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재회
다래라고 불리는 직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삭 삭은 풀의 모습이었다. 오른쪽 발 없이 목발로 절뚝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목발을 짚고 한발 한발 떼는 몸의 움직임에 힘이 없었다. 팔랑거리는 종이가 바람에 못 이겨 밀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 세븐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븐의 뒷모습은 어딘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파도의 쓸쓸한 뒷모습이었다. 마지막 여생을 맞이하러 가는 뒷모습은 모두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파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 이렇게 행성에서 남은 힘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버텨내고 있구나. 세븐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동시에 허한 감정이 가득 담겨 몰려들었다.
도플은 다래를 안고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었지? 응, 그렇지. 니 몸은 왜 이렇게 상했어? 나야 이제 마지막 여생 보내고 있으니 그러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상해서는... 언니는 무슨 일이야?
잠시 둘이 주고받는 말속에도 그들이 같이 보낸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바라보는 눈이나 쓰다듬는 손, 맞닿는 몸에서 다 느낄 수 있었다. 왜 그토록 도플이 절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참 소중한 존재였구나. 도플에게 다래는.
"안녕하세요, 행성 조사차 나왔습니다. 저는 S208, 저분은 N504입니다."
다래는 도플에게서 우리로 눈길을 돌려 우리의 소개에 화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D8233입니다. 어쩐 일로 행성 조사를 하시게 된 건지..."
"아아, 그건 그냥 행성 안전 점검하고 그러는 거야. 이번에 받은 임무가 그래."
도플이 다래의 시선을 끌고 변명했다. 다래에게 행성과 존재들이 사라진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줄 수 있겠다. 저 여기서 에너지 계산하는 거 보조로 일하고 있거든요. 여기가 왕래가 잘 없다 뿐이지, 그래도 어느 정도 공동체도 구성되어 있어서 누군가는 꼭 체크해줘야 하거든요.”
다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몸이 성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름에 맞는 싱그러움이 들어있었다. 도플은 우리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부드럽고 약한 미소로 다래의 말에 화답했다.
“여기서도 꼭 무언가를 하고 있네. 역시 다래, 너답다. 우리가 점검하고 다 할 테니까 쉬고 있어.”
“아니, 내가 알려줘야 조사를 하든가 하지. 나도 여기서 아직 직원이라고. 어서 관리실 쪽으로 갑시다.”
다래는 힘내서 목발을 짚고 방향을 틀었다. 도플은 깨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다래 옆에 종종 붙어 섰다. 우리도 그 둘을 뒤따라갔다.
도플은 다래의 팔을 조심스레 잡으며 말을 걸고 있었다.
“이 손은 어떻게 된 거야?”
다래는 팔을 보고는 조그마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우리를 잠시 둘러보더니 붕대 감은 팔을 보여주었다. 이거 보세요. 이게 그 마이너스의 손이에요. 하핫. 손 없이 팔을 감은 붕대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게 그렇게 일할 때 그렇게 에너지와 물질을 다 망가뜨렸는데,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 자멸해 버렸어요. 먼지가 되어버린 채로.
도플은 다래의 말에서 ‘먼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다래의 팔을 자기 얼굴 앞에 끌어당겨 살펴보았다. 먼지로 사라졌다고? 우리도 도플과 같이 그의 팔을 살펴보았다. 다래는 당황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언니 기억 안 나요? 제가 맨날 만지는 물질과 에너지에 다 먼지 묻어 있었고 양도 모자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더니 이제는 손이 먼지가 되어 날아가더라고요. 진짜 이 행성에 오니 별 병에 다 걸리네 싶었는데, 이 행성 건강센터에서 체크해 봤을 때는 이상 없다고 해서 그냥 이렇게 칭칭 감고 살아요. 물론 이런 행성에서의 건강센터는 믿을만한 게 아니긴 하지만요.”
나와 도플, 노스의 눈길이 서로 교차하었다. 도플은 급하게 다래의 이곳저곳을 더듬고 쓰다듬으며 물어봤다.
“언제부터 그랬어? 다른 곳은? 어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아, 아니 여기 왔을 때부터 그랬는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우리는 누구도 다래의 당황스러운 반응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석연찮은 아니오, 밖에 줄 수 없었다. 우리를 보는 다래의 눈길이 달라졌다. 우리도 다래를 보는 눈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왜 다래라는 직원은 노리처럼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은 걸까? 그리고 일했을 시절에 먼지 묻어 있고 양이 모자라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다녔던 행성에서 나타났던 현상이 예전에도 있었다는 것인가. 다래로부터 뻗어 나온 말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주친 노스의 눈을 보아하니 노스 또한 나와 같이 혼란스러운 듯했다. 혹시 우리가 찾는 행성 소멸의 원인이 다래와 가까운 것인가.
나는 노스와의 눈길을 거두고 관리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플을 불렀다.
“도플. 잠시 이야기 좀 나눌 게 있습니다. 노스는 다래님과 행성 에너지나 물질 파악해 주십시오.”
노스는 내 말에 대답하고서는 다래에게 자연스럽게 붙었다. 나를 바라보는 도플의 눈이 심상치 않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눈을 보니 내가 자기를 부르는 이유를 대략 눈치챈 듯했다.
관리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도플이 내 어깨를 잡고 벽 쪽으로 밀었다. 갑자기 세게 다가오는 힘이 어깨에 통증을 주었지만, 그리 놀랍진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래는 아무 잘못 없어. 정말이야. 내가 장담할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
도플은 흔들리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시선을 꽂았다. 그 눈에 넘어가지 말자. 도플의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플.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증상이 저 다래님에게 보였어요. 그것도 예전부터요. 다래님을 탓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다래님도 지금 위험에 처한 걸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중앙관리 본부에 다래님을 인도해야 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도플이 내 멱살을 붙잡고 한 번 더 나를 벽에 밀쳤다. 뒤이어 도플이 말을 쏟아냈다. 이성에서 나오지 않는, 감정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들렸다.
“그럼 어떻게 되는지 세론, 당신이 알 수 있어? 쟤는 한 번 임무 종료로 퇴출당했던 애야. 일을 아무리 잘하고 있었어도 내쫓긴 애라고. 그런 애를 어디에다 또 보낸다는 거야. 저 애를 중앙관리 본부에 보내면 어떻게 될지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나?”
그의 어깨를 꾹 눌러 잡고 진정시켰다. 아닙니다. 오히려 중앙관리 본부에 보내서 제대로 검사받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행성 소멸 현상과 유사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저기 앞에 있습니다. 제대로 조사하고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만들어 내야 해요.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할 일입니다. 알겠습니까?
말로 도플의 감정을 짓눌렀다. 다래를 중앙관리 본부에 보내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선 그냥 두진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는 행성을, 이 우주 전체를 살려야 했다. 지금도 수많은 행성이, 공동체가 한순간에 먼지로 생을 마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재난을 이겨낼 열쇠가 코앞에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
도플은 잠시 떨리는 눈을 하고 고개를 떨구더니, 이내 나를 붙잡는 손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뒤 돌아서서 걸어갔다.
“저는 그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그리 아십시오.”
도플은 그대로 노스와 다래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점차 도플이 멀어지자,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임무를 맡으면서 겪은 일 하나하나가 나에게 죄책감으로, 허망함으로, 자책과 한숨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누구의 희생도 없이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가짐. 소멸 리스트에서 세븐을 보고 다잡았던 단단한 마음가짐이 슬슬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서서히 부식시키고 있다. 두려웠다. 우리가 이대로 실패해서 모두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지금 그 마음은 내 두려움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내 귀를 사로잡는 비명이 울렸다. 퍼뜩 정신을 깨우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관리실 쪽에서 난 소리가 분명했다. 문을 열어 관리실 안을 확인했다. 노스가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목발이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이런, 씨. 도플과 다래가 사라졌다. 그들을 얼른 쫒아가야 했다. 걸음이 불편한 다래를 데리고 다니려면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구석구석을 뒤져 탈출했을 법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들어온 문을 제외한 탈출구는 찾을 수 없었다. 벽을 이리저리 짚었다. 그런데도 어떤 벽 하나 반응하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있는 물건을 모조리 다 치웠다. 의자고 탁상이고, 보이는 대로 집어 던지고 벽을 살폈다. 꽤 큰 캐비닛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캐비닛이 벽에 붙어있지 않고 꽤 큰 틈을 이룬 채 서 있었다. 그곳의 벽을 만지니 무언가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다. 뒷문을 세차게 열었다. 어두운 복도가 보였다. 그곳으로 달렸다. 나가는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나로 이어진 길을 따라 뛰었다. 그런데 곧바로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조명 하나 없어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 갈래 길이 답답한 막다른 길처럼 보였다. 어디로 간 걸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그들은 점점 관리실을 빠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어디를 가야 맞는 거지. 지도라도 가지고 나올걸. 머리 주변에 대책과 후회로 가득한 말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덕분에 망했네요. 여기도 없앨 수 있었는데.”
그때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는데.
소리가 공간 전체로 울려 퍼져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캄캄한 어둠 속. 어디서 들리는지 모르는 목소리가 나를 휘감았다.
“천천히 듣고 이리로 와요. 천천히.”
맨 왼쪽에서 똑똑,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들린 벽을 짚고 천천히 이동했다.
똑똑. 그 소리는 적극적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소리라는 밧줄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대로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수없이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철문 앞이었다. 문고리를 돌렸다. 열리지 않았다. 덜컹덜컹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밖에서 무언가로 막아 놓은 것 같았다.
“선배, 거기 안 열려요. 내가 조금 있다 출구 알려 줄게.”
익숙한 목소리와 호칭이 들렸다.
“저에요. 세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