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첫 임무
“15분 후에 행성 모습이 관측되겠네요. 다들 슬슬 행성에 진입할 준비해 주십시오.”
스크린에 행성 예정 도착시간이 떴다. 30분. 도플과 노스는 각자 앉아있던 조종석에서 자세를 고쳐 앉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 조사를 위해 처음으로 가는 행성이라 그런가. 이 수송 장치의 공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경직된 주변 분위기가 가볍게 나를 짓누른다. 사건 조사로 가는 첫 행성이지만, 이곳에서 여러 정보가 수집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갑자기 먼지처럼 모든 존재가 구름처럼 떠나가는 현상. 자신에게도, 자신의 고향 주민들에게도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해선 안 된다는 사명. 그 사명감이 도플, 노스의 자세에서 느껴진다. 다들 무사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 셋의 유일한 공통 희망. 우리는 간절함을 품은 채 행성이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행성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거 수송 장치 작동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원래 이쯤 지나면 행성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말이죠.”
도플이 의아하다는 말투로 수송 장치를 조정했다. 수송 장치가 거리와 시간 계산을 잘못할 리가 없는데. 역시나 도착시간은 그대로 뜬다. 심지어 우리가 기다린 5분의 시간이 깎인 25분이라는 글자가 스크린에 띄워졌다. 노스는 행성의 위치가 찍힌 좌표를 스크린에 띄웠다.
“어, 여기 정면 12시 방향에 행성이 있다고 뜹니다. 가만 보자….”
노스는 좌표 스크린을 내리고 수송 장치의 확대경으로 주변을 살폈다.
“어? 저기! 2시 방향에 다른 수송 장치가 보입니다!”
“오늘 저쪽에서 누가 임무를 맡았나 보지 뭐.”
“저쪽 수송 장치에서는 행성이 관측되는지 한 번 여쭤볼까요?”
노스는 나의 대답을 듣고 즉시 주변 수송 장치에 통신을 연결했다. 아직 통신을 연결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어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울려 퍼졌다. 그러다 노이즈 사이로 다른 직원의 목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이크를 쥐고 교신을 시작했다.
“아, 여기는 중형 수송 장치, S208 책임 수송 장치입니다. 저희 기준 두시 방향에 있는 중형 수송 장치. 책임 수송사의 일련 번호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대편에서 교신 시도하는 듯 스피커에서 잡음이 들리다가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A1440 책임 중형 수송 장치입니다.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네, 이 근처에 저희가 가야 할 행성이 있는데 보이지가 않아 연락드렸습니다. 행성 번호는 N-1880입니다. 한번 확인해주세요.”
“어! 저희도 그쪽으로 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저희 수송 장치가 더 가까이 진입해 있군요. 지금 저희가 보고 있는 스크린 공유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크린에 영상 연결 허가 메시지창이 떴다. 허가 버튼을 클릭하자, A1440시점의 우주 영상이 떠올랐다.
“어, 잠깐만. 저 까만 돌덩이 같은 거 보십시오. 설마 저게 우리가 가려던 행성입니까?”
도플은 스크린에 보이는 돌덩이의 윤곽을 그리며 물어봤다. 도플이 윤곽을 그려주지 않았다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앞에 보이는 물체는 행성이 아니라 우주처럼 깜깜한 암흑빛을 띄는 동그란 물체였다.
“노스. 저쪽 공유 영상 내리고 우리 쪽에서 최대한 확대해서 저 물체 관측할 수 있습니까?”
“네. 최대한 당겨서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노스는 수송 장치의 키를 조작하여 최대로 확대한 물체 모습을 스크린에 띄워줬다.
“저건...”
물체가 아니었다. 행성이었다. 그런데 행성이 행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말라 비틀어져있는 암석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고 좌표와 스크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역시 저 위치에 있는 돌덩이는 우리가 가고자 했던 행성이라고 좌표가 자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 검은 행성 옆에서 무언가가 떠다닌다. 마치 먼지같이.
“먼지다.”
“저 모습 영상에서 봤던 모습과 똑같습니다. 행성이 사라지고 있어요.”
노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방금 교신했던 수송 장치에 연락해야겠는걸? 저기 행성이 이미 망가졌다고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도플이 방금 전 대화했던 A1440책임 수송 장치에 교신을 시도했다. 교신에 성공하자마자 스피커에서 어마어마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악! 건드리지 마!”
“책임자님! 제 팔이 먼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게 뭐야! 살려줘! 내 배에 구멍이 뚫렸어!”
“허억, 숨을 못 쉬겠어. 수송 장치에 이상이 생겼나봅니다. 어서 조취를....”
동시다발적으로 지르는 소리가 지옥을 연상시켰다. 아비규환이 된 곳의 소리를 듣고 도플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는 S208책임 수송 장치입니다. 들리십니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스피커에서는 째지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줘! 여기 있는 모든 게 먼지로 날아가고 있어! 다 사라지고 있다고! 제발 본부에 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신이 툭, 끊겼다.
“저기 보세요!”
노스가 A1440책임 수송 장치가 있는 곳을 확대해 스크린으로 보여줬다. 수송 장치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행성에서 나오는 가루와 수송 장치에서 나오는 가루가 서로 뒤엉켜 작은 회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송 장치에서 차마 가루가 되지 못한 누군가의 얼굴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얼굴에 이어, 누군가의 팔이, 다리가, 조각이 천천히 부서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잔해와 먼지는 긴 실뱀 같은 회오리를 만들어 부유하기 시작했다. 순간 살아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도플에게 명령했다.
“지금 이 궤도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저 가루에 말려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어서 서둘러 빠져나옵시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지. 수동운전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우리 셋은 조종 장치의 조종 대를 잡고 전속력을 다해 궤도 밖을 빠져나갔다. 전기 에너지가 다소 낭비되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저 잔해들이 뒤엉킨 똬리와 마주치지만 않으면 되었다.
저 멀리 먼지들이 궤도를 따라 길게 늘어진 광경이 보였다. 점점 작아지다 먼지가 우주의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쯤이 되어서야 우리 셋은 한숨을 늘어지게 쉬었다. 조종 대를 잡은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손의 떨림을 보다, 아까 전에 봤던 얼굴 잔해의 눈이 떠올랐다. 고요히 감고 있던 눈. 정말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보이던 얼굴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니, 저거 전염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전달 받은 적 있습니까? 행성에 가까이 있던 수송 장치가 너무 순식간에 당해버렸다고요!”
도플이 분노에 휩싸인 채 말을 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바로 도플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 우리 모두 전달받지 못한 내용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노스도 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맞아요. 제가 문서를 최대한 꼼꼼히 읽어봤을 때, 전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니면 본부도 모르거나.”
도플의 추측에 나와 노스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걸까. 나 또한 본부도 모르는 사실이 많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애초에 전달된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직접 확인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진 행성 목록과 위치 띄워 확인해보겠습니다.”
상부에게 사라진 행성 목록과 시간, 위치 기록을 요청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행성의 목록과 수많은 점들이 스크린에 뜨기 시작했다. 나는 일일이 행성이 사라진 시간대와 위치, 목록을 대조했다. 도플과 노스도 옆에 있는 종이를 가져와 같이 거들었다.
사라진 첫 번째 행성부터 순서대로 살펴보니 큰 규칙성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대도 불규칙적일뿐더러, 바로 옆의 행성이 사라지지 않고 전혀 반대쪽의 다음 행성이 사라졌다. 전염이었다면 어느 한 곳으로부터 차례대로 행성이 사라졌을 텐데.
“저 알아냈습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와요.”
노스가 수많은 낙서를 한 패드를 무릎 위에 탁 놔두더니, 확신에 찬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다행인건, 전염성은 아니라는 거예요. 어느 한 곳에서 시작되어서 확산되는 형태도 아니고 여기서 일어났다 저 끝에서 일어났다 하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행성이 사라진 순서대로 평면 좌표 숫자를 보면 점점 x, y값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면, 바깥에서 안 쪽으로 진행된다는 소립니까?”
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한숨소리가 들리면서 도플의 표정이 풀리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걸 알아챘는지, 도플은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면 아직 안쪽까지는 안 왔다는 소리네. 그죠? 제 살던 고향 행성이 좀 안쪽에 있어서요.”
도플은 민망한 웃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바로 노스를 쳐다보았다. 노스의 얼굴도 조금이나마 풀려있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들 우선 자신이 있었던 행성은 아직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뭐 찾을 것도 없는 나는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 때, 안내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S208 책임자, 결과 보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대답했다.
“행성 궤도에 진입하고 몇 분 채 걸리지도 않아 그 행성이 먼지처럼 사라졌습니다. 근처에 있던 A1440수송 장치도 같이 먼지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번 행성 탐사는 실패입니다.”
안내 음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행성이 사라지는 곳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졌습니다. 조사 결과, 중앙관리 본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부터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안내 음성은 가만히 내 보고를 듣는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치 본부와 직접 연락을 취하는 느낌이 들어 어깨에 바짝 긴장감이 들었다.
잠시 뒤, 안내 음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의미 있는 조사 결과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다음 행선지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좌표 위치 확인하신 후 확인 버튼을 누르면, 자동운전 모드가 실행됩니다.”
안내 음성의 말이 끝나자 바로 화면에 행성의 위치가 좌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까 사건이 나던 행성보다 조금 안쪽에 위치한 행성이었다.
“최근 이곳의 전기 에너지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조사하는 사건과 연관이 된다 판단되어 다음 행선지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안내음성이 꺼지고 수송 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플은 기지개를 쫙 켜면서 침대 캡슐로 이동했다.
“자, 이제 다들 조금 쉬자고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잠깐만요.”
노스가 침대캡슐로 가려는 도플을 불렀다. 도플은 노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어요? 나 어깨에 담 걸려서 좀 풀어줘야 하는데.”
노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저희도 나중에... 저렇게 부서지게 될까요? 산산조각?”
노스의 말에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닐 거라고 누가 말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긴장과 불안을 덜어줄 대답은 그 어느 누구의 입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임무를 종료할 순 없습니다.”
내가 책임자니까 마음을 다 잡아야했다. 나에게 건네는 말을 노스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 그건 압니다. 하지만 그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제 말은요.”
도플은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박수를 짝 치며 대답했다.
“여기에 비상용 탈출 수송기가 있었어. 맞죠?”
노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아요. 이 중형 수송 장치에 비상용 탈출 수송기가 달려있는걸 탑승할 때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려면, 우리가 어떻게 빠르게 탈출해야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요. 어차피 우리가 살아남고 성공해야 행성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탈출 수송기 사용방법과 위치 다 기억해놓고, 조작법도 익혀놓읍시다.”
도플이 손을 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했다.
“제 짬밥 어디 안갑니다. 탈출 수송기로 몇 번 탈출해본 경력이 있어 제가 잘 다룰 수 있습니다.”
노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도플을 쳐다보고 말했다.
“네? 탈출 수송기 쓸 일이 얼마나 있다고요?”
“그냥 뭐, 옛날에 몇 번 훔쳐서 타다가 걸려본 적은 있지. 실습이라고 잘만 둘러댔긴 했지만.”
“뭐 진짜 임무 내팽개치고 달아났다는 거예요?”
“쉿, 너무 알면 못씁니다 노스. 그저 그러려니 해주세요. 그럼 진짜 자러갑니다.”
도플은 그대로 빠르게 자기 침대캡슐로 향했다. 참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양새가 저런 것일까. 생각했다.
도플을 시작으로 각자 자신의 침대 캡슐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몸 속 온갖 힘이 축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불안함으로 굳어졌던 팔과 다리들이 젤리처럼 뭉개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약간 몸이 붕 뜨는 게 느껴지면서 바로 잠에 들었다.
온통 캄캄한 곳. 눈을 떠보니 우주 한 공간에 둥둥 떠있었다. 제 빠르게 내 손과 발을 확인했다. 다행히 먼지가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우주에 부유한다는 건 내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과 같으니까.
그럼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손과 발을 휘저어 보았다. 이리저리 움직여도 이동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좁은 방 안에 갇힌 느낌이다. 그 방 전체로 조그마한 실낱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
“……싶어.”
분명이 이 공간 가득히 울리는 소리인데 너무 작은 나머지 어떤 말인지 구분가지 않았다. 난 두 손을 모아 귀에 가져다 댔다. 조금 더 명확한 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고 싶어.”
“…라지고 싶어.”
뭘 하고 싶다는 거지? 울리는 말이 이번에는 여러 번 겹쳐 울리기 시작했다.
“…라지고 싶어.”
“…지고 싶어.”
“…지……어.”
말이 이리저리 뒤죽박죽 섞여 발음이 정확하지 않게 들렸다. 거기다 또렷하거나 낮은 소리가 아닌 쉰 소리 여러 개가 수십 번 반복을 하며 내 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제 궁금하지 않다. 내 귀를 채우는 이 불쾌한 말들을 다 빼버리고 못 들어오게 귀 입구를 막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귀를 막아도 손 틈 사이로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싶어….”
귀를 더 세게 틀어막았다. 그런데, 점점 귀를 압박하는 손가락의 느낌이 들지 않기 시작했다.
귀에서 손을 때어내 보았다. 손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가고 있었다. 팔로 어떻게든 막아 보려했지만, 손과 팔이 먼지가 되어 귀를 막을 수 없었다. 이제 또렷이 들린다. 쉰 소리의 말들이 수십 번 반복되어 겹쳐 들려왔다.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순간 목소리가 딱, 끊겼다.
시커먼 형체를 한 누군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돌아봤다. 그는 씩 웃고 있었다. 세븐이었다. 세븐이 검은 물감을 뒤집어 쓴 형체로 나를 바라보고 씩 웃었다.
정말 맞는 것인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세븐이 사라졌다.
세븐은 내 귀 옆에서 속삭였다.
“사라지고 싶어요.”
세븐이 손을 내 어깨에 얹었다. 순간 세븐의 손과 내 어깨가 같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소리도 질러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내 입에서는 먼지만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세븐은 눈물을 흘리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같이 사라져요.”