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S의 우주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ug 31. 2023

S의 우주 5

5화 결정

“말 해봐요. 이렇게 다 사라지는 세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노리는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리의 눈동자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도플은 당황하였는지 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

“너,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 검은 사자가 그러던데, 여기도 그렇고 저기도 그렇고, 이 행성도 그렇고 저 행성도 그렇고.”

곧 노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나와 도플을 손가락으로 각각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언니도, 저 언니도, 그리고 나도. 다 사라진다던데.”

도플의 손이 노리의 멱살을 낚아챘다.

“누가, 누가 그러든. 그 검은 사잔가 뭔가 얼른 나와보라 해!”

도플의 째려보는 눈과 거친 손이 무서울 법한데, 노리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다. 그저 멱살이 잡힌 채로 눈동자를 굴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과 마주쳤다. 모든 걸 떨궈버린 눈이 나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근데 맞잖아요. 우리 다 사라지는 거. 이 행성에 남은 주민이라고는 이제 저 한 명밖에 없지 않아요?”

자신을 놓아 내린 눈을 보고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저번에 사라진 행성의 잔영과 세븐의 마지막 모습이 흐릿하게 내 눈 속에서 춤추고 있었다.

“세론! 정신 차려요! 야! 너도 정신 차려! 누가 사라진다 그래? 내가 너 안 사라지게 할 거야. 세론님, 지금이라도 같이 노스 찾아서 같이 탈출합시다, 네?”

도플의 간절한 눈빛이 멍하게 세븐을 생각하던 내 머리를 다시금 깨웠다. 노스에게 무전을 쳐야겠다는 순간, 노스에게서 무전이 들려왔다.

“여기는 전기 에너지 실! 여기 행성 관리자도, 전기 에너지도 다 사라지고 있어요! 주민들 생존 현황도 찾아보니 아무도 없어요! 빨리 나가야 해요! 지금 당장 수송 장치로 모여주세요! 빨리요!”

노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다급히 울렸다. 행성에 아무도 없다는 걸 관리실에서 확인했나 보다. 진짜 만에 하나 행성 관리 기기가 고장 나서 누군가의 생존이 데이터에 뜨지 않는 건 아닐까? 정말, 정말로 이 행성에 아무도 없는 건가.

온갖 생각이 얽히고설켜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정말 행성도 사라지고, 우리도 다 사라지는 건가? 노리의 말처럼?

“세론! 정신 차리라고! 지금 당장 나가요! 어서!”

도플은 노리를 잡고 남은 팔 한쪽으로 내 어깨를 뒤흔들었다. 그래,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 내가….

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고 문밖을 나섰다.

“너도 이리 와, 인마! 너도 살아야 할 거 아냐?”

“아, 저도 어차피 곧 부서질 건데 왜 가야 해요?”

노리는 도플이 잡아 당기는 대로 몸을 휘청댔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않으며 자신은 여기에 남겠다고 시위했다.

“안돼, 그건 못 할 짓이야. 얼른 와!”

도플이 노리를 끄집어 당기는 바람에 노리가 크게 휘청거렸다. 도플 옆에 있던 나는 얼른 넘어지려는 노리를 붙잡고 도플과 같이 노리를 이끌었다.

행성의 누구라도 살리고 싶다. 어느 누구도 사라질 수 없게 하고 싶다. 나도 사라지고 싶지 않다. 이 문장들만이 처절히, 내 몸 안에 새겨졌다.


몇 분을 달리고 나자 저기 멀리 수송 장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도플은 힘없이 늘어진 노리를 붙잡고 달렸다. 노리는 우리가 이끄는 힘에 어쩔 수 없이 한 발, 한 발 힘없이 내려놓고 있었다. 도플은 수송 장치를 보고 노리에게 소리쳤다.

“곧 있으면 수송 장치에 도착해. 다 같이 탈출하자 노리야.”

노리는 도플의 말을 듣고 순간 발걸음을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수송 장치를 봤다. 노스가 먼저 조종 좌석에 올라앉아 수송 장치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리는 잠깐 멍하니 수송 장치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힘없이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럼, 저 살 수 있는 거예요?”

나는 노리의 말에 확신에 찬 답을 던졌다.

“그럼요, 당연합니다. 최대한 많은 주민과 행성을 살릴 겁니다.”

그러자 노리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그 눈 속에 눈물이 고여 차기 시작했다. 자신이 죽을 날만 기다렸던 세월이 가득 담긴 눈물로 보였다. 검은 사자 말대로 먼지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이 이렇게 살게 될 줄을 몰랐을 테니. 이 눈물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노리에게 전했다.

“여기 그 어떤 누구도 노리씨 그냥 먼지로 죽게 두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까?”

노리는 그 말을 듣자, 가득 눈물을 쏟았다.

“검은 사자가, 저에게 와서 이제 이 세상은 사라질 거라 했는데. 제가 살기 싫은 이유도 이 우주의 주인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라고 했어요. 그래서 꼼짝없이 죽겠다고 했는데. 흑, 흐흑…. 살고 싶어요.”

노리는 터지는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노리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뜻은 잘 모르겠지만, 그간 노리의 마음은 죽음으로 검게 타버렸겠구나. 

도플이 옆에서 노리의 팔을 끌고 재촉했다.

“그러니까 어서 타자고! 이리 와!”

노리도 슬슬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하고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다리에 힘을 가득 실어 언덕에 올랐다. 계단처럼 한 발짝, 두 발짝 열심히 옮기며 살겠다는 마음을 세기는 듯했다. 그런데 노리의 손끝에서 먼지가 날리기 시작했다.

“어…? 내 손이….”

노리의 손은 빠른 속도로 먼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도플은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저 멀리서 노스가 큰 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빨리 타세요! 곧 출발해요!”

노스의 큰 소리가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듯 들렸다. 노리의 손은 이미 사라지고 우리가 잡은 팔 마저 자취를 감춰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플이 노리의 남은 팔을 휙 잡아끌고 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가야 해. 우선 들어가, 제발! 살고 싶잖아!”

우리는 노리의 남은 팔을 잡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노리의 팔이 사라질 때쯤, 수송 장치의 탑승 입구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노리가 발을 쩔뚝거리기 시작했다. 발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젠, 이제는…. 안 돼요. 그냥 두고 가요.”

도플은 바로 노리의 무릎 뒤를 받치고 옆으로 들었다.

“아니야, 갈 수 있어. 너 여기에 못 두고 가. 난 동생 못 두고 가. 안돼.”

도플은 노리를 안고 한 발짝, 한 발짝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도플의 얼굴은 절망과 의지가 뒤섞여있었다. 이를 꽉 깨물면서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동생이야. 데려가야 해.’

“세론! 조종 도와주세요! 어서요!”

노스가 절박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수송 장치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조종석에 앉아 수송 장치 이륙 전 준비를 하는 동안 노스에게 소리쳤다.

“우리 수송 장치에 들 것 있나 확인하고, 저 아이 같이 들것에 실어 데려와 주세요! 빨리요!”

노스는 허둥지둥 수송 장치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륙 준비하는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시라도 준비하고 도플을 도와야 하는데, 제발, 알아서 이륙 준비가 되면 얼마나 좋아.

“들 것 찾았어요! 제가 바로 아이를 데리러…!”

노스는 창고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들것을 뽑아 들고 입구로 향했다. 그러다 바삐 움직이는 노스의 소리가 멈췄다.

“왜?! 무슨 일이야?”

드디어 이륙 준비를 마친 나도 합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재빨리 입구로 갔다. 그런데 입구 앞에는 도플이 멍하니 노리의 남은 얼굴 아니, 남은 눈 부위를 보고 있었다. 나머지 모든 게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노리의 눈은 살짝 웃는 듯하면서 눈물로 반짝이고 있었다. 노리는 그 자취를 감춘 채, 먼지가 된 자신의 눈물과 함께 사라졌다. 도플은 노리를 안고 있던 자세에서 멍하니 노리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도플의 손에 먼지 하나 남지 않았다. 그대로 노리는 날아갔다. 저 멀리.

땅이 한 번 크게 뒤흔들렸다. 그리고 이 행성은 더는 노을빛이 아닌 검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행성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노스와 나는 도플은 끌어당겨 조종석에 앉혔다. 조종 준비를 모두 마친 나는 단단하고 큰 목소리로 그들에게 명령했다.

“지금부터 대기권에 빠져나갈 거야! 모두 이륙에 집중해!”

말을 끝냄과 동시에 조종키를 조작했고, 곧바로 수송 장치는 이륙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나가야 행성을 잠식하는 어둠에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가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중하며 수송 장치를 조종했다. 대기권 부근이 먼지로 가득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찾기 힘들었다. 

“도플! 먼지가 너무 많아! 먼지 제치고 우리가 나갈 경로를 탐색해줘!”

도플에게 소리쳤지만 도플은 그저 가만히 기어만 잡고 있었다. 먼지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이 눈을 굴리고 있었다.

“도플! 정신 차려! 얼른!”

옆에 있는 도플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누군가를 찾아 헤매듯 눈을 굴리던 도플의 눈동자가 한 곳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나갈 수 있는 경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경로 탐색했습니다. 지금부터 빠른 속도로 나갈게요!”

도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송 장치가 기우뚱하다 빠른 속도로 위를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조종에 집중했다.


점점 앞을 가로막던 먼지가 걷히고 점점 검은 우주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기 에너지를 더 써서라도 행성의 궤도권에서 벗어나고자 갖은 애를 썼다.

마침내, 노스가 화면을 보고 말했다.

“행성 궤도권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 주변을 맴돌던 긴장의 끈이 탁,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자동 조종 모드로 설정하자마자 탄식을 내뱉으며 경직된 자세를 풀었다. 화면에 보이는 우리 뒤의 모습을 확인했다. 주황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신비로운 행성은 온데간데없고 검은색의 운석 모양의 행성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플은 그 행성의 모습을 보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못 구했군요. 아무도요.”

도플의 평소 목소리와 비교도 안 될 조용한 말이 우리 주변의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스산했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 그냥 행성 망해가는 것만 잔뜩 구경하고 끝나겠네. 그렇죠?”

도플은 가느다랗게 헛웃음을 치고는 본부에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겹도록 많은 수신음만 들릴 뿐, 그 어떤 답변도 없었다. 도플은 키패드를 손으로 쾅! 내려치고 한 마디 내뱉었다.

“이렇게 가면, 제 동생도, 주위 사람도, 결국 우리도 다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도플은 잔뜩 눈물범벅이 된 일그러진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아니라고 말해줘요! 노리가 말했던 검은 사자인지 뭔지도! 이 행성들이 다 사라질 거라는 것도 다 아니라고! 내 동생이든 누구든 이제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요! 책임자님! 얘기해주세요!”

도플은 연신 내 어깨를 흔들며 소리치다 고개를 묻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어깨에 꾹 힘을 주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손에 꾹 힘이 들어갔는데 이다지도 위태롭고 아파 보인다. 나는 힘을 잔뜩 준 위태로운 손을 내 손으로 덮었다. 아까 있는 힘으로 노리를 들어 힘들어하던 도플의 손이 유난히 차갑다.

도플은 꺽꺽 울다 한숨 크게 들이키고 쉬었다.

“…, 저에게 동생이 있어요. 아파서 다른 먼 행성으로 간 동생. 걔가 계속 생각나요. 세론님도 그 사람이 명단에 있을 때 이런 느낌이었나요?”

나는 도플의 차갑고 거친 손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네, 맞아요.같은 마음이에요.”

끊임없이 쓰다듬으며 나의 손으로 다른 이의 손을 위로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느껴지길 바라면서. 그게 도플에게 조금이나마 적절한 답, 위로되길 바랐다.

묵직하게 가라앉던 공기 사이로 노스의 말이 파고들어 왔다.

“그럼 어차피 관리자랑 통신도 안 되니까 도플님 동생 행성 한번 정찰 갔다 오죠.”

도플은 노스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래도 됩니까?”

뒤이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스도 마찬가지.

나는 그 둘의 간절하고 힘 있는 눈에 보답했다.

“네. 그쪽으로 갑시다.”

이전 04화 S의 우주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