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뱀
숨차게 뛰었다. 세븐으로 추정되는 점이 다래와 도플에게 꽤 가까이 위치했었다. 세븐이 다래에게 뭘 할지 모르지만 분명 사라지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위치를 파악하고 갔지만, 외진 곳에 있어 길을 찾기 힘들었다. 좁은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지난 다음 새 건물을 지나치고 왼쪽으로 돌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저 멀리 도플과 눈이 마주쳤다.
"도플!"
도플은 우리를 보자마자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들이박았다. 재빠른 속도에 당황한 우리는 그대로 도미노처럼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플에게 깔린 채 정신을 못 차리던 나는 곧 내 목에 들어오는 차갑고 날카로운 촉감에 스산함을 느꼈다. 온몸이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경직되었다.
"여기서 아무도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바로 찌를 거야."
도플의 단호한 말과 떨리는 칼날이 느껴졌다. 나에게 깔린 노스도 불안하게 떨리는 도플의 손과 나이프를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노스가 떨리는 말로 도플에게 말했다.
"쟤가 어떤 애인 줄 알아? 훈련생 때부터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애야. 자신도 모르는 그 지랄맞은 먼지 때문에 일도 못 하고 그대로 버려질 뻔했다고. 그래도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내 옆에서 아등바등하던 애야. 그런 애한텐 잘못없어..."
도플의 눈마저 흔들렸다. 그의 눈에는 다래에 대한 수많은 기억이 만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내가 근무 중간중간 몰래 비상 수송 장치 타고 가면서 지켜봤던 애야. 애한테는 잘못 없어. 그러니까 제발... 놔줘. 설사 걔가 원인이라 해도 내가 어떻게든, 뭐든 할게..."
도플은 나를 겨누던 칼에 힘을 빼 거두고 고개를 떨궜다. 어느새 그는 땅을 짚고 울고 있었다. 그의 애절한 눈물이 내 옷 위에 방울 방울 떨어져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치며 말했다.
"도플. 안 그럴 거예요. 중앙관리 본부에도 넘기지 않을 거고 최선을 다해서 다래씨 도울 거예요. 그러니 우리에 대한 의심을 넣어주세요."
나는 가볍게 그의 목을 끌어당겨 어깨에 그의 얼굴을 얹었다. 불안과 애정으로 가득한 눈물이 어깨를 따뜻하게 적셨다.
"그보다도 지금 빨리 다래씨에게 가야 해요. 여기 행성에 우리 이외의 누군가 있다는게 확인되었는데, 다래씨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어요."
뒤에 있던 노스의 말을 듣고 움찔했다. 맞다. 세븐.
나에게 기대고 있던 도플을 흔들었다.
"도플. 정신 차려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다래씨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도플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도플의 눈을 보니 아직 슬픈 감정에서 나오지 못한 듯하다. 나는 도플의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도플, 얼른 다래씨가 있는 곳으로 알려주세요. 그래야 다래씨를 지킬 수 있어요. 얼른요!"
도플은 조용히 따라오시라는 말을 뱉은 후 빠르게 발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와 노스도 곧장 뒤를 따라갔다.
다래는 앞에 있는 검은 형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떤 질문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몸이 천 사이로 보였는데 검은 먹물같은 색의 얼룩이 피부 곳곳에 퍼져있었다. 그 얼룩과 정체 모를 존재. 다래는 그 존재에 압도당하여 질문이 생각나도 입조차 열지 못할 것이다.
다래가 멍하니 입을 못여는 동안 세븐은 어느새 다래 앞에 다가와 다래의 붕대 감은 팔에 자신의 손끝을 대고 있었다.
"다래씨. 여기 많이 아팠겠어요. 그렇죠?"
다래는 그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붕대 감은 팔을 거뒀다.
"그쪽은 도대체 누구신데요...?"
다래가 겨우 뱉은 질문을 듣고 저요? 라고 답한 세븐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을 알려주는 존재요."
네? 사실이라고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물어 본 다래에게 세븐은 친절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되풀어 말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려주러 왔어요, 제가."
다래는 이상하게 우리라는 단어에 홀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어떤 건데요?"
세븐의 마음속에 걸려들었다는 확신과 자신이 퍼지기 시작했다. 세븐은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고는 대답했다.
"이 세상은 곧 사라질 거예요. 먼지처럼, 싹 다."
"네? 그게 무슨..."
"그쪽 손.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했죠?"
다래는 세븐의 말을 듣고 붕대 감은 손을 고스란히 바라보았다. 다래는 처음 만난 존재에게 자신의 손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려했지만, 이 검은 형체에게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최근에 먼지처럼 사라져 버려서 묶어놨어요. 이 손이 예전부터 만지는 물건마다 문제를 일으켜서..."
세븐은 다래의 이야기를 듣고 다래의 붕대 감은 손을 쓱 쓰다듬으며 안쓰러움의 탄식을 뱉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그것 때문에 일도 제대로 안 되고. 그렇죠?"
다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일이 안 되는 그 순간마다 마음이 얼마나 시렸을지 알 것 같아요. 존경하고 애정하는 상사에게는 짐이 되고 싶지 않은데, 풀리는 건 아무것도 없고, 아무리 뭔가 하려고 해도 오히려 일만 만들어서 내가 사랑하는 존재의 고난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 마음."
평소의 다래였다면 니가 뭘 아는데 지껄이냐며 욕을 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래의 마음엔 이미 세븐의 말들이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세븐의 말 하나하나가 물감이 되어 다래를 집어삼키듯 점령했다. 다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븐의 말에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븐의 말에 동요된 다래의 마음은 칼로 베이는 듯 날카롭고 시렸다. 세븐은 다래 마음 속 묻어둔 고름 낀 마음을 째고 헤집었다. 다래는 아픈 과거가 떠올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파르르 떨린 입술로 다래는 애써 세븐을 힘없이 밀어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적대감을 비치는 다래를 보고도 세븐은 여유롭게 웃으며 끄덕였다.
"다 이해해요. 다래씨 마음. 부정하고 싶고, 묻어두고 싶고, 다 숨기고 싶고, 그저 잘하고 싶은 그 마음. 다 이해해요. 그렇지만 몸이 안 따라주고, 운명이 안 따라주잖아요. 그렇죠?"
세븐은 뱀의 혀로 다래를 홀렸다. 세븐이 천천히 다가와 이제 다래 어깨에 손을 대고 있었다. 하지만 다래는 그 감각을 알아채지 못했다. 뱀의 혀에서 쏟아져나오는 말이 다래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멈추게 했다.
"저도 당신과 같아요.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이 운명이 버겁고 힘들어요. 그렇지 않나요?"
다래는 세븐의 말을 조용히 따라했다.
"초라하게 만드는 이 운명..."
다래는 눈물을 한 방울씩 툭툭 떨어뜨렸다.
"우리는 그저 이 큰 우주 안에 있는 작은 존재밖에 되지 않아요. 나사보다 더 작은 존재예요. 우리가 무언가 애를 쓴다고 해도 바뀌지 않아요. 내가, 이 주변이, 이 세계가 바뀌지 않아요."
다래는 어느새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세븐의 움직이는 입을 보며.
"그런데 그 세계가 이제는 다 사라져버린대요. 우리도 사라지고, 이 행성도, 도플도. 모두가."
세븐은 마치 먹잇감을 먹는 뱀처럼, 그렇게 다래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당신의 손부터 이 세계까지. 사라지는 이유를 지금부터 알려줄게요."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 목에서 쉰 맛이 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을 하나씩 느끼며 달렸다. 아니, 오히려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목이 아프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마지막 다래의 모습이, 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그 눈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냥 나가지 말걸. 그냥 계속 옆에 있어 줄걸 그랬다. 옛날에 일했을 때처럼 항상 같이 다닐걸 그랬다. 후회로 휘몰아치는 파도가 내 머리를, 내 심장을 집어삼켰다. 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듯 달렸다. 더 빨리, 더 빨리 가야 한다.
저 멀리 다래와 함께 있던 창고 입구가 보였다. 발을 더 세차게 굴려 문 앞에 도착했다.
"다래야!"
문을 벌컥 열어 다래를 찾았다.
다래가 앞에 있었다. 다래는 울고 있었다.
"도플언니..."
다래는 힘없이 나를 불렀다. 나는 달려가 다래를 감싸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젠 괜찮아. 내가 가지 말 걸 그랬어. 힘들었지. 미안, 미안, 미안해.
후회로 얼룩져진 말들이 끊임없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 중얼거림 사이에 조그맣게 다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플언니.... 나 알아버렸어."
다래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만 해도 이렇게 기운없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다래야, 왜? 뭘 알아버렸다는 거야?"
품에서 다래를 떼어내고 다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다래의 눈 주변은 새빨갛게 부어올랐고 볼에는 수많은 눈물길이 자잘하게 그려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뭘 들은 거야?
다래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지금까지 언니에게 짐만 되었지, 그치?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래가 온몸을 떨며 흐느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다래를 토닥이며 아니라고 계속 말해주었다. 그런데도 다래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원래부터 일할 수 없는 존재였어. 계속 손이 무언가를 망가트리고 없애고 실수를 만들어 냈어. 이런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가 언니를 계속 힘들게 했다는 걸 알아."
아니, 아니야. 너 그거 아니야 정신 차려! 다래를 계속 흔들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게 아니야.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야. 수없이 다래의 귀에 대고 얘기했다. 그런데 다래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언니, 그거 알아? 내가 이렇게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인데, 사실은 모두가 그런 작은 존재래. 아무것도 아닌 존재래."
"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작은 존재라니?"
다래의 떨어지는 눈물을 계속 손으로 닦아주며 물어보았다. 그런데, 손으로 퍼지는 눈물의 촉감이 퍼석했다. 미끌거리지 않고 퍼석이는 눈물이라니. 손에 무언가 묻었나. 내 손을 펼쳐 확인해 봤다.
다래의 눈물을 닦아주던 손에 익숙하고도 무서운, 먼지가 묻어있었다.
순간 다래의 눈을 다시 봤다.
다래의 눈물이 먼지로 사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