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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의 우주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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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1. 2023

S의 우주 11

11화 추락

다래씨의 눈물이 먼지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눈물을, 아니 먼지를 만지고 있는 도플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둘이 그렇게 서로 얼어붙은 채 꼼짝을 하지 않은 관경을 눈앞에서 마주해야만 했다. 세븐, 세븐은 어디있는거지? 이미 왔다 간 건가?

그때, 누군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도스의 마지막 한 팔. 그의 다리가 있었던 곳도 천천히 그 모양을 따라 검은 먼지가 쌓였다.

"세론, 검은 복면을 쓴 존재를 꼭 만나요. 만나서 꼭 이 우주에 대해 다 캐물어야 해요."

"네?"

"그 복면을 쓴 존재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실마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다래가 다 들었는데, 다래가 이제 말을 못 해서..."

도스의 왼편 어깨 쪽에 고개를 묻고 있는 다래씨의 둥근 뒷머리가 보인다. 그 주변으로 흩날리는 먼지가 퍽 그의 눈물같이 툭툭, 덩어리져 내렸다.

"도스, 우선 일어나요. 우리 우주선 쪽으로라도 같이 가게. 어서요!"

노스도 도스의 한쪽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어서요! 빨리 가요! 뭐라도 해봐야죠. 하지만 도스의 고개는 그저 절레절레 흔들릴 뿐이었다.

"저는 이미 늦었어요. 다래가 먼지로 변하자마자 저도 같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같이 사라질 운명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말한 단서를 가지고 얼른 수배를 하든지 찾든지 해야돼요. 저 대신해서라도 제발. 다래 이렇게 만든 그 복면... 얼른 잡아줘요."

내 바지를 잡고 있던 도스의 손힘이 조금씩 풀려간다. 동시에 도스가 잡고 있는 자신의 생명줄도 놓는다. 아니, 이럴 수 없어.  함께 했던 동료를 잃을 줄 몰랐다. 세븐은 정말 내가 고통을 겪길 바랐던 걸까. 아니, 결국 이런 고통을 받을 운명이었던가. 세븐의 말처럼 이렇게 결국 나에게도 마지막이 다가오는 걸까? 나도 이제 사라지...

"세론! 정신 차려요! 잘 들어요. 도서관 안에서 우리 존재의 정보를 봤대요. 그 복면이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이 우주의 소유자가 있다는 것도요."

도플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외쳤다. 도서관과 존재에 대한 정보. 그리고 우주의 소유자. 도플이 말한 단어가 머릿속에 콕콕 박혀 내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뒤이어 노스가 눈물을 가득 머금으며 나를 출구로 잡아끌었다.

"어서요, 우리라도 가야 해요. 더 이상 더 많은 존재들이 사라지기 전에..."

노스가 내 어깨 옷끝을 있는 힘껏 끌었다. 나는 휘청거리던 나머지 정신을 이어 붙잡고 사라져가는 도플과 먼지가 된 다래를 뒤로했다. 창고에서 몸을 빼자마자 무섭게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곳도 이제 사라져간다는 거야. 노스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수송 장치로 뛰어갔다. 도플의 메시지를 안고 수송 장치가 있는 언덕을 뛰어올라갔다. 눈물이 세차게 흘러나와 시야를 가렸다. 손으로 수십 번 눈을 비비며 올라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모든 걸 게워내고 싶을 때 쯤, 수송 장치의 머리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노스는 서로의 옷깃을 꼭 잡고 서로를 끌어주었다. 수송장치 입구가 눈앞에 보인다. 난 뒤따라오는 노스를 끌고 입구로 들어서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났고, 뒤를 돌아본 순간 노스는 쓰러져 있었다. 뒤이어 쾅. 내 머리 뒤 쪽에서 강렬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누군가 내 머리를 쳤는데. 누구인지 확인하고자 했지만, 이미 내 눈앞은 캄캄해지고 내 몸은 땅 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손에 까끌까끌한 촉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리가 핑 울리며 강한 통증이 내 머리를 꾹 누른다. 뭔가 잘못되었다. 살며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수송 장치의 바닥이 보였다. 내 마지막 기억상 수송 장치에 들어오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손목에 강한 쓸림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팔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 팔과 다리가 어딘가에 묶여있었다. 고개를 들어 옆을 봤다. 노스도 나와 똑같은 자세로 묶여있었다. 하지만 노스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듯하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 수송 장치를 조종하고 있는 거지?

정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다른 형체가 앉아있었다. 의자 끝부분에 익숙한 검은 천이 보였다.

세븐이었다.

세븐은 기척을 느꼈는지 여유롭게 의자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 정신이 들어요?"

"너, 이거 뭐 하는 짓이야?"

나의 물음에도 세븐은 그저 입꼬리만 살짝 올리기만 할 뿐이었다. 도무지 의도와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 도대체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조금 아쉽네요. 의식을 잃은 채 그냥 사라질 수 있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는데."

"뭐?"

"우리도 이제 사라질 거예요. 선배가 이렇게 악바리로 견디면 견딜수록 현상만 늦춰진다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우리만 사라지면, 이제 그 사람이 죽는 건 시간문제에요."

혼란스러웠다. 사람? 사람은 도대체 뭐고 왜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하지만 세븐이 우리와 같이 죽으려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세븐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지난 세븐의 모습을 생각하며 애달프게 타일렀다.

"세븐,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네가 뭘 죽이겠다는 거야? 너 누구 죽이고 그런 존재 아니었잖아. 왜 그러는 거야?"

세븐은 내 애닳는 소리를 듣고는 거칠게 얼굴을 구겼다. 세븐의 눈가가 점점 분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만 그따위로 살지 않았어도, 내가 이런 존재로 태어나지 않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다 그 사람 탓이에요. 이 모든 현상도, 먼지도, 심지어 나도 그 사람이 만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도와주는 거예요. 이렇게 아등바등 매달리는 세상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빨리 사라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세븐이 이를 갈고 언성을 내며 말을 쏟아부었다. 저 방언들은 도대체 누구를 향한 철저한 분노인가.

"세븐, 도대체 네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데 그래? 차분히 설명해 봐. 네가 도서관에서 본 게 도대체 뭐길래 그래?"

세븐은 내 애원을 밀쳐두고 자신의 분노에 못 이겨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그 망할 것 때문에 나도, 너도, 저놈도 다 망가지고 없어지는 거 아냐! 나도 사라지고 싶지 않아! 근데 우주는 사라지고 싶다잖아! 끊임없이 사라지고만 싶다고 해! 먼지가 되고 싶다고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걸 본 이상, 사라져가는 내 몸과 우주를 어떻게 바라만 보고 있냐고!"

세븐의 센 언성과 거친 몸부림에 세븐의 얼굴을 덮고 있던 천이 스르르 풀렸다. 세븐은 그야말로 곪아있었다. 검게 곪아있었다. 이리저리 얼룩지고 검게 멍들어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세븐을 보냈을 때는 절대 저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의 얼굴, 머리 부분 부분 심하게 곪은 부분은 작게 먼지가 투툭, 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세븐은 지금까지 저 곪은 몸을 앓으며 살았을까. 세븐이 도서관에서 무언가 알아버렸기 때문인 걸까. 세븐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곪은 부스러기와 같이 떨어지는 눈물은 유난히 탁했다. 나는 그걸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세븐은 도대체 뭘 보고, 뭘 겪은걸까.


그때, 옆에서 쨍그랑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수송 장치에 비상 알람이 울렸다.

"비상사태 버튼이 눌렸습니다. 모두 비상 수송장치로 신속히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전한 비상 수송 장치 준비를 위해 자동 운전 모드에서 수동 운전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둘 다 깜짝 놀랄 새도 없이 수송 장치 기체가 기우뚱 거리기 시작했다. 세븐은 당황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둘려보다가 노스가 발로 비상버튼의 유리막을 깨부순 것을 목격했다.

"이런, 망할! 기껏 방향을 다 잡아놨는데!"

세븐은 분노를 담은 채 그대로 노스에게 돌진하려 했지만, 이번엔 기체가 반대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나는 나도 모르게 '운전대!'라고 외쳤고, 세븐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옆을 돌아보니 노스가 발로 나에게 뭔가를 밀어 보냈다. 비상버튼을 덮고 있던 유리 조각이었다. 노스의 등 쪽을 봤다. 노스는 유리조각을 쥔 채, 손에 피가 나도록 줄을 긋고 있었다. 나 역시 노스가 보내준 유리로 줄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유리를 세게 쥐어 손이 발갛게 붓듯이 아파왔지만, 조금 더 세게, 세게 그었다.

드디어 탁, 소리가 손목을 묶고 있던 줄이 풀렸다. 손은 잡은 유리 때문인지 상처와 피로 엉망이었지만, 유리를 그대로 쥔 채 발에 묶인 줄을 끊기 시작했다. 세븐이 다시 우리 쪽을 바라보기 전에 끝내야 했다.

노스가 먼저 모든 줄을 끊어내고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그대로 세븐의 어깨를 잡아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세븐이 그대로 노스를 밀쳤다. 둘 다 운전석에서 멀어진 채 엎치락 뒤치락하기 시작했다. 노스는 그를 끌어내려 있는 옷깃을 다 붙잡아내고, 세븐은 노스를 밀쳐내고 손목을 꺾었다. 안간힘을 쓰는 소리와 비명이 오가며 난투를 계속했다. 노스가 저렇게라도 시간을 끄는 동안 얼른 줄이 풀려야 하는데, 끊어질 것 같은 줄이 요지부동이었다. 아까보다 가느다래진 줄들이 엉겨 붙어 잘 끊어지지 않았다. 제발, 빨리!


툭, 줄이 끊어졌다. 툭 끊기는  소리가 출발 신호처럼 들렸다. 그대로 운전석 앞으로 돌진했다. 그런데, 내가 수송 장치 앞 유리로 맞닥뜨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블랙홀이었다.

세븐이 뒤에서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명쾌하고도 고함을 지르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아하하하하, 이제 다 끝이에요! 우리의 목적지가 바로 저 블랙홀이었답니다. 저곳으로 가면 이 지긋지긋한 것들도 다, 사라지게 돼요."

세븐은 노스를 놓고 털썩, 대자로 뻗어누웠다. 세븐의 손에서 벗어난 노스는 그대로 운전석에 앉은 내 편으로 달려왔다.

"조금 있으면 블랙홀 영향권 안이에요. 얼른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될 거예요!"

최대한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한 발짝이라도 뒤로, 아니면 옆으로라도 스쳐야 했다. 노스와 나는 수송 장치를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분 후면 블랙홀의 영향권에 도착한다. 어떤 방법이라도 생각해내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눈에 보인 것은 비상 버튼.

"노스, 비상 수송 장치로 이동해요, 얼른!"

노스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바로 정신 차리고 비상 수송 장치에 탈 준비를 했다. 나 또한 그대로 다시 자동 운전 모드로 전환하고 바로 비상 수송장치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감고 누워있던 세븐을 발견했다.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대로 세븐의 멱살을 끌었다. 세븐은 발작하듯 놀라며 나에게 소리쳤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놔 둬!"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안 둘 거야. 난 살아남을 거야. 너도 얼른 와!"

세븐은 온몸으로 내 손을 거부했다. 내 손목을 잡아 비틀고 손을 할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놓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세븐이었다. 세븐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세븐을 비상 수송장치 쪽으로 던진 다음, 문을 닫고 빠르게 운전석으로 갔다. 비상 수송장치는 정말 비상시에만 쓰는 장치라 직접 방향을 잡고 운전해야 하는 장치다. 나는 빠르게 기존 수송장치에서 비상 수송장치를 분리시키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기체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간발의 차로 블랙홀의 영향권에 들어온 듯 했다. 기체는 위태롭게 흔들렸고, 운전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기체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블랙홀에 삼켜졌다.  기체의 흔들림 때문에 몸이 기체 안에서 이리 튕기고 저리 튕겼다. 노스와 세븐이 서로 엉켜 부딪혔다. 세븐의 발이 내 머리 쪽으로 날아들어왔다. 내 의식은 그렇게 저 멀리 아득해졌고, 비상 수송장치는 빠르게 어둠에 먹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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