 것을 잘 일깨워주는 위치이다. 

정거장에는 딱 3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중형 수송 장치가 세워져 있었다. 엄청 알맞게 들어가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수송일을 꽤 오랫동안 해왔던지라 내가 리드하여 조종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팀원들이 오기 전, 수송 장치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하나하나씩 확인했다. 그래도 기밀 임무를 수행하는 팀원들이 타는 것이라 그런지 전기 에너지와 식량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었다. 아니, 너무 지나치게 채워져 있어 당황스러웠다. 이거 뭐 우리가 임무 하다가 저세상 갈 것을 예측하여 넣어 놓은 부조금도 아니고. 수송 임무를 맡으면서 이렇게 많이 채워진 수송 장치는 처음 봤다. 한참 식량과 에너지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치고 있던 찰나,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하, 참나. 이거 뭐 우리 보고 영영 여행만 하다가 뒤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참 넉넉하게도 싸주셨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소속이었다. 분명, 같은 소속끼리 임무를 부여받고 움직이는데, 이건….

“어, 이번 임무가 만만찮겠구나 싶었더니, 이거 정말이잖아. 어디 소속 누구십니까? 소속 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존댓말을 하고 있지만, 퍽 공손하지 않은 말투. 저 소속 직원들의 특징인가. 나는 편견 가득한 마음을 안고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S208입니다. 당신은 어디 소속 누구십니까?”

“어! 예전에 S 소속 직원과 같이 일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이 광경을 보고도 침착한 모습이 참 S 소속답습니다. 저는 D238입니다. 잘 부탁해요.”

의욕 넘치고 당당한 그의 손이 내 손을 부여잡더니 휭휭 소리가 나도록 악수했다. D238은 부여잡던 내 손을 떨쳐버리더니 벌써부터 무언가 해내겠다는 듯 수송 장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장치를 보는 눈의 움직임이나 기계를 만지는 손을 보아하니 나와 비슷한 수송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슷한 일련번호에 꽤나 능숙한 기계 조작 솜씨. 

수송 임무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원활하게 전체 행성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송 임무. 그런 만큼 수송 이력이 있는 직원은 최대한 많은 행성을 돌기 마련이고 일이 당연히 더 많아야 하는데, 이만한 수송 인력을 둘이나 배치한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걸까, 아니면 벌써부터 이만한 인력을 빼도 될 정도로 행성이 사라지는 것일까.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그 행성 소멸 조사팀 맞나요…?”

“저기! 그렇게 막 이야기하면 어떡해! 우리 기밀 조사인 거 잊었어요? 거기 소속이랑 일련번호 어떻게 돼요?”

작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들은 D238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들어온 직원은 큰 소리에 흠칫 당황하며 대답했다.

“저, 저는 N540입니다. 다들 차림새가 저와 다른 걸 보니 다른 소속에서 오신 것으로 보여요. 일련번호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S208입니다. 이번에 같이 일하게 되어서 반가워요.”

“저는 D238이에요. 거, 빨리 문 닫고 회의 시작합시다.”

D238은 N540에게 손을 까딱거리고는 문을 가리켰다. N540은 그 손짓을 보고 기분 나빠하는 표정 하나 없이 재빠르게 달려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누가 들을까 봐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고는 수송 장치 귀퉁이에 섰다. 

“자, 다들 본부로부터 받은 거 이야기나 해봅시다.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요?”

D238이 자연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행성과 그 안 행성 주민들이 사라진다는 사실, 그리고 사라지기 전 전조증상을 전달받았습니다.”

“맞아요. 저도 상부에서 거기까지 전달받았습니다. 그, 행성 대기권에 이상이 생겨 행성 안으로 진입을 못 하게 되거나 대기권에 진입하면 통신이 끊긴다는 것, 다음에는 전기 에너지가 지나치게 손실된다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엔 소멸. 이거란 말이지. 다들 비슷하게 받았군요.”

D238이 N540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흠, 그런데 리스트를 보니 꽤 많은 행성이랑 주민들이 사라졌는데, 이 정도면 본부에서 직접 대대적으로 비상 상황이라 알리고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우리 셋만 이렇게 불러놓고 기밀 사항이라고 급급하게 가리는지…. 그쪽은 알고 있습니까?”

D238은 나를 보며 대답을 구했다.

“아뇨. 저도 잘 모릅니다.”

“이거, 혹시 우주에 큰 음모를 잠재우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무슨 거대한 테러 집단이 있다든지….”

D238이 N540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무슨 소설 봐요? 테러는 무슨. 우리 행성에 있는 모두가 본부의 지시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런 짓 까딱 한 번 해봐요. 완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시간 문제지. 안 그래요?”

D238의 말이 맞았다. 행성 어디를 가나 본부의 메시지가 나에게 전달되고, 그날의 임무가 정해진다. 한 마디로 어디 행성을 가도 본부, 즉 중앙관리 본부 손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손에서 유일하게 벗어나 이런 대담한 일을 벌이는 존재가 있을까. 


왜 하필이면 이 임무를 맡은 직원이 이 셋일까. 행성 전체가 사라지는, 어쩌면 대혼란이 올 수 있는 사건에 고작 세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다니. 서로 간의 공통점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D238과 N540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혹시, 각자 주변에… 연락이 안 되거나 사라진 직원이 있습니까?”

내 질문을 들은 두 존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봤다.

“사라진, 직원이요?”

“아니, 저는 없습니다만. 혹시 있습니까?”

“네. 저와 같이 일을 하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있던 행성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함께 말이죠.”

말이 끝나자 삭막한 정적이 흐르고, N540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진짜 안되셨네요. 마음 많이 아프셨겠어요.”

“아, 전 괜찮습니….”

당연하단 듯 대답하려 했지만,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괜찮은 게 맞는가. 세븐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상황에서, 난 아무렇지 않게 이 임무를 해결할 수 있는가.

“혹시 그 사라졌다는 직원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뭐 행성 사라진 것과 연관되는 정보들 말입니다.”

D238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세븐에 대해 알던 게 뭐가 있었던가. 세븐과 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긴 했는데, 정작 그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고향에서 ‘세븐’이라고 불렸다는 것밖에 없었다. 순간 허탈감이 마음속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세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특이사항이 하나도 없다니. 우리가 그런 존재까지였던가. 그 허탈감이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

“하, 없습니다.”

D238은 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우리 서로 일할 때 뭐 서로 알고 일합니까? 지금 이렇게 기밀 임무를 오랫동안 하라는 이 상황이 더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D238은 팔짱을 끼고 팔을 쓱쓱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때, 조종석 부근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S208, D238, N540, 모두 탑승하셨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 모두 조종석 근처로 모여 대답했다.

“네, 전원 탑승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행성 소멸 사건 조사에 대한 자세한 지시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안내 음성이 끝나자마자 조종석의 큰 화면에서 몇 곳의 행성이 나타났다.

“출발 하기 전 수송 장치에 행성 위치 좌표가 자동으로 입력되고 자동운전 시스템으로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전조증상으로 대기권 통과가 힘든 경우, 수송 장치는 수동운전 시스템으로 전환됩니다. 행성 안에 진입하여 사건에 관한 최대한 많은 조사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D238이 당황한 표정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우리가 그 행성 대기권 이상으로 못 나오면, 그땐 어떡합니까?”

“대기권 이상으로 나오기가 힘든 경우, 그 행성 안의 전기 에너지 사용 권한을 드릴 예정입니다.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여 그 행성에서 나오시길 바랍니다.”

“그럼 그 안의 행성 주민들은 어떻게 되나요?”

N540이 살짝 손을 들고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물어봤다.

“….”

안내 음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D238 질문의 무응답에 이번엔 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행성 주민들을 그냥 두고 나오라는 말입니까?”

“여러분의 임무는 행성 소멸 사건 조사입니다. 임무에 집중하셔서 행성 소멸의 원인을 밝혀내십시오.”

D238은 스크린에 손가락질하고 따지듯 물어봤다.

“그럼, 내가 나왔던 고향이 만약 사라질 위기에 처해도 그냥 나와야 한다는 겁니까? 그 주민들은 아무도 안 구해줍니까?”

또다시 정적.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정적이지만 무엇보다 무거운 메시지가 들리는 듯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임무에만 집중하도록.’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면 우리가 알아내기 전까지는 행성이 사라지는 광경만 질리도록 보겠네. 내 고향 행성 사라지는 것도 보고. 참 재밌겠다. 그렇지?”

D238은 앞의 의자를 발로 팡 치고는 돌아섰다. 나와 N540도 내심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같은 마음이리라. N540의 손이 보였다. 벌벌 떨리는 손이 의자를 꽉 붙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사팀의 책임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행성 소멸 조사팀의 책임자는 S208입니다. S208님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끝까지 임무를 착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자신의 말만 건조하게 내뱉은 안내 음성은 ‘이상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런, 내가 책임자라니. 안내 음성이 나에게 일과 책임감을 모두 던져두고 도망친 것 같았다. 하, 길게 한숨이 나왔다. ‘끝까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완성하라는 소리다. 그리고 내가 책임자라고만 이야기하고 나머지 직원에게는 전달 메시지가 없다. 나머지가 어떻게 되든 임무를 완성하라 이건가. 본부에 대한 아무 감정이 없었던 내 마음이 살짝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몸속 깊은 곳이 이글거려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 분노가 생긴다 한들, 내가 새롭게 무언가를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 임무를 하게 되면 세븐에 대한 흔적이 남겨진 조각 하나라도 찾을 수 있겠지. 목표를 생각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 이글거리는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제가 이 조사에 책임자를 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D238은 돌아서서 나에게 질문을 내던졌다.

“당신은 지금 괜찮습니까? 당신의 그 같이 일하던 직원인가 그 사람도 없어졌다고 하던데, 이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더는 영문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이 없을 테니까요. 당신의 고향도 마찬가지고요.”

D238은 대답을 듣고 나를 째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이 존재들과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세븐의 행방도 찾아볼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찾을 것이다.

임무의 목적을 되새긴 나는 D238과 N540에게 말했다.

“제가 책임자로서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저의 애칭은 ‘세론’입니다. 고향에서 불린 애칭은 아니지만, 사라진 그 친구가 저를 그렇게 부르곤 했습니다. 저는 이 임무의 목표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팀 결속을 위해 애칭 부르기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D238, N540이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다행히 내 제안에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 진도가 좀 많이 빠르네요. 그래도 뭐, 고향 생각도 나는 겸, 당신 말도 맞는 것 같고. 알겠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도플’이라고 불렸습니다.”

“저도 말씀드릴게요! 저는 고향에서 ‘노스’라고 불렸어요. 하하, 책임자님 말대로 왠지 결속력도 생기고 좋은 것 같네요.”

애칭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온몸이 굳은 듯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노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도플, 노스. 그러면 지금부터 수송 장치 가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알맞은 조종석 위치에 앉았다. 그러자 스크린에 첫 번째 행성 위치의 좌표가 뜨기 시작했고, 수송 장치가 엔진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플과 노스가 좌표를 보고 자신의 고향 행성이 아닌 걸 확인했는지,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편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수송 장치는 그렇게 우리를 곧 사라져 가는 행성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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