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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의 우주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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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1. 2023

S의 우주 9

9화 추적

“그 도서관이라는 곳, 어떤 곳이에요?”


노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저도 거기는 한 번도 가보진 못해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정말 할 말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번뜩 생각이 났는지 아! 라고, 짧게 탄성을 내뱉고 말했다.

"거기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으로 알아요. 심지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사무처리는 도서관 안 기계들이 관리한다고 들었어요. 꽤 중요한 데이터들이 들어있어서 그런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존재들이 대부분이에요. 봤다고 한 직원들도 본 적 없고요. 세론님은 뭐 알고 계신 거 없죠?"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세븐은 도대체 도서관에서 무엇을 봤길래 우리가 사라질 거라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걸까. 대체 도서관은 어떤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길래.

세븐과의 대화를 떠올리다 세븐의 질문이 덜컥 마음에 걸려들었다. 

'우리가 만약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존재라면 어떠실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떻게 세븐의 물음에 답해줘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보는 게 나을까.

"노스, 만약에요. 우리가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아요?"

키보드를 이리저리 조작하던 노스의 손이 잠깐 멈췄다. 노스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걸까. 노스는 다리를 꼬고는 한참동안 먼곳을 보기만 했다. 고민하는 노스에게 부연 설명을 더 해줬다. 만약에, 우리가 그저 어느 부품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면 어떨 것 같나요?

노스는 가만히 멈춰서 고민하더니, 이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의하면, 우리는 거의 쓰임 당하는 존재라는 건데. 그런건가요?"

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스의 말이 꽤 아프게 들렸다. 우리는 정말 쓰이고 마는 존재인 걸까? 세븐은 그것을 알고 도망친 걸까.

그때, 노스의 말이 들려왔다.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 일을 해내는 거 아니에요? 다 같이 잘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단순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행성 주민들도 만나고, 마음 맞는 동료도 만나고 그러지 않아요?"

노스가 나를 쳐다보고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가 하는 일이 꽤 반복적이기도 하고 우리의 상부라고 하는 중앙관리 본부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임무를 부여하나 짜증 날 때도 있는데요, 그래도 제 일로서 한 행성 하나하나가 하루를 산다는걸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은 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부품이고 초라한 존재라고 정의하는 건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그 말은 그저 내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초라하다 해도 결국 초라한 나와 다른 존재들이 결국에는 모여서 이 우주가 돌아가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노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 엉킨 물음 속 실마리를 던져주는 듯했다. 나 자신이 초라한 존재라고 정의하는 것이 진정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하나의 초라한 부품일지 몰라도 그런 존재들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은 우주를 만든다. 세븐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초라한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는 결국 작은 먼지 같은 존재가 되는가에 대한 공포...



세븐을 빨리 찾아가야 했다. 세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그런데 세븐을 어디서 찾지? 급박한 상황에 맞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세븐이 아직 이 행성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어, 생체 추적기 가동되었어요. 도플과 다래님 있는 곳 찾았어요. 그런데, 우리랑 도플, 다래님말고도 한 주민이 또 있네요?"

노스의 말에 세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래를 못 찾아서 망했다고. 세븐은 분명 다래를 찾아갈 것이다. 안돼, 둘이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

"저, 빨리 도플과 다래님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어서 출발해요."

나와 노스는 도플과 다래의 위치를 확인하고 곧장 뛰어갔다.



"다래야, 괜찮아?"

도플은 업고 있던 다래를 조심스레 의자에 앉혔다. 다래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때문에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아니, 언니 왜 갑자기 언니 동료 머리를 치고 도망친 거야?

도플은 다래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대답했다. 네가 지금 의심받고 있어. 어떤 건지는 나중에 내가 차차 얘기해줄게. 분명 다래 너를 잡아가서 중앙관리 본부에 넘길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돼.

도플은 거의 자신에게 주문을 읊듯이 말을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서 내가 의심받고 있는 게 뭔데? 내가 알아야 무슨 오해라도 풀지."

다래는 재차 도플에게 답을 재촉했지만, 도플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바닥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플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다짐했다. 다래를 어떻게든 이 행성에 빠져나가게 하겠다고. 다래만은 잃을 수 없다고.

도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혹시 몰라 창고로 무작정 들어왔다. 뭐라도 있을 것 같아 들어왔더니 아무것도 없이 휑한 빈자리만 남기고 있었다. 도플은 문밖을 살짝 열어 주위를 살펴봤다. 도플의 마음속에 일렁이는 불안감이 주위를 경계하라고 지시했다. 누군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바깥은 조용했다. 어차피 이 행성에 거의 우리만 남은 것 같으니, 동료들만 잘 피해 다니면 되리라 생각했다. 

”다래야. 내가 밖에 나가서 뭐 좀 도움 될만한 걸 구해올게. 여기서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해. 알겠지?“

도플은 다래에게 말을 던지고 바로 뒤 돌아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다래의 손이 도플의 소매를 붙잡았다.

"뭔가 불안해, 언니. 가지 말아줘. 나 지금 괜찮아. 그러니까 좀 이따가 가면 안 돼?"

다래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도플은 다래의 손을 자기 손으로 감싸주었다. 참으로 차가운 손이다. 도플은 다래의 손을 감싸고 다래와 같이 마주 앉았다.

"응, 그러면 조금만이라도 있을게. 그래도 밖에 상황 살피고 해야 하니까 곧 갈 수밖에 없어. 얼른 갔다 올게. 기다려 줄 수 있어?"

도플의말에 다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뭐든 잘하는 언니니까 어떤 결정을 하든 믿고 따라갔다. 다래는 도플과 일하는 동안 도플의 일 처리 능력을 항상 관심있게 보고 열심히 따라했다. 다래에게 도플은 그저 직장 선배가 아니었다. 자신이 구덩이로 떨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떠안을 리스크까지 감수하며 이끌어줬던 이다. 그래서 다래는 언제나 도플을 믿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했다. 다래는 도플도 자신에게 그런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 지금 이 몰골로 될 리가 있겠지만 말이다.

도플은 슬슬 움직일 준비를 했다. 동료들을 따돌리고 행성 내 비상 수송 장치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챙길 수 있는 에너지와 물자로 탈출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지금까지 같이 일한 세론과 노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자신에게 큰 의미인 다래를 그저 그들의 손에 쥐어 줄 수 없었다. 도플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다래에게 인사했다.

"다래야, 갔다 올게."

"갔다 와요, 언니."

다래는 재빠르게 문고리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일순간 조용해진 공기가 달래를 덮쳤다. 아까 전만 해도 도플의 온기가 남아있었는데, 도플이 떠나고 난 뒤 다시 차가워진 주위가 다래를 에워쌌다. 잠깐 이유 모를 공포가 마음속에 올라왔지만, 다래는 다시 돌아올 순간을 생각하면서 꾹 버텼다.

"안녕하세요, 다래씨."

그런데, 저 구석에서 어떤 희미한 목소리가 다래를 불렀다. 다래는 그 목소리를 듣고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깜깜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 검은 곳에서 소리가 다래의 귓속에 다가와 귀 안을 파고들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실까요?"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막연한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연기처럼 퍼졌다. 그 두려움 때문에 다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말을 한다면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

창고 구석진 곳에서부터 발걸음이 타박타박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다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래는 한 손과 발로 천천히 눈치채지 못하도록 몸을 뒤로 물렀다. 정체 모를 무언가는 점점 빛을 받아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복면을 쓰고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는 다래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게 답답했는지 단호한 말투로 다래를 지적했다.

"그 손, 먼지가 되어 사라졌잖아요. 그 이유 궁금하지 않아요?"

다래의 눈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눈 주위로 까만 물이 든 그 존재는 눈을 살짝 접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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