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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의 우주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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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1. 2023

S의 우주 8

8화 우리는 사라질 거에요.

"저에요, 세븐."

순간 내가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그 곳에는 검은 천을 둘러싸고 있는 형체가 서 있었다. 깜깜한 공간에 검은 형체가 서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목소리만은 분명했다. 세븐의 목소리었다. 믿을 수 없었다. 세븐은 분명 소멸 리스트에 들어가 있어 죽은 줄로만 알았다. 

어둠 속에서도 나의 당황스러움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보였는지 세븐이 내 궁금증에 대답해주었다.

"제가 탄 수송장치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제가 죽은 걸로 기록되어있을 겁니다. 그때 저는 겨우 비상 수송 장치를 타고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진짜 기적적으로 살아난거에요."

세븐이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기쁘고 반가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세븐의 저 대사가 세븐의 평소 말투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세븐의 모습과 예전 세븐의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저 검은 형체가 정말 세븐이 맞는걸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세븐을 보고도 뭔가 믿기지 않았다. 경계태세를 풀 수 없었다.

"정말 세븐 맞아? 그럼 여기에 왜 있는거지?"

세븐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나인걸 믿지 못하시다니 조금 슬프네요. 곧이어 세븐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천을 머리 뒤로 넘겼다. 내가 세븐의 얼굴을 잘 못알아보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세븐의 몸에 큰 검은 반점들이 뒤덥혀져있었다. 마치 큰 먹물 방울이 한지를 먹어치우듯 번지는 모습이었다. 어둠에 잠식될 것만 같은 세븐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세븐. 정말 괜찮은걸까. 세븐의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보고자 손을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세븐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지 뒤로 두세발짝 발을 옮겼다. 선배에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진 않았는데.

세븐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세븐, 그나저나 너가 왜 이 먼 행성에 있는거야?"

"저야, 선배님이 보고싶어서 왔죠."

거짓말.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선배, 너무 의심가득한 눈으로 보시는 거 아니예요? 조금 서운하네요."

능청스럽게 답변을 피하는 세븐의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저건 내가 알던 세븐의 모습이 아니었다. 만약 세븐이었다면 조금 수줍어해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밝히는데, 내 앞에 있는 세븐은 자신을 어둠으로 가려놓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세븐을 사칭한 다른 존재라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그대로 세븐앞으로 제빠르게 달려가 팔을 들췄다. 세븐이 그 팔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잡혔다. 내가 알고있는 세븐의 흔적은 팔 안쪽에 있다. 어렸을 때 화상입어 크게 흉터가 남은 부분. 팔을 들어올려 확인했다. 흉터가 존재했다. 결국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세븐이 확실했다. 세븐인걸 확인하여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세븐,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나 때문에 망했다는 건 또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 다래라는 사람이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제 계획이 틀어졌어요."

세븐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거지?

"그건 아직 선배가 모르셔도 되는 거에요. 어쩌피 천천히 선배에게도 다가갈거니까요."

세븐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가지 않았다. 계획, 나에게 다가올 거라는 것.

"세븐, 똑바로 말해. 지금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거야? 너도 중앙관리 본부에서 임무를 받은거야?"

세븐은 내 말을 듣자 표정이 금세 굳어지더니 낮은 음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망할놈의 중앙관리 본부. 믿지 마세요. 중앙관리 본부도 곧 망하게 될 거에요. 우리는 이제 갈 곳이 없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중앙관리 본부의 말을 믿지 말라니. 세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물음표만 가득 쌓여갔다. 어떤걸 물어봐야 할지 몰라 머릿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세븐이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선배, 우리는 왜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갑작스러운 세븐의 질문에 고개를 들고 세븐의 얼굴을 살펴봤다. 세븐의 질문이 들림과 동시에 보이는 건 세븐의 허탈한 미소. 나는 어안이 벙벙한채로 그냥...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세븐은 나의 대답같지도 않은 대답을 들은 후, 한숨을 가볍게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배. 우리가 사는 삶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적 단 한번도 없어요? 왜 우리는 주어진 임무로만 하루를 다 채우고 그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수송만 하는, 그런 톱니바퀴같은 삶을 살고있는지 말이에요."

세븐의 질문에 갑작스럽게 사고가 멈췄다. 우리는 그저 태어나서 수송 훈련을 받고 이리저리 물질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끊임없이 일을 하다가 일을 할 능력이 안되면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단순하고 편파일륜적인 삶에 아무도 질문을 가지지 않았다. 근데 같이 일했을 당시에 세븐은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해 나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선배, 우리는 왜 태어난 걸까요?'

세븐은 무언가를 알고있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어 세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따로 생각해본적이 없어. 우리는 항상 그런 삶을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이 삶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런데 너의 생각은 다른거야?"

세븐은 내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저희가 그냥 한낱 부품같은 존재라면요? 저희가 생각보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은 존재라면, 선배는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초라하고 작은 존재? 그게 도대체 무슨말인지 생각하던 중, 세븐은 말을 계속 말을 이었다.

"선배. 이 세계는 곧 없어질 거에요."

"뭐?"

"없어질 거라고요. 도서관에서 봤어요. 우리도, 행성도, 모두 다 사라질거래요."

세븐이 어떻게 세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아는거지? 이 임무는 극비리에 진행되는 사항이라 다른 존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세븐은 마치 아는 듯이 말했다. 세븐은 도대체 지금 어떤 상태인걸까.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도서관은 또 뭐야?"

"선배들 그거 조사하러 다니는 거 아니에요? 행성과 공동체, 주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먼지처럼 사라지는 현상 말이에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븐은 우리의 임무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유출된거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세븐의 귀에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터다. 오늘 갑자기 검은 존재가 되어버린 세븐이 나타나 우리의 임무와 우주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다 이야기 하고 있다. 잠깐, 검은 존재.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모든 예감이 세븐에게 질문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입을 때고 천천히, 또박또박 물어봤다.

"네가 혹시 검은사자니?"

세븐은 나의 질문에 만족한다는 듯이 싱긋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 세븐, 네가 주민들에게 이 세계가 다 사라질거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거야?

세븐은 정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븐의 대답을 들은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분개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까지 세븐, 너 때문에 이 행성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는 거야?"

그 질문에 세븐이 답해주었다.

"아니, 꼭 내가 다 그렇게 만든 건 아닙니다. 그렇게 만드려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걸요. 저는 그저 만나는 주민들에게 사실을 전했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듣고 절망하기 시작하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긴 하지만요."

세븐의 대답을 들은 내 몸은 분노로 휩싸여 세븐을 덥치듯 달려갔다. 하지만 세븐은 내 공격을 피했다.

"너, 도대체 행성에 무슨 짓을 하러 다니는거야. 다래에게도 이 행성이 사라질거라는거 전할꺼야?"

"당연하죠. 그 친구는 애가 쓸데 없이 밝고 활기차서 작업하긴 좀 어렵긴 한데. 그러니까 선배님이 잘 잡고 계셨어야죠. 선배가 지금 그걸 못해서 망했다니까요?"

이런 생각은 절대로 세븐에게서 나올 수 없는 생각이었다. 세상에 관심이 많고, 다른 직원과  동료에게 잘하던 그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직원과 주민, 행성을 블랙홀과 같은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인가. 

"너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세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지막히 답했다.

"그냥, 다 사라지게 만들고 싶어요. 이런 존재로서 살고싶지 않아요."

"이런 존재라니, 그리고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세븐에게 질문을 마구 던졌다. 하지만, 세븐은 내 물음에 대답은 커녕, 자신의 말만 이어갔다.

"이제 슬슬 밖에서 다래님을 찾아봐야 하겠네요. 여기서 왼쪽으로 3블록 가면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어요. 저도 이제 저의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세븐은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세븐을 따라갔다.

"거기 서!"


세븐은 이 곳의 지리를 다 알고있는 것처럼 오른쪽 통로로, 왼쪽 통로로 수십번 왔다갔다 했다. 온통 검은 주위에 검은 복면을 뒤집어 쓴 세븐을 찾는 건 역부족이었다. 결국 얼마 따라가지도 못한 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왼쪽 벽을 집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데. 이 기나긴 통로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점점 발걸음이 더뎌진다. 여긴 도대체 어디인가.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세론...! 거기 있어요?"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스다.

"노스! 저 여기 있습니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네! 들려요!"

노스와 나는 서로의 목소리를 찾아 벽을 더듬거렸다. 이윽고 검은 어둠 속에서 노스의 형체가 살짝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둠이 익숙해졌는지 공간과 노스의 경계가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노스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얼마 멀리 달리지 않았는데도 숨이 찼다. 여기서 꺼내줘, 어서.

"세론님, 무슨 일 있었어요? 얼른 여기서 나가요."

다행히 노스는 출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온 듯 했다. 슬그머니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바깥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풍경인데. 밖으로 나가보니 그곳은 노스가 쓰러져 있었던 에너지 실이었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기 도대체 구조가 왜 이런거야.

밖으로 나오자 노스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다행히 노스에게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이상은 나에게 있었나보다. 노스가 내 얼굴 더듬어 만지면서 이야기했다.

"아이고, 아주 얼굴이 새파래지셨어요. 무슨 일 있었던 거에요? 도플 그 자식이 그랬어요? 내 머리도 후리고 가더니. 아직도 머리가 뎅 울리는 것 같아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노스의 손을 가볍게 내리고 대충 대답했다. 그들을 찾아야 했다. 행성 관리실에 생체 추적기. 그것으로 그들이 어디있는지 알아내야했다. 관리실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봤다.

없었다. 행성에 아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아, 그거 저도 좀 전에 확인해봤는데 추적기 자체가 고장난 것 같더라고요."

"그럼 아무 확인도 못하는 겁니까?"

"아뇨, 저거 잠깐 프로그램에 이상 생긴거라서 잠깐 손보면 작동될 수도 있어요."

노스는 대답과 동시에 생체 추적기 앞에 앉아 이리저리 두들기기 시작했다. 노스도 수송 담당자 아니었나? 이렇게 기계를 다루는 건 큰 행성의 관리자도 할수 있을까 말까 하는 기술인걸로 알고있다.

"노스, 프로그램 이상 생기고 그런건 어떻게 알았어요?"

노스는 나를 쳐다보더니, 태평하게 대답했다.

"아, 제가 원래는 수송 담당이 아니라 중앙관리 본부 기계 관리 담당이었는데, 데이터를 도서관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했어요."

"도서관요?"

"아, 세론님은 모르실수도 있겠다. 그, 이게 좀처럼 잘 안 알려진 기관인데 데이터 저장관을 저희는 '도서관' 혹은 '기록실'이렇게 부르거든요. 그래서 암호화된 데이터 관리하고 그랬어요. 직접 도서관 가서 일하는건 아니고, 이곳 저곳 좀 큰 행성으로 가서 데이터 분리작업도 했었어요. 그래서 뭐 건너 배우고 그랬는데...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세븐에게 들었던 도서관일 것이다. 노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 도서관이라는 곳. 어떤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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